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 대웅전을 우회하여 뒤로 가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바로 하늘 높이 자란 감나무이다. 감나무는 키가 어찌나 큰지 고개를 위로 들어야 한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란 감나무가 신기하기도 하지만, 그 나무에 빨간 감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 더욱 더 장관이다.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파란 하늘에 빨간 감은 대조를 이룬다. 빨간 감만 보아도 가을이 깊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산사에서는 감을 따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따려고 마음만 먹으면 딸 수도 있다. 그러나 자비를 실천하는 산사에서 감을 딴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하였다. 사람을 위한 감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늘을 날고 있는 수많은 새들을 위해 양보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것을 까치밥이라고 한다. 하늘을 나는 새들도 분명히 소중한 생명이다. 그들도 살아갈 수 있는 먹이가 확보되어야 한다. 감이 바로 그 것 중의 하나다.
감을 따서 사람의 간식으로 이용하는 것은 아무래도 인색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감을 깎아 곶감으로 만들면 사람의 중요한 먹을거리가 된다. 곶감으로 만들어 먹는 것이 물론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새들이 먹을 식량까지 몽땅 따다가 곶감을 만들어 먹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야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과 새들이 공존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한다면 훨씬 더 아름다울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우리 조상은 옛날부터 상생의 조화를 추구하였다. 감을 딸 때 꼭 새들이 먹을 수 있는 먹이는 남겨두었다. 누가 시켜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그렇게 하였던 것이다. 따기가 힘들어서 따지 않은 것은 절대 아니다. 감나무의 가지 끝에 달려 있는 감들은 따는 것을 자제하였다. 그렇게 남겨 놓음으로써 새들도 먹이는 없는 겨울에 살아남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까치밥. 그래서 따지 않고 남겨 놓은 가지 끝의 감을 우리는 까치밥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하늘을 나는 새들 중에서 가장 우리에게 친근한 새가 바로 까치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할 정도는 까지는 사람과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새들의 대표가 되었고 남겨 놓은 감을 먹게 되는 대표적인 새가 되었다. 물론 까치가 아니라도 다른 모든 새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이 까치밥이다.
산사의 빨간 감을 바라보게 되니, 까치밥이 생각난다. 까치밥의 아름다운 우리네 전통은 언제부터인가 멀어졌다. 감나무에 남아 있는 감 하나까지 악착 같이 다 따버리게 되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란 말인가?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까지 사라졌으니, 까치밥을 남겨 둘 여유는 아예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렇게 야박하게 살아서 우리는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까? 반성하고 돌아볼 때이다.(春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