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에서 돌아오는 길이 두 시간 반이면 되는데 오늘 나는 네 시간이 걸렸다. 이번주 초에 도봉산숲속마을에 기획자 1박 2일 워크숍에 다녀오느라 운전을 하고 줄곧 과로를 해서 그런지 좀 기운이 달렸다. 서울에서는 버스전용차선으로 자꾸만 나도 모르게 들어가게 되어 신경을 많이 쏟아서 그런지 이번 주말의 전북의 완주와 군산을 오가는 운전길은 좀 숨이 차올랐다.
그래서 호흡을 느리게 조절하면서 쉬엄 쉬엄 거북이처럼 모든 휴게소마다 들러서 천천히 왔다. 오다가 휴게소에서 잠깐 잠이 들었는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왜냐하면 오늘 가르친 꿈나무 꼬맹이들이 내게 짖궂게 장난을 걸었는데 너무 귀여웠던 까닭이다. 입가에 자꾸 미소가 번진다.
내가 칠판에 교안을 쓰고 있는데 내 뒷통수에도 눈치코치의 안테나가 보이지 않게 되어 있다는 것을 꼬맹이들은 몰랐던 모양이다. 저희들끼리 별의 별 말을 해서 내가 듣나 못 듣나 시험했는데 나는 시치미를 떼었다. 사실 무슨 소리로 내 청력을 시험했는지는 못 들으니 모른다. 그러나 장난질을 쳤다는 것은 잘 안다.
한 때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그런 장난을 치던 사내아이들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정말 속상해서 그 사내아이의 손목을 깨물었던 기억이 난다. 생을 두고 줄곧 듣는 질문이 " 왜 귀가 나빠졌어요?" 라든가 "왜 못 들어요?" 이다. 그런 질문에 한때는 싸우고 사춘기 때는 피했고, 한때는 그냥 울기만 했다. 평생 듣는 질문에 생애주기를 두고 내 태도는 달라지는 것이다. 지금 나는 그 질문을 한 사내아이들이 무척 귀엽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왜 그래 자꾸 샘에게 장난치니?""샘! 샘은 왜 귀가 나빠서 못 듣는가요?""하하 너는 왜 눈이 나빠 안경을 끼었어? 그리고 너는 왜 이빨이 두 개나 빠졌어? 왜 그럴까? 넘어져서 팔이나 발목 부러져 본사람 손들어봐! 그럴때 어떻게 해?""깁스해요.""그래 깁스한다고 뭐가 달라져? 너 안경끼었다고 엄마가 달라보여? 아니면 안경끼었다고 이상하게 보고 장난치면 좋겠어? 이빨 없다고 맛있는 것 못 먹어?""아니요 아니요.""그러니깐 살아있는 몸뚱이니깐 여기 저기 조금씩 나빠지는 것은 당연한 거야! 그러니 조금 불편한 것이지 아주 다른 것은 아니란다."
아이들은 끄덕끄덕였다. 그리고 보통 때 처럼 춤추는 붓 놀이터 수업에 신나게 열중했다. 자신의 몸보다 큰 종이에 붓으로 뿌려보는 먹물의 스밈과 번짐들을 즐겼다. 어떤 아이는 그것을 지옥도라고 했고 어떤 아이는 나뭇가지가 춤추는 모습이라고 하고 어떤 아이는 드래곤의 세상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신의 이름을 다양한 형태로 표현하였다.
자신들의 이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름도 정성들여 쓰는 모습에서 이 다음 어른이 되어서도 그렇게 다른사람의 이름과 존재를 소중히 여기는 모습을 읽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나와 같은 청각장애인을 만나도 이미 나를 통해 청각장애는 별 다른 것이 아닌 좀 불편한 것이란 것을 경험했기에 차별하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조기장애와 선천적장애는 아주 다르다는 걸 모르는 기자들10월 초에 개인전을 취재한 어떤 신문기자는 내가 어릴 때부터 귀가 나빠졌다는 소문을 듣고 신문에는 선천적 청각장애라고 표현을 했다. 그리고 내가 전혀 모르는 어떤 분은 전시장에서 작품을 정성들여 찍어 자신의 블로그에 스토리를 붙여 아름답게 게재했다. 그 분은 신문기자를 그대로 보고 내가 선천적 청각장애이고 장애를 극복했다는 표현을 했다.
