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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산마다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다.
▲ 퇴촌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산마다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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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상으로 지난 7일이 입동이었으니, 겨울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겨울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이른듯하고 가을이라고 하기에는 늦은 듯도 하다. 두 계절이 맞닿아 있는 계절의 다른 이름은 없을까?

'이것 아니면 저것' 혹은 '흑백논리'를 강요당하며 살아가다 보니, 그 중간에 자리하고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경홀히 여기며 살아가게 된다. 어둠과 빛의 중간지대인 '그늘'이 있음을 잊고 사는 것처럼 말이다.

가을과 맞닿아있는 겨울, 이제 곧 저 산도 앙상한 나목을 늘려가며 숲의 속내를 드러낼 것이다.
▲ 퇴촌 가을과 맞닿아있는 겨울, 이제 곧 저 산도 앙상한 나목을 늘려가며 숲의 속내를 드러낼 것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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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일), 퇴촌엔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간혹은 강풍을 타고 여름의 소낙비처럼 사선을 그으며 내리기도 했다. 변덕스러운 날씨다. 아주 잠깐 햇살이 나온 듯하다가도 다시 비가 내렸다. 나즈막한 산의 가장 깊은 계곡으로부터 안개가 피어오른다.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그리는 듯하다.

더불어 삶, 어우러짐. 우리는 이런 이야기들을 하면서도 날선 삶을 살아간다. 너를 이기지 못하면 경쟁에서 뒤쳐지면 살 수 없다고 한다. 이기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용인되는 세상은 늘 약자들이 더 많은 아픔을 강요당하기 마련이다.

경안천에서 흘러들어와 팔당상수원과 이어지는 물길
▲ 퇴촌 경안천에서 흘러들어와 팔당상수원과 이어지는 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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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더 나아가, 자기의 탓으로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너희는 나처럼 살지 말아라', 자기의 못이룬 꿈을 아이들에게 강요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가 이루지 못한 꿈을 다음 세대는 이뤄줄지도 모른다는 꿈이 허망한 꿈이라는 것을 깨달을 즈음이면 이미 삶의 절반 이상을 소비한 이후다.

개천에 용나듯 변화된 삶을 맞이한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화될 수 없는 현실임에도 이미 가진 자들은 '저것 봐라'하며, 여전히 개천에서 미꾸라지나 이무기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조롱한다.

겨울비를 맞은 단풍나무가 이파리를 떨어뜨린 가지에 물방울 보석을 달고 있다.
▲ 단풍나무 겨울비를 맞은 단풍나무가 이파리를 떨어뜨린 가지에 물방울 보석을 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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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부슬부슬 내린 비는 나뭇가지에 앉아 찬란하다. 입동이 지났으니 겨울비라고 해야할까, 아직 가을 빛이 남아있으니 가을비라고 해야할까? 무엇으로 규정하든, 그것을 겨울비라 부르든 가을비라 부르든 그들의 변하는 것은 아니다.

미사여구. 그렇다. 우리는 온갖 미사여구에 속는다.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마다 국민을 위한다면서 자기가 대통령이 되어야만 이 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면서 장밋빛 미래를 쏟아놓는다. 미사여구를 쏟아놓는다고, 그들의 본성이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냥, 말잔치일 뿐이다.

이파리를 거반 놓아버린 느티나무, 저 산은 아직도 단풍빛을 간직하고 있다.
▲ 느티나무 이파리를 거반 놓아버린 느티나무, 저 산은 아직도 단풍빛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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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도, 어디에선가는 희망을 봐야하지 않겠는가? 이파리를 다 놓아버린 저 나뭇가지가 봄을 맞이하면 새순을 내고 말 것이라는 것을 미리 보는 것 같은 희망말이다. 을씨년스런 날씨 가운데에도 따스한 풍경 들어있으니, 그 소소한 것들을 따스하게 품은 이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하지 않을까?

내가 그토록 증오하고 미워하고 싫어하던 누군가가 내게 들어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겸손해 진다. 그것이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면서, 남들에게로만 향하던 손가락질을 내게 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조금은 위로가 된다.

서시사철 푸르다는 소나무 이파리도 약간은 단풍이 들었다.
▲ 소나무 서시사철 푸르다는 소나무 이파리도 약간은 단풍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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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철 푸르기만 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병이 들었나 싶었는데, 소나무의 단풍이란다. 늘푸른 상록수도 아주 조금씩은 단풍이 든단다. 그랬구나. 보지도 않고 교과서에서 배운대로만 생각했고,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해 보지 못한 것이구나. 눈이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이 보는 것이구나 싶다.

세찬 비와 바람에 흔들리는 숲, 그 바람을 필계삼아 이파리들과 이별을 한다.
▲ 가을숲 세찬 비와 바람에 흔들리는 숲, 그 바람을 필계삼아 이파리들과 이별을 한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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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바람이 몰아치고, 빗방울이 강해진다. 이파리들이  이별을 핑계삼아 우수수 나뭇가지에서 떠난다. 점점 숲의 속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겨울은 숲의 속내를 가장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계절이고, 숲도 스스로 그렇게 자기를 드러내는 계절이다. 그래서 나는 풍성한 가을이 좋지만 겨울도 기꺼이 좋아한다.

계절이 바뀌고 있다. 오늘(14일)은 서울하늘에서 첫 고드름을 보았다. 그래도 아직도 두  계절은 맞물려있다. 여전히 가을인지 겨울인지, 그리하여 가을비라고 해야할지 겨울비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겨울의 숲처럼, 대선후보의 속내를 훤히 들여다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들의 속내를 가리운 모든 것들을 바람에 날려버리고, 온전히 속내를 보면서 그들이 어떤 새순을 낼 수 있는 나무인지, 어떤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나무인지 똑바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1일 퇴촌에서 담은 사진들입니다.



태그:#퇴촌, #가을, #겨울, #물방울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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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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