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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민 연세대 교수의 "생식기만 여성" 발언은 말할 수 없는 참담함과 서글픔, 문화적 품격이 실종된 사회의 추잡함을 한국사회에 확인시켜줬다. 개인적으로 더 충격적으로 느낀 것은 황 교수의 발언 그 자체뿐 아니라 발언 이후 한국사회가 보인 반응이었다.

황 교수는 어느 종편티비채벌에서 박근혜 후보를 겨냥해, "생식기만 여성이지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한 건 없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은 애를 낳고 키우면서 여성이라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말했다고 한다.

우선, 지성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대학교수라는 분이 대선후보에 대해 '생식기'라는 단어를 구사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 내가 한 말이 아니지만 듣는 내가 손발이 다 오그라든다. 그 뉴스를 보고 들은 내 눈과 귀를 박박 문질러 씻어내고 싶은 심정이다.

둘째, 황 교수의 성차별 의식에 아연실색했다. 애를 낳고 키우면서 여성이라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남성이라는 현상은 언제 나타날까? 군대를 갈 때? 직장에 다니며 사회생활을 할 때? 만약 병역의무를 하지 않았고 직장생활도 제대로 못해본 남자가 있다면, 황교수는 그 사람을 향해서 '생식기만 남성일 뿐'이라고 비아냥거릴 것인가?

셋째, 출산과 양육에 대한 황 교수의 남성이기주의적 시선이 역겹다. 나도 딸 둘을 낳아 기를 때 제대로 애비 역할을 하지 못하고 양육의 의무를 아내와 어머니,장모에게 맡겨버린 남자로서 이런 얘기를 할 자격은 사실 없다. 그러나 출산은 여자가 하는 게 아니라 산모의 몸을 통해 부부가 하는 것이다. 양육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선진국은 남성에게도 출산휴가를 허용하는 추세이다. 자녀 양육은 어머니의 영역이 아니라 아빠 엄마 두 부모의 공동영역이다. 따라서 출산과 양육을 여성만의 업무라고 강변한다면 이는 비겁한 마초의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넷째, 결혼에 대한 편협한 시각이다. 결혼을 해야 성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결혼을 해봐야 진정한 남성이 되고 제대로 된 여성이 되는 것이 아니다. 결혼은 각 개인이 각자 처한 현실과 가치관에 따라 선택하는 하나의 사회적 옵션일 뿐이다. 그런데 황 교수의 발언에는 여자가 나이가 차면 결혼하고 애를 낳는 게 정상이라는 편견을 기저에 깔고 있다. 한국사회는 도대체 얼마나 더 이런 전근대적 가부장적 문화를 견뎌내야 할까?

다섯째, 황교수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결혼과 출산 발언은 이 땅의 많은 불임부부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사려깊지 못한 언행이다. 결혼해서 아무리 노력해도 애를 낳지 못하는 가정이 참으로 많다. 결혼과 출산을 경험해야만 여성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라면 결혼은 했지만 출산을 못한 여자는 여성의 역할을 절반만 하는 것인가?

