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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3일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책 읽는 나라' 정책포럼이 열린 가운데 김민웅 대표가 개회사를 하고 있다.
11월 13일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책 읽는 나라' 정책포럼이 열린 가운데 김민웅 대표가 개회사를 하고 있다. ⓒ 오승주

지난 1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책 읽는 나라' 정책포럼이 열렸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궁금한 것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출판계, 도서관계, 문화콘텐츠 산업 전반의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대선을 맞이해 이 자리에서 뜻을 모을 수 있을지, 두 번째는 유력한 대선 주자들이 출판문화산업에 대해서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하는 점이다.

대통령선거일을 한 달 남짓 앞둔 시점에서 후보들의 각종 공약이 제출되고 있지만 유독 출판문화산업과 관련된 공약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궁금함이 더 컸다. 애초에 포럼에는 대선후보가 모두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일정에 밀리면서 결과적으로 세 후보 모두 참석하지 못하고 대리인들을 보냈다.

먼저 안철수 후보 측 대리인인 박선숙 공동선대본부장이 말문을 열었다. 급한 브리핑 일정 때문에 급히 순서를 바꾸고 말을 하게 되어서 죄송하다며 거듭 사과를 한 이후 안철수 후보의 생각을 소개했다.

박 본부장은 책읽는나라만들기국민연대회의가 제시한 자료를 잘 받았다고 운을 뗀 후 "정책에 구체적으로 이에 관한 내용들을 아직까지 충분히 표현하고 있지 못하다. 앞으로 당연히 포함되어야 하고 계획들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는데, 이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안철수 캠프에서는 출판문화산업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이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다만 "안철수 정부가 만들고자 하는 미래기획위원회의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며 구체적인 공약을 약속하는 수준이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측에서는 도종환 의원이 참석했다. 그는 "국회의원들은 행사가 있을 때 자리에 앉았다가 가는 게 일인데, 저는 끝까지 참석해서 다 듣고 가겠다"고 말했다. 앞서 연사들이 발표한 내용의 요지를 하나씩 열거하고 따로 요청한 자료들을 챙기면서 문재인 후보보다 먼저 읽고 정책으로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며 문화정책에 대한 의지를 강조했다.

그리고 문재인 후보의 메시지를 대신 읽는 것으로 문재인 캠프의 비전을 전달했다. "학술 및 문화예술 콘텐츠의 기본 토양인 지식기반산업이 생존의 위기를 넘어가야 마땅하다"고 운을 뗀 후 "지금 출판을 비롯한 관련 업계의 어려움이 도서출판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잘못된 정책 및 법률 때문이라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하며, 도서출판 유통구조의 획기적 개선을 위해 도서정가제 등 법 제도 정비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전했다.

이 내용 안에는 현재 출판계의 뜨거운 이슈인 도서정가제 문제가 명시돼 있었다. 예산 부분에 대해서도 "정부 예산의 1.5% 이상으로 문화예산을 확충해 문화산업진흥의 토대를 확충"할 것을 약속했다.

박근혜 캠프에서는 박명성 문화특보가 참석해 메시지를 전달했다. 박근혜 캠프의 메시지는 예산과 법률 체계 재정비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박근혜 후보가 얼마 전 문화예산을 '단계적으로' 2%까지 늘리겠다고 약속을 했다"는 점을 부각시킨 후 "문화 예산 2%가 늘어나면 전체 예산으로 따지면 약 4조 정도가 늘어난다. 문화예산 2%를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 하는 데 각계 전문가들의 토론이 좀 필요하다"고 구상을 전달했다.

그리고 관계법률 체계에 대한 개혁 의지도 밝혔다. "현재 20세기 방식으로 되어 있는 문화예술 관련 법 체계들이 모두 누더기 법인데, 이를 전반적으로 재검토해서 21세기에 맞게 만들고, 출판문화예술계가 동의할 수 있는 법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말로 메시지를 마무리했다.

출판문화산업이 각박한 생존위기에 놓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문재인 후보 측이 다소 구체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문재인, 박근혜 후보는 제도와 법률, 그리고 예산 차원에서 대안을 마련하려고 했다. 도서정가제 등 현안 문제에 대해서는 문재인 후보가 구체적인 인식을 보여줬으며, 박근혜 후보는 전반적인 법률 체제의 개선을 제시했지만 구체적인 인식은 볼 수 없었다.

문화예산과 관련해서 박근혜 후보 측이 구체적인 예산의 범위를 제시하고 예산액도 크지만 '단계적으로'라는 단서가 자못 신경이 쓰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747공약을 '단계적으로' 성사시키겠다고 공언한 바 있기 때문이다. 두 후보 모두 구체적으로 예산을 제시했다기보다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총체적 위기 속의 총궐기" 깃발은 들었으나

 "책 읽는 나라,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한 정책포럼. 왼쪽부터 남태우(한국도서관협회 회장), 김언호(파주북소리 조직위원장), 김민웅 대표, 최재천(이화여대 석좌교수), 여희숙(도서관친구들 대표), 안찬수(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사무처장)
"책 읽는 나라,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한 정책포럼. 왼쪽부터 남태우(한국도서관협회 회장), 김언호(파주북소리 조직위원장), 김민웅 대표, 최재천(이화여대 석좌교수), 여희숙(도서관친구들 대표), 안찬수(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사무처장) ⓒ 오승주

포럼을 개최한 책읽는나라만들기연대회의(대표 김민웅)는 대한출판문화협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한국도서관협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서점조합연합회,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등 책과 관련한 많은 시민단체가 결합한 연대기구다. 한마디로 책을 중요하게 다루는 모든 곳에서 참여했다고 말할 수 있다. 책과 관련된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은 김민웅 대표(성공회대 교수)의 개회사에도 잘 나타난다.

