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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1월 15일 밤 10시 30분. 나는 노무현 후보와 함께 역사적인 후보 회담을 열기로 한 국회본관으로 향했다. 회담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노 후보는 단지 하나만 나에게 확인했다. '내가 여론조사방식을 받아들인다면 합의가 되겠지요?'라는 물음이었다.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여기서 등장하는 '나'는 신계륜 민주통합당 의원이다. 신 의원은 2002년 노무현 후보의 비서실장 겸 후보단일화 추진단장을 맡아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을 마무리 지은 주역이다. 그는 자신의 책 <내 안의 전쟁과 평화>에서 당시 노무현-정몽준 후보 회담의 막전막후에 대해 이렇게 기록해 놨다. 10년이 지난 2012년 대선에서 신 의원은 문재인 대선후보의 특보단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단일화, 후보들이 먼저 결론 내릴 가능성 크다"

신계륜 민주당 의원. (자료사진)
 신계륜 민주당 의원. (자료사진)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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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당시 양측의 협상은 단일화 방식을 둘러싼 이견으로 교착상태에 빠져있었다. 노 후보는 자신에 불리한 것으로 평가됐던 여론조사 방식을 수용함으로써 극적 합의를 이끌어 냈다.

2012년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 간 단일화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까. 또 어떤 형식으로 합의에 이르게 될까. 지난 8일, 회고와 전망을 듣기 위해  신계륜 특보단장을 만났다. 신 단장은 이번 단일화 과정에서는 후보 간 '선 담판 후 실무협상'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2002년과 가장 큰 차이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02년에는 실무협상 후 후보들이 만나 막힌 곳을 푸는 방식이었다면 이번 단일화는 먼저 후보들이 만났다. 앞으로도 후보들이 직접 만나 큰 결론을 내리고, 실무협상은 그것을 조율하는 형식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신 단장은 그 이유로 "안철수 후보의 독특한 의사결정 방식"을 들었다. 그는 "단일화 방식을 논의하는 협상이 진행될 지 여부도 불투명한 것 같다"며 후보 간 담판에 의한 단일화 가능성도 열어놨다.

"지금까지 살펴본 결과, 안 후보는 주변 의견을 열심히 들으면서도 본인이 결심하면 바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남대에서 회동을 제안한 것도 그랬다. 안 후보 측 조광희 비서실장이 강연 도중 우리 쪽에 전화했다고 하더라. 상당히 전격적으로 결정했다는 것 아닌가. 단일화 방식에서도 마찬가지일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든다. 아예 단일화 방식을 논의하는 협상이 진행될 지 여부도 불투명한 것 같다."

2002년에는 인물 중심, 2012년엔 가치 중심

2002년에는 두 후보 간에 단일화하겠다는 합의를 이끌어 내기까지 큰 진통이 뒤따랐다. 기본적으로 노무현·정몽준 두 후보의 철학과 정체성이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당시 노 후보는 당 안팎의 단일화 압력에 대해 2002년 10월 10일 전주방송 토론회에서 "연대는 생각이 비슷한 사람과 하는 것이다, 이회창 후보와 정몽준 후보는 비슷하지만 저하고는 많이 다르다, 민주당이 언제 재벌 당이었느냐"고 선을 그었다.

2002년 단일화는 공통의 가치가 아닌 인물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정치공학적인 단일화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2012년 단일화는 당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게 신 단장의 전망이다. 두 후보가 단일화에 대해 강한 의지가 있고 철학과 가치에서도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단일화는 아니지만 1997년 김대중·김종필 연대는 비공개적인 방식으로 협상이 이뤄졌다. 2002년에는 협상단이 쟁점을 국민 앞에 드러내놓고 해소하는 공개적인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지지 세력이 다른 두 후보가 손을 잡는 선거공학적인 측면이 컸다.

이번에는 공동으로 추구해야 할 미래가치를 중심으로 단일화 논의가 진행된다. 정권교체를 해야하는데 왜 해야 하는지, 정권교체 후 무엇을 할 것인지를 중심으로 뭉치는 것이다. 더 파괴력이 있을 것이다."

"단일화 방식보다 알권리 중요, 국민들 피드백 받으며 가야"

2002년 11월 15일, 단일화 협상 회담에서 마주 앉은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
 2002년 11월 15일, 단일화 협상 회담에서 마주 앉은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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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단일화 협상 과정은 두 후보 참모들의 기획으로 진행됐다. 유권자들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통로는 사실상 없었다. 2012년 단일화는 달라야 한다는 게 신 단장의 생각이다. 단일화 협상에 국민 참여라는 시대정신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일화 협상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면 그 과정 자체가 국민들의 관심사가 될 것이다. 축구 중계방송을 보면서 관전평을 하듯이 국민들의 단일화 관전평이 나올 것이다. 그게 여론이 돼서 '이렇게 단일화하라'는 국민적 요구가 생길 수 있다. 국민의 생각을 피드백 받으면서 가야한다."  