나이탓일까… 지금은 그러려니… 언젠가는 모두들 스스로 자각하겠지 하고 그냥 누군가가 그렇게 내 전시장 풍경을 블로그에 고스란히 담아준 것을 신기해하고 가만있지만 한 때 나는 그런 것들에 참 마음이 많이 아팠다.
왜냐하면 중도장애와 조기장애와 선천적 장애가 주는 현실과 의미와 그 파급효과는 한 가정이 흔들릴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서정주 시인처럼 단어 하나를 쓰기 위해 6개월까지 고민을 하지는 않더라도 기사 한 줄을 쓰기 위해 단 한 시간이라도 기자가 사실 확인을 좀 하고 쓰면 얼마나 좋을까?
살아있는 한 매순간 오고가는 파도타기의 희노애락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그러한 반복되는 상황에서 조금씩 익숙해져 가는 것일 뿐… 극복은 없다고 생각한다. 극복이 있다고 인정하면 극복을 못하는 존재들도 있게 되고 결국은 상대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장애로 인해 살아가는 삶의 속도에서 느리고 빠름이 있고, 능숙함과 익숙함과 미숙함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단 하루라도 들을 수 있다면…돌아오면서 생각해보았다. 내가 단 하루라도 일반인처럼 들을 수 있다면 어떨까? 우선은 제일 먼저 산책가는 숲 속의 나무밑에 서서 그 나뭇잎들이 바람과 사이좋게 흔들리는 소리와 그 나무에 집을 짓고 사는 새들의 소리, 그리고 그 나무옆에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싶다. 손을 대어 진동을 느꼈던 종소리와 고향 부산의 바닷가의 파도가 바위에 부서지는 소리, 그리고 물새들이 스치는 소리… 내가 만드는 음식들이 끓거나 후라이팬에서 익어가는 소리도 궁금하다. 특별하고 색다른 소리들이 궁금한 것이 아닌 친근한 일상의 그 소리들이다,
기획자 워크숍 때 판화를 찍어서 옛 책을 만들었는데 한지를 매어서 만든 그 책장 넘어가는 소리도 궁금하다. 정말로 듣고 싶은 소리는 내 아이들이 나를 쳐다보고 말하는 목소리와 비록 틀린 음정일지라도 내가 부르는 노래소리와 내가 기획한 실버앙상블음악단들의 어머니 합창과 악기연주 소리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촉각으로 소리를 느낀다고 말하는데 사실은 시각적으로 더 많이 느낀다.
며칠 후면 내가 만든 합창반이 충북대표로 서울에 전국합창대회 본선에 간다. 전국 시도 각 1팀씩 17개 팀이 경연을 하는데 합창단이 생긴 지 반세기가 된 팀도 있다. 우리들은 햇병아리중의 햇병아리지만 초대공연에 <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이 나오고 우리보다 수준높은 많은 합창단을 경험하게 되어 그저 고맙고 즐거운 소풍이라고 생각한다.
소리를 잃은 청각장애인이 소리를 내는 합창단을 기획했다는게 서울에 소문이 나서 방송팀이 모레부터 내려와서 며칠 동안 따라다니며 촬영한다고 한다. 서류앞에서 낑낑대는 근무모습과 문하생강의와 연구실 작품제작에서 부터 공연하는 어르신들 수발드는 모습까지 모두 다… 그리고 아직도 그 방송팀의 한 분이 갸웃한다고 한다. 소리를 못 듣는데 어떻게 음악기획을… 그 분 탓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청각이 상실되면 자연히 말하기도 힘들고 소리와 관련된 직종은 당연히 못한다는 사회적관념이 뿌리깊다는 증거이다. 이번 다큐가 미화되거나 자극적이지 않고 있는 사실 그대로로 담백하게 잘 만들어져서 청각이 상실되어도 소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장애인이라도 일반인들과 서로 꿈을 나누며 사이좋게 사람들을 웃게 하는 일들을 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인식개선의 효과가 크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