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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주 운길산 수종사 삼정헌. 삼정헌에 쓰인 ‘정(鼎)’자는 솥 ‘정’자로 ‘발이 세 개 달리고 귀가 둘이 달린 솥’을 말하는 한자입니다.
 경기도 남양주 운길산 수종사 삼정헌. 삼정헌에 쓰인 ‘정(鼎)’자는 솥 ‘정’자로 ‘발이 세 개 달리고 귀가 둘이 달린 솥’을 말하는 한자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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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주 운길산에 가면 팔당댐 상부인 양수리,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수를 이루는 양수리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수종사가 있습니다. 이 절에는 마음만 먹으면 돈을 내지 않고도 차를 마실 수 있는 찻집이 있습니다. 가격표도 달려 있지 않고, 찻값을 계산하는 카운터도 별도로 없으니 얼마의 돈을 내건 안 내건 그건 순전히 차를 마신 사람의 마음입니다.

찻집 처마에는 '삼정헌(三鼎軒)'이라는 현판이 달려 있습니다. 삼정헌에 쓰인 '정(鼎)'자는 솥 '정'자로 '발이 세 개 달리고 귀가 둘이 달린 솥'을 말하는 한자입니다. 발이 셋 달린 솥에서 어느 다리 하나라도 부러지면 솥은 온전하게 서 있을 수가 없을 겁니다. 벌건 숯덩이를 쏟아내며 불을 낼 수도 있을 겁니다. '정'이란 글자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 될 수 있겠지만 '균형'이라는 의미도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사격을 할 때 목표를 정확하게 맞출 수 있는 건 총에 가늠쇠와 가늠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늠쇠와 가늠자 그리고 목표물을 정확하게 일치시켜서 하는 사격이라면 백발백중, 쏘는 족족 목표물을 명중시키는 명사수가 될 것입니다. 무게를 재는 저울, 장대저울, 양팔저울, 윗접시 저울 또한 힘이 가해지거나 영향을 미치는 곳이 3점(point)이기에 사물의 무게를 정확하게 계량하는 게 가능할 것입니다.

전제부터가 잘못된 <근혜철수뎐>

<근혜철수뎐> 표지
 <근혜철수뎐> 표지
ⓒ 한국경제신문 한경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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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수가 쓰고 한국경제신문 한경BP가 펴낸 <근혜철수뎐>은 18대 유력 대선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박근혜와 안철수를 <논어>에 나오는 몇몇 자구에 빗대어 품평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전제부터가 사실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박근혜와 안철수 외에도 문재인이라는 인물이 유력후보로 엄연히 거론되고 있는데 이런 인물을 배제하고 여론 지지를 양분으로 하고 있는 전제부터가 품평에 대한 신뢰도를 의심하게 합니다. 

강호는 만만한 공간이 아니다. 가슴에 칼 한 자루씩 품고 있는 와호장룡들이 곳곳에 득실거린다. 그런 세계에서 여론의 지지를 양분하고 있는 존재들이라면 일단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 15쪽

<논어>에 나오는 몇몇 자구를 시소의 받침대처럼 들여다대곤 있지만 둘만을 놓고 비교하는 품평은 가늠쇠나 가늠자가 없는 총을 목표물에 겨누며 명중시키겠다는 꼴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장대저울이라고 해도 좋고 양팔 저울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무게를 정확하게 칭량할 수 있는 저울이라면 중심을 이루는 받침점과 양쪽의 등비 접시가 구비되어야 할 것입니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라면 글이 다소 길어지고 중언부언으로 이어질지라도 유력후보 셋, 박근혜와 문재인 그리고 안철수를 받침점과 등비 접시로 삼아 품평하는 것이 보다 객관적일 것입니다.

안철수가 정치 세계와는 다른 공간에서 활동했다는 뜻이다. - 28쪽
하지만 확실한 한 방은 없다. 상식을 무기로 현실을 진단하고 재단하지만 대안은 아직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 45쪽
문제는 이런 시도가 과연 선거를 알차게 뒷받침해줄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 77쪽
과연 안철수가 이를 근사하게 해낼 수 있을까. - 78쪽
안철수는 통치 능력을 보여준 경력이 없다. - 89쪽
안철수의 지인과 용인 능력도 아직 미지수다. - 93쪽
사실 과거에도 안철수와 같은 제3의 후보가 등장해서 '기존의 정당과 정치를 개혁하겠다'는 출사표를 밝히곤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 107쪽
당사자인 안철수 역시, 그런 표현에 동조한 바는 없지만,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그가 즐겨 이야기 하는 '소통'으로 과연 폭발 직전의 분노를 풀어줄 만큼 엄청난 개혁이 가능할까. - 108쪽
그가 얼마나 단단한 '지도자 다움'을 갖추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 121쪽
안철수가 야권 후보 단일화 조건으로 내건 '정치 쇄신'이란 선결 조건도 구체적인 안은 아직 없다. - 123쪽
일부 보수 논객들은 <안철수의 생각>이 겨우 운동권적 인식 수준을 보여줄 뿐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 125쪽
그 밖에 몇 가지 정책을 제안하고 있는데, 눈에 띄게 획기적인 것은 없다. 안철수는 '미래 산업의 동력'이라는 표현과 '디지털 산업 그리고 혁신 경제'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아직은 손에 잡히는 내용을 내보이지 않고 있다. - 128쪽
그러기 위해서라면 아쉬운 대로 국회의원부터 시작하거나, 아니라면 서울 시장이라도 경험하는 것이 기본 아닐까. - 134쪽
안철수의 청치철학은 무엇인가? - 157쪽
안철수가 꿈꾸는 '세상다움'은 너무 추상적이기만 하다. - 177쪽
결론부터 말해 안철수가 발표한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 성공은 주객이 전도되고 본말이 뒤집힌 감이 있다. 실현 여부도 미지수다. - 178쪽
정치 쇄신이라는 목표만을 고려한다면 그가 '당락과 무관하게 완주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 218쪽