2002년 단일화 방식으로 여론조사가 결정된 후 핵심 쟁점은 여론조사 설계였다. 당시 여론조사 상으로는 정몽준 후보는 이회창 후보와 경쟁력에서, 노무현 후보는 야권 후보 적합도에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문항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단일후보가 뒤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신 단장의 회고다.

신계륜 민주당 의원. (자료사진)
 신계륜 민주당 의원. (자료사진)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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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후보와 맞설 '자격'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뉘앙스면 노 후보가 조금 앞설 수 있고, 이회창 후보와 맞서 이길 가능성을 강조하면 정 후보가 앞설 수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협상에서는 이 문제가 쟁점이 되지 않도록 주의했다. 사실 정몽준 후보 측 협상단은 여론조사 문항보다는 이회창 후보 지지자들의 역선택을 막는 방안에 더 관심이 많았다. 결국 설문 문항은 '이회창 후보와 경쟁할 단일후보로서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 중 누구를 지지하십니까'로 결정됐다. '경쟁할'이라는 문구가 이기느냐 못 이기느냐는 느낌보다 후보의 자질과 능력을 연상케 한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정몽준 후보 측은 협상 타결 이후에도 역선택 방지책을 수정 보완하기 위해 몇 차례 합의문을 파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 단장은 이번 단일화에서는 단일화 방식을 둘러싼 줄다리기는 심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중요한 것은 단일후보 선택 전 충분한 알권리 보장이라는 게 신 단장의 생각이다.

"정치쇄신안이나 다른 정책 문제에서 두 후보의 차이는 크지 않다. 결국 단일화 방식의 문제가 남을 것이다. 여론조사가 국민의 뜻에 맞는 방법인지에 대해서 의문은 있지만 중요한 것은 여론조사냐 아니냐가 아니다. 어떤 방법을 선택하든지 국민들에게 각 후보가 가지고 있는 정책과 생각이 뭔지 충분히 알려야 한다. TV토론 1회로는 부족하다. 합법적인 모든 방법을 동원해 국민 참여를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또 단일화 방식을 결정하는 데도 국민의 중지를 모아야 한다."

"최고의 협상 테크닉은 진심"

야권 대선주자인 민주통합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6일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만나 후보등록 전 단일화에 합의했다.
 야권 대선주자인 민주통합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6일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만나 후보등록 전 단일화에 합의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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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김한길 민주당 최고위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단일화 협상은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을 만드는 과정이다, 크게는 같은 편이라는 신뢰가 있어야 더 많은 민심을 담아낼 큰 그릇을 빚어낼 수 있다"는 글을 올렸다. 김 최고위원은 신 단장과 함께 2002년 단일화 협상에 참여했다.

실제로 2002년 협상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한고비를 넘기면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히면서 협상 결렬 위기를 맞았다. 협상단의 얼굴들도 여럿 교체됐다. 여론조사 돌입 하루 전에는 여론조사를 시행하기로 했던 갤럽이 '못하겠다'고 백기를 들면서 단일화 무산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신 단장은 만약 단일화 협상이 시작될 경우 양측 협상단이 유지해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진심'을 들었다.

"이번 단일화 과정은 참 독특하다. 현실 정치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민주당과 밖에서 현실정치에 비판적인 문 후보가 만나는 과정이다. 우리 정치가 추구해야 할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묘안 찾기가 관건이다. 너무 지나치게 나가면 국민들이 외면할 것이고 너무 현실 타협적이면 실망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진심'이다. 추상적인 것 같지만 그게 정답이다.

보통 정치협상을 하면 상대가 자기를 속이러 왔다고 이쪽에서 제안하려고 했던 것도 상대가 먼저 제안하면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단일화 협상이 이렇게 되면 감동을 줄 수 없다. 민주당은 문재인 후보가 단일후보가 되는 것에 당의 운명을 걸었다. 하지만 더 크게는 민주개혁세력의 운명이 이번 단일화에 걸려 있다. 이런 역사적인 협상에서 가장 효과적인 협상 테크닉은 '진심'이다."


태그:#문재인, #안철수, #신계륜, #단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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