혹시 황 교수는 한국사회 여성에 대해 '등급'을 매기는 것이 아닌지 매우 궁금하다. 직업이 대학교수라고 하니 이에 대한 논문을 쓴다면 국제적으로 매우 주목을 받을 것 같다. 1등급은 결혼과 출산을 경험한 여자, 2등급은 결혼은 했지만 출산을 못해본 여자, 3등급은 결혼조차 못해본 여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여섯째, 결혼과 출산을 운운하며 박근혜 후보에 대한 인신공격성 비난을 하는 황 교수는 무엇보다 박 후보 개인에 대해 정중한 사과를 해야 할 듯 싶다. 우리가 잘 알듯이 박 후보는 20대 초반 어머니를 잃고 20대 후반에 아버지를 비명에 떠나보냈다. 장기집권한 독재자의 맏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평범한 결혼생활이 불가능한 지경인데, 소위 결혼적령기에 개인적으로 그런 무참한 일을 당한 사람에게,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았으니 대선주자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몰아부치는 것은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상대방이 아무리 맘에 안 들어도 해서 안 될 말이 있는 법이다. 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게 싫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더라도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절대적으로 옳기 때문에 너는 틀린 것이고 따라서 틀린 너는 어떠한 모욕도 감수해야 한다'는 적개심과 살의가 번득이는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인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진보된 사회는 남녀 성차별이 완전히 사라지고 남녀 양성이 가정에서 뿐 아니라 직장과 사회,정치활동 전반에 걸쳐 협력을 이루는 공동체일 것이다. 우리 모두 한단계 높은 문명사회를 향해 지혜를 모으고 힘을 합쳐도 시원찮을 판에 지식인의 입에서 이런 시대역행적인 발언이 튀어나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황 교수는 박 후보와 관련해, "여성은 학창시절엔 더 대우받고 결혼하고부터 차별을 경험하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은 여자는 차별을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는데, 과연 이 분이 현재 한국땅에 살고 계신 분인지 의문이 들었다.

여성이 학창시절에 더 대우받는 얘기에는 일단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도대체 뭘 가지고 그렇게 말할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가늠이 되지 않는다. 아울러 한국사회는 특히 여성의 사회적 활동에 제약이 많은 나라이다. 국가에서 치르는 시험을 통해서나 최근 여성들의 진출이 활발할 뿐 일반 기업은 사실 남성들의 독무대이다. 여성임원은 찾아보기 어렵다. 결혼하지 않고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은 과연 이 사회로부터 성차별을 느끼지 않을까?

아울러 한 인격체가 정치를 하는데 대해 왜 결혼과 출산을 언급하는지, 참으로 알 수가 없다. 미혼의 여성은 정치하면 안 된다는 말인가? 결혼과 출산의 경험이 없어서 여성의 삶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는 게 박근혜 후보를 공격하는 이유라면 이 땅에 대통령을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다.

군대를 안 간 남성은 군대경험이 없으니 국방 분야에서 대해 알 수가 없으니 대통령이 될 수 없고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가난을 모르니 정치를 해서 안 되고 가난한 집안출신은 중산층의 심리를 알기 어려우니 정치를 해서 안 되며 서울에서 자란 사람은 지방을 이해 못 하니 대통령이 되서도 안 되고 지방에서만 지낸 사람은 중앙무대를 모를 테니 대통령이 되서도 안 될 것이며 대학을 나온 사람은 못 배운 자의 서러움을 도무지 알 수 없을 것이고, 그 반대로 대학조차 못 나온 사람은 지식이 부족하니 대통령이 돼서도 안 될 것이다.

대선후보의 자격은 국민이 판단하는 것이다. 특정개인에게 대선후보의 자격을 판단할 심판관의 지위가 부여되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드리고 싶다.

끝으로 이번 파문을 바라보는 소위 진보진영의 태도에도 적이 실망감을 감추기 어렵다. 아무리 적장이지만 비열하게 공격하는 부하가 있다면 내쳐야 한다. 문재인, 안철수 후보 진영에서는 황 교수 같은 발언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선을 확실히 그어야 한다. 우리 진영에 도움이 되는 가 그렇지 않은 가가 판단의 기준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기본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놓고 고민해야 하지 않겠는가?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서 양 진영 모두 심리적 안정상태가 크게 흔들리는 것 같다. 이를 그대로 방치하면 선거일이 임박할수록 사회적 분열과 가치관의 혼란이 올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돼도 대한민국은 건재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겠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면 천국이 도래하고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빠지는 게 아니지 않은가? 설령 국민 대다수가 우매해 자격없는 사람이 대통령으로 뽑혀서 지옥이 온다해도 나의 잘못은 전혀 없다고 그 누가 얘기할 수 있겠는가?


#황상민#성차별#대통령선거#인신공격#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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