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 불안과 차별로 시름하던 기간제교사들이 스스로 조직을 만들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선 성과급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2800여 명의 기간제교사들을 대표해 전국기간제교사협의회(이하 전기협)의 공동대표 7명이 기자회견을 했다.
그런데 이날 단상에서 공동대표들은 일제히 각시탈을 썼다. 이들은 "불이익을 우려해 얼굴을 드러낼 수 없다"며 탈을 쓴 이유를 설명했다. 자칫 비겁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한 번만 더 생각해보면 부당한 것에 맞설 때조차 얼굴을 가려야 하는 약자의 서글픔이 제대로 이해되는 지점이다.
바로 그 지점을 이해한다면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신분을 바탕으로 어떻게든 도울 길이 없을까 고민하는 정규교사들이 있다.
기간제 교사들과 성과급을 나누는 정교사들 서울 A고 기간제교사들에게 성과급과 관련한 차별은 남의 얘기다. 이들은 2009년부터 이미 성과급을 받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성과급의 출처는 교과부도 교육청도 학교도 아닌 동료 정교사들이다.
2009년 당시 A고의 전체 교사 66명 중 기간제교사는 6명이었다. 그 해 2월 A고 정교사들의 한 모임에선 전체 교직원 간 우호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한 방편으로 기간제교사들과 성과급의 일부라도 나누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에 33명의 정교사들이 동의하며 총액 270만원이 모였고 6명의 기간제교사들에게 균등 배분됐다.
당시 근무 중인 기간제교사들 중엔 A고에 신규 발령을 받은 이들도 있었다. 전년도 성과를 반영한다는 성과금의 원칙에 따르면 이들은 대상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A고 성과급 나눔의 목적은 '성과에 대한 보상'이 아닌 '전체 교사들의 우호적 관계와 사기 진작'에 있기에 신임 기간제교사들에게도 성과금이 전달됐다.
A고 정교사들이 당시의 결정과 관련해 가장 걱정한 것이 자신들의 우호적 행위가 자칫 기간제교사들의 자존심을 건드려 상처를 줄까 하는 부분이었다고 한다. 이에 그 학교에서 기간제교사로 4년째 근무 중인 두 분을 만나 조심스레 의견을 물었고 긍정적 답을 들은 후 안심하고 진행했다고 한다.
이 아름다운 전통은 기간제교사가 14명으로 늘어난 2012년 현재에도 상조회를 통해 계속되고 있다. 재단이나 학교 관리자의 반대도 없고 오히려 도중에 이 일을 알게 된 교감은 이를 말리기는커녕 자신의 성과급 일부를 내놓으며 동참했다고 한다.
기간제교사에게 성과급을 전달하는 일을 주도한 A학교 정교사들에게 최근의 기간제교사 성과급 소송에 대한 의견을 묻자, "우리가 몇 년째 성과급을 나누는 모습 그 자체로 대답이 될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같은 업무와 같은 수업을 하는 기간제교사들이 성과급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이해할 수 없어 자체적으로 단위 학교에서 이런 편법 아닌 편법을 써왔단 얘기다.
또 이들은 "97년 이후로 비정규교사들이 학교 내에 급증했는데, 교육과정 개편과 학생 수 감소라는 특별하고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현재 이를 악용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비정규 교사들은 신분상의 약점 때문에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각 학교에서 어렵고 힘든 일을 떠맡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명백하고 필수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반드시 정교사로 채용해야 한다"며 "특히 정교사 자리에 기간제교사를 몇 년씩 채용하는 일은 그야말로 사학의 부도덕성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교육청은 그런 학교에 지원금을 주지 않는 등 불이익을 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기협에 가입한 정교사, 대체 왜?
전기협 인터넷 카페를 만들고 회원모집을 진행 중이던 6월 어느날 전기협 운영진은 쪽지 한 통을 받았다. 발신자는 '아벨'이란 닉네임의 경남의 한 고등학교 정교사였다.
그는 전교조에서 교권상담을 3년째 맡아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기간제 교사에 대한 차별을 인식하고 관심갖게 됐다며 "나는 정교사지만 그간 익힌 지식으로 전기협 회원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며 조심스레 회원 가입을 청해왔다.