무게를 재는 저울, 장대저울, 양팔저울, 윗접시 저울 또한 힘이 가해지거나 영향을 미치는 곳이 3점(point)이기에 사물의 무게를 정확하게 계량하는 게 가능할 것입니다.
 무게를 재는 저울, 장대저울, 양팔저울, 윗접시 저울 또한 힘이 가해지거나 영향을 미치는 곳이 3점(point)이기에 사물의 무게를 정확하게 계량하는 게 가능할 것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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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이건 아니건 간에 저자가 품평한 안철수는 '정치 경험도 없고, 추상적이고, 실체를 알 수 없는 미지수 덩어리'입니다. 하지만 박근혜에 대한 평가는 다릅니다. '잘 훈련된 정치인', '꼼꼼히 준비된 후보', '자타가 인정하는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은 유능한 정치인'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문재인 후보와의 비교, "예컨대 민주당 문재인 대 새누리당 박근혜의 구도라면 준비된 유능함이 장점이고 무기가 된다"는 내용도 슬쩍 끼워 넣는 꼼수도 부렸습니다. <논어>를 빙자한 의도적인 품인(品人)이 아닌가 의심되는 표현들입니다.

카리스마란 대중을 열광시키고 자진해서 심복하게 만드는 초인간적인 천부의 재능이다. - 74쪽
박근혜는 이른바 황태자 교육을 받은 정치인이다. - 75쪽
박근혜의 리더십은 그런 의미에서 '신뢰의 리더십'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 80쪽
통치 능력에 있어선 박근혜가 안철수를 압도한다. - 88쪽
19대 총선을 앞두고 박근혜는 다시 한 번 정당 개혁을 지휘했다. 이번에는 아예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외부에서 충격을 주었다. 그 변화 노력을 유권자들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 111쪽
박근혜의 경력과 이미지는 안정감이란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다. - 137쪽
박근혜는 남녀를 떠나 태산 같은 데가 있다. 박근혜는 깊은 내공을 지녔다. 인생으로나 정치경력으로나 결코 평범하지 않은 경험을 했다. - 138쪽
박근혜 역시 절망의 바다에서 일어선 사람이다. - 140쪽
예컨대 민주당 문재인 대 새누리당 박근혜의 구도라면 준비된 유능함이 장점이고 무기가 된다. - 141쪽
이러한 현실을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그럼에도 이 어려움을 해결해나가려면 나를 따르라고 당당하게 나가야 한다. 그게 박근혜 표 '정치다움'이다. - 143쪽
생애주기맞춤형 복지와 경제민주화, 다 좋은 말이다. 정치 쇄신안도 좋다. 이슈 선점도 좋다. - 149쪽
박근혜는 권력 의지가 강하다 그는 '100퍼센트 대한민국'을 외치며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 158쪽
'사람다움'과 '세상다움'을 넘어 '정치다움'에 다다르기 위해, 박근혜는 '신뢰 사회'라는 키워드를 제시했다. - 182쪽

야권단일화 결과 따라 한 방에 '휴지'가 될 수도 있는 책

수종사 삼정헌에서 마시는 차에는 가격이 없습니다.
 수종사 삼정헌에서 마시는 차에는 가격이 없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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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위정자 훈>에 보면 "그 위치에 있지 아니하거든 그 정사(政事)에 간섭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자는 <근혜철수뎐>을 통해 정사에까지 간섭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앞으로 대한민국의 정사를 좌우한 유력후보자들을 품평함에는 직·간접적으로나마 간섭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현 상황에서 박근혜와 안철수 둘만을 놓고 하는 품평, 문재인을 빼고 하는 품평은 전제도 잘못됐지만 문재인과 안철수가 진행하고 있는 후보 단일화 결과에 따라서는 전혀 쓸모없는 품평, 호되게 헛다리를 짚은 말장난으로 추락할 수도 있을 겁니다.

1982년 한림출판사에서 출판한 <논어>에 보면 "곰팡이가 항생물질이 됨을 딴 외국 사람이 발견해놓고 보니, 우리들은 모두 눈을 뜨고 놀랐다. 공자 왈, 맹자 왈의 곰팡이 같은 낡은 교훈이, 영구히 교(敎)할 길이 없어 보이는 한국의 위정자를 구출하기 위한 항생물질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혹시라도 <근혜철수뎐>이 박근혜와 안철수를 품평함에 <논어>를 빙자한 의도적인 품평이라면 '공자 왈, 맹자 왈'로 대변되는 <논어>는 슬어서는 안 될 나쁜 곰팡이로 악용된 예가 될 것입니다.  

저자는 시중에 떠도는 농담을 빌어 박근혜 주변의 사람들을 '천종삼', '장뇌삼', '인삼', '도라지' 이렇게 네 등급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최상 등급인 천종삼으로 분류하고 있는 김종인 위원장과 박근혜 사이에서 노정되고 있는 갈등을 천종삼으로서의 약발로 생각해야 하는지 아니면 리더의 조건으로 평가한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이 어긋난 것인지가 궁금해지는 시점입니다.

덧붙이는 글 | <근혜철수뎐> 조광수 씀, 한국경제신문사 펴냄, 2012년 11월, 222쪽, 1만3000원



논어 (예스 리커버 특별판)

공자 지음, 김형찬 옮김, 홍익출판사(2016)


태그:#근혜철수 뎐, #조광수, #한국경제신문 한경BP, #논어, #천종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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