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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에 사는 김무경(88세) 어르신이 직접 만든 차꽃 부케. 이 부케를 만나면 몇 가지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차는 마시는 데만 사용한다는 생각, 부케는 화려한 서양 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부케는 결혼식 이벤트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 등이다. 이렇게 된 데는 어르신만의 인생내공이 배경이 된다. 
올해 88세이신 김무경 어르신이 자신이 만든 차꽃 부케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어르신은 '하정다회'를 만들어 다도를 가르치기도 한다.
▲ 작품을 들고 올해 88세이신 김무경 어르신이 자신이 만든 차꽃 부케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어르신은 '하정다회'를 만들어 다도를 가르치기도 한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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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명의 자손들에 차꽃 부케 선물, 다음 타자는?

'비싼 예물을 교환과 비싼 결혼식 비용'으로 몸살을 앓는 시대를 보며 안타까워하던 어르신. 자신의 자손들에게 뜻있는 뭔가를 해주려다 생각해낸 아이템. 그게 바로 오늘의 주인공 '차꽃 부케'가 되시겠다.

27년 전 어르신의 작은 아들이 결혼할 때, 차꽃으로 부케를 만들어 선물한 게 최초다. 녹차나무에서 핀 꽃으로 부케를 만든 게다. 그런데 왜 하필 차꽃일까.

42년 전에 차 마시는 매력에 빠진 후, 요즘도 지인과 제자들과 함께 매일 같이 차를 마시는 어르신. 27년 전 안성으로 내려오면서 가져온 차나무가 지금도 그 집 정원에서 잘 크고 있다. 이렇듯 차사랑에 빠진 어르신으로선 아마도 당연한 선택이었으리라.

손녀들의 결혼식엔 차 꽃이 아닌 차 열매로 부케를 만들어줬다. "차꽃도 좋지만, 차 열매가 더 좋더라. 차 열매는 꽃보다는 더 오래 가니까"라며 살며시 웃는 어르신. 쪽진 머리에 잘 탄 가르마를 보니 맘씨 좋은 시골외할머니가 떠오른다.

이렇게 손수 만든 부케를 4명의 자손에게 선물했다고. 큰 며느리, 작은 며느리, 큰 손녀, 작은 손녀 등. 다음 타자는 손자란다. "아직 그 녀석이 짝이 없는 거 같다"며 너스레를 떠신다.

만들기 쉽지 않은 차꽃 부케

이 부케를 만드는 거 쉽지 않다. 먼저 30년 동안이나 자신의 정원에다 직접 키워온 차나무라야 의미가 있다. 하고 많은 차나무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작년에는 심한 추위로 인해 차나무가 대부분 얼어 죽었다고. 원래 따뜻한 지방에서 자라는 차나무지만, 어르신의 정성으로 잘 보전해온 나무였다. 이제 차나무를 못 보나 했는데, 다행히 차나무가 살아났다. 신기한 건 그 차나무가 올해는 꽃을 엄청 많이 피워냈다고. 종족 보존의 위기를 느낀 차나무의 선택이었단다. "역시 사람이나 꽃이나 고생을 해봐야 인생참맛을 안다"며 넌지시 일러주는 어르신이다.

김무경 어르신이 만든 차꽃 부케는 이렇게 생겼다. 손수 기른 차나무에서 딴 차꽃을 네 시간 정도 정성을 들여 만들었단다.
▲ 차꽃 부케 김무경 어르신이 만든 차꽃 부케는 이렇게 생겼다. 손수 기른 차나무에서 딴 차꽃을 네 시간 정도 정성을 들여 만들었단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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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차나무에서 자란 꽃으로 '한 땀 한 땀' 꽂아 만든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꽂았다가 다시 빼서 다른 데로 꽂아보고. 팔순 어르신의 돋보기와 손이 바쁘다. 그렇게 네 시간 정도를 열중해야 부케 하나가 만들어진다. 자손을 생각하는 마음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으리라. 

아니 그렇게 깊은 뜻이.

원래 부케는 기원전 4세기경 서양에서 곡식(풍요와 다산의 상징) 다발을 던졌다. 중세에는 곡식 대신 꽃으로 바꿨다. 꽃향기가 나쁜 질병과 악령 물리쳐준다는 의미다. 부케 꽃은 장미, 카네이션, 튤립, 다알리아 등 화려한 서양 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꽃에 비해 차꽃은 수수하다. 한마디로 '우리 민족답다'.

"우리나라 조상들은 사주단자 보낼 때, 차 한 봉지(봉차)도 보냈죠. '그 집에 가서 차나무처럼 뿌리박고 살아라'는 의미죠."

"그 옛날엔 시집가는 여성이 시집에 뿌리박고 살아가라"는 의미였다고 설명하는 어르신. "요즘은 부모의 정원에서 벗어난 신랑신부가 서로에게 뿌리박고 살아라"는 의미라며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인다. 요즘처럼 이혼이 잦은 세대에 뿌리박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

"차는 다섯 가지 맛(달고, 시고, 짜고, 맵고, 떫고)을 가지고 있다"며 "우리의 인생의 여러 가지 맛과 닮아 있다"고 진지하게 설명해준다. "차처럼 인생의 맛이 어떤 것이든 잘 받아들이고 살아라"는 의미라고.

의미가 한 가지 더 있다. "차꽃은 10월~12월에 핀다. 추운 날씨를 이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한 나무에서 지난해 꽃을 피운 차나무의 열매와 올해 핀 꽃이 만나는 희귀한 꽃"이라고 말한다. 이름 하여 '실화상봉수(實花相逢樹)'다.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열매와 꽃이 만나듯 신랑신부 서로가 인내해야 진정으로 만난다"고 말하는 어르신의 얼굴이 사뭇 진지하다. 88년의 인생 내공이 느껴진다.

차꽃은 실화상봉수라 한다. 한 나무에서 핀 꽃이 다음해에 열매와 만나 함께 피어난다는 의미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다
▲ 실화상봉수 차꽃은 실화상봉수라 한다. 한 나무에서 핀 꽃이 다음해에 열매와 만나 함께 피어난다는 의미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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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신부는 부케 보며 할머니 메시지 떠올릴 것

이 부케는 가볍게 던지는 부케가 아니다. 결혼식 이벤트용 부케는 예식장용으로 한다. 이 부케는 신랑신부의 기념사진과 함께 하는 부케다. 식이 끝나고 나면 집에 가져가서 신랑신부가 두고두고 보는 부케다.

그 부케를 볼 때마다 '쪽진 머리, 잘 탄 가르마'의 할머니가 생각 날 게다. "서로에게 뿌리박고 살아라. 고생하고 인내해야 좋은 열매를 맺느니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차꽃처럼만 살아라"는 어르신의 메시지가 은은하게 울릴 게 분명하다.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10월 31일, 김무경 어르신의 안성 집에서 이루어졌다.



태그:#차꽃 부케, #김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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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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