"지식의 콘텐츠를 만드는 것 자체가 위기에 부딪혔고, 유통도 위험해졌고, 학습·보존하는 학교, 도서관이 어려워졌다. 출판은 출혈 상태이며, 도서관은 질로 승부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지식의 기획도 시장의 논리에 빠져 기반 자체가 동요되는 상황이다. 한국의 지식 커뮤니티 전체가 앞길이 보이지 않고 있다. 그동안 여러 분야가 독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왔지만 쉽지 않다. 이렇게 갈 수 없다는 자구책의 비상대책적 성격을 가지고 생각이 모아지기 시작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서, 책을 사랑하고, 출판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책과 관련된 곳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거의 처음 보는 일이었다. 출판업계만 하더라도 일치단결된 모습을 오랫동안 보여주지 못했는데, 도서관계와 교육계까지 모인 점을 보면서 대통령선거의 위력을 실감했다.

책과 관련된 모든 구성원들이 목소리를 내는 자리이다 보니 관련된 현안과 문제점, 대안책들이 무수히 쏟아졌다. 여을환 어린이도서연구회 상임이사는 아이들의 독서실태와 어린이출판 시장과 어린이교육 시장의 병폐, 마음의 병을 깊이 앓아가는 어린이가 늘어나고 있는 실태 등을 보고했다.

윤철호 출판문화살리기 비상대책위원장(사회평론 출판사 대표)는 사라진 서점 지도를 보여주며 출판유통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보고하며 업계에서 연구한 대안을 제시했다. 백화현 봉원중학교 교사는 우리 학교의 교육 현실을 현장의 사례로 소개하며 책을 통해 교육 프로그램을 직접 시행해본 결과 긍정적인 변신에 성공한 국내외의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하며 책의 교육적 가치에 대해서 역설했다.

윤희윤 한국도서관·정보학회장(대구대학교 교수)는 지식사회의 기반 구축이 견고한 시스템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논리를 구조도를 통해서 보여주었다. 2부로 진행된 좌담에서는 김민웅 대표의 진행으로 남태우 한국도서관 협회 회장과 김언호 파주북소리 조직위원장,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여희숙 도서관친구들 대표, 안찬수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사무처장이 참석해 '책읽는 나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관한 의견을 주고 받았다.

최재천 교수는 일본의 동료 교수와의 비교를 제시하며 눈길을 끌었다. 지난 몇 년간 같은 종의 책을 펴냈지만 동료 교수는 이본에서 아파트를 구매한 반면, 자신은 돈이 어디로 날아가버렸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도서관 3천개 만들기 정책만이라도 시행돼 책을 쓰는 사람들이 안정적인 생활 기반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발표자들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책의 재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이 단지 지식을 쌓는 기호품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공동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치료약이자 보약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인지하고, 사회 곳곳에 좋은 에너지를 주는 데 뜻을 모아내자는 취지로 이해했다.

이야기를 듣고 자료를 살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대통령 후보가 책읽는나라만들기연대회의의 요구조건을 들으려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까. 각계의 요구사항은 있지만, 우선순위나 로드맵, 그리고 당장 어떤 실천 방안을 진행하면 될까 하는 단계로 고민을 옮겨 보면 장벽에 부딪친다. 만약 도서정가제에 정책을 집중한다면 학교 교육이나 도서관 정책은 어떻게 해야 할까. 내부 논의를 통해서 일반 대중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간명한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웠다.

러시아의 심리학자가 쓴 교육학의 고전인 <생각과 말>(살림터)에는 '생각'과 '말'이 같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혀 다르게 작동한다는 점을 설파했다. 생각과 말은 '의미'라는 선으로 연결될 때 존재가치를 찾는다고 한다. 그것은 사회학자들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사회학자들은 '언제 사회가 현실화되느냐?'라는 질문을 가지고 오랫동안 연구했는데, 평소에는 사회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정말 이대로는 안 되겠다.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때 순간적으로 사회가 발현된다고 한다.

예컨대 아빠가 저녁에 아이와 함께 30분 동안 책을 읽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들이 확보되어야 할까? 우리나라 노동현실에서는 이런 장면이 만들어지기 쉽지 않다. 아이가 깨어 있을 때 퇴근할 수 있는 일반적인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업계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 업계의 협조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정치가 움직여야 하고 오랜 설득 작업이 필요하다. 이러한 다양한 사회의 이해관계 속에서 '의미'가 살아날 수 있다.

출판계, 도서관계, 교육계가 아무리 힘을 모았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아빠가 아이에게 하루 30분 책 한권 읽어주는 문제조차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창의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 대중들에게 도서정가제, 도서관정책 등의 어려운 용어는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저녁이 있는 삶'과 같은 구호처럼 단순하면서도 구체적인 언어로 다가가야 공감할 수 있다.

단지 깃발을 들었다는 데에 의미를 둔다거나 생존의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국민의 삶과는 별 관계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더욱 출판문화계가 애써 발족한 기구의 생각과 말들이 어떤 의미로 통일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책읽는나라 정책포럼#책읽는나라만들기국민연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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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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