운영진은 고민 끝에 '아벨'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그는 카페에 수시로 접속해 부당한 계약이나 차별 상황에 대한 기간제교사들의 고민에 법적, 교육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답글을 정성껏 달기 시작했다. 그것만으로도 기간제교사들은 '아벨'에게 적잖은 신세를 졌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아벨'이 소속된 경남 지역의 한 기간제교사는 초등학교 담임교사임에도 계약기간에서 방학이 배제되는 이른바 '쪼개기 계약'의 불이익을 당했다. 해당 교사가 국가인권위에 스스로 진정을 내 인권위가 시정을 요구했으나, 경남교육청은 이를 수용하지 않고 있었다. 이에 아벨은 자신이 활동하는 전교조 경남지부에 '쪼개기 계약'의 부당함을 알렸고 노동위원회에 차별시정을 신청했지만 노동위원회는 아예 이를 기각해 버렸다.
아벨은 단념하지 않았다. 이번 계기를 통해 쪼개기 계약을 뿌리뽑겠단 그의 신념은 전교조 본부를 설득했고 민노총 법률원을 통한 소송제기로 이어졌다. 그리고 지난 13일 행정소송 1심에서 재판부는 해당 기간제교사의 손을 들어줬다. 담임교사로서 계속적 업무를 하는 기간제교사에 대해 방학을 배제한 계약을 하는 것은 부당하단 판결이었다.
'쪼개기 계약'의 부당함을 최초로 알린 이 재판에서 아벨의 공은 적지 않다. 하지만 그는 기자의 평을 "그렇지 않다"고 잘라말한다. 3년간의 교권상담을 통해 기간제교사에 대한 차별 문제가 심각함을 조금 알았을 뿐 자신은 정교사라 그 차별을 완전히 체감하지 못해 놓치는 부분이 너무도 많아 미안할 뿐이란다.
하지만 그는 기간제교사들이 겪는 차별을 어쩌면 기간제교사들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는 계약기간과 보수, 과도한 업무량으로 나누어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는 그처럼 기간제교사의 문제에 관심이 많은 참으로 '독특한' 정교사였다.
아벨은 기자와의 대화에서 "기간제교사도 선생님"이란 말을 반복했다. 정규직 교원이든 기간제 교원이든 임용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학생교육을 위해 최일선에서 애쓰는 선생님이란 설명이었다.
그는 교육공동체에서 역할의 차이가 없는데 국가나 교육청이 자신들의 지침을 통해 차별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도 슬픈 현실이라며 보수나 대우를 같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정당국의 인식의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꼬집었다.
즉, 교육행정당국은 기간제교사를 필요할 때 잠시 사용하고 버리는 소모품처럼 대우할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을 책임지는 소중한 존재로 생각하여 언제라도 더 나은 교사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다른 무엇보다 정규-비정규 교사 간 연대가 절실함을 거듭 힘주어 말했다.
'의자놀이'의 해법은 교육노동자들 간 연대 A고 정교사들의 나눔과 아벨의 실천을 보며 기자는 공지영의 <의자놀이>를 떠올렸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아픔을 겪는 과정에서 정규-비정규직 노동자들 간 연대를 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당장 나는 안락한 의자에 앉아있음에도 의자에 앉지 못해 가슴치며 서성이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자, 우리가 자리를 좁혀 앉을테니 우리 함께 앉자"며 손 내미는 모습, 나아가 "왜 의자가 이것 밖에 없지? 의자를 더 만들어보자. 이 공간엔 의자를 더 놓아야만 해"라며 근본적 대안을 찾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비정규교사의 대명사인 기간제교사 문제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현재의 차별 시정도 중요하지만 '법정 교원수 확보'가 절실하다고 말한다. 정교사의 휴직이나 교육과정 변경으로 인한 기간제교사 활용은 어쩔 수 없는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2012년 현재 4만 여명에 육박하는 기간제교사의 수는 정말 휴직과 한시적 교과목 대체 명목으로만 기간제교사를 채용하는 것이 아님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정교사들이 자신들의 성과급을 모아 기간제교사들과 나누는 자구책을 마련하고, 정교사가 기간제교사 모임이 가입하고 불이익을 당한 기간제교사의 소송을 돕는 모습. 이 모습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다른 것을 몰라도 교직사회의 계급화와 교육노동자 간 차별은 비정규교사 뿐 아니라 정규교사들 역시 불편하게 한다는 것 그것 하나만은 확실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성과급을 나눈 A고 선생님들과 기간제교사 교권상담을 실천하시는 아벨 선생님께 사진을 부탁드렸으나 부끄럽다면서 끝내 거절하셨습니다. 선생님들의 겸손한 모습에 한번 더 감동했고 행여 해가 될까 싶어 선생님들의 학교와 실명을 모두 비공개합니다.
교육희망에도 송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