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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지 외화벌이 수출품이었다!"



한 해외입양인이 내게 한 말이다. 해외입양인 1인당 약 1000만 원의 수수료를 받고 여전히 사설입양기관의 주도로 해외입양을 열심히 보내는 조국을 향해 던진 이 말 한 마디는 지금도 내 가슴과 뇌리에 잊히지 않는 충격으로 남아있다.



또 다른 해외입양인은 내게 이렇게 소리치듯 절규했다.



"해외입양 제발 그만해라! 해외입양은 인류에 대한 범죄다"

(No more international adoption! International adoption is a crime against humanity!)



이런 해외입양인들의 절규에 가까운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내가 한국인인 것이 너무 부끄럽고 심지어 저주스럽기까지 하다. 우리나라는 이제 더 이상 해외입양을 보내서 달러를 벌어와야만 경제와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그렇게 절대 빈곤에 처한 나라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도 우리는 지금도 세계 4위 해외입양국, 누적숫자 세계1위 해외입양국으로, 매년 약 1000명의 아이들을 계속해서 해외로 입양보내고 있다. 이런 반인륜적 행위는 어떤 변명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지난 5월 나는 "해외입양은 '인종차별'의 다른 모습"이라는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그리고 해외입양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우리사회에 공유하기 위해 그 기사를 몇몇 지인들에게 보냈다. 그리고 또 영어로 번역하여 해외지인과 국내에 있는 외국특파원들에게도 보냈다. 그런데 그 후 며칠 지나서 영국에 있는 한 지인으로부터 이런 메일을 받았다.



"당신이 나를 '인종차별주의자'로 함축하는 기사를 보고 분개합니다! 앞으로는 내게 다시는 메일을 보내지 마세요."



내게 이런 메일을 보낸 그 영국인은 나와 가까운 한 영국대학교의 교수로 한국아이 둘을 해외입양해 키우고 있었다. 영국유학 시 그의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식사도 몇 번 한 사이라 그의 분노에 찬 메일이 좀 뜻밖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인종을 넘어서 국제결혼을 한 당사자라 나는 그 영국 교수에게 즉시 이런 메일을 보냈다.



"제 기사가 마음을 상하게 했다면 죄송합니다. 그러나 저는 잘 아시는 대로 국제결혼을 한 사람으로서, 교수님을 전혀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기사의 요지는 한국의 열악한 복지제도와 한국정부의 해외입양과 관련한 잘못된 정책 우선과제를 지적한 것입니다."



그러나 나와 한때 가까웠던 그 영국 교수는 지금까지 6개월 동안 내게 아무런 답장을 하지 않고 있다. 화가 단단히 난 것 같다. 이러한 일을 겪으면서 나는 해외입양의 문제점, 정확하게는 인도주의보다는, 이윤추구와 다국적 기업형태의 비즈니스 중심으로 돌아가는 해외입양산업의 문제점을 타인, 특히 입양부모들에게 이해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실감하게 되었다.



OECD 국가 중 유일한 아동수출국


 
싱글맘의 날
 싱글맘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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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해외입양을 보내는 국가다. 오늘날 '강남스타일'과 '한류'로 세계 문화를 뒤흔든다는 나라, 인터넷강국과 과학기술을 자랑한다는 살기 좋은 나라라는 곳에서 왜 세계의 다른 빈곤국처럼 해외입양을 계속해서 보내고 있는 것일까?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특별히 미혼모에 대한 우리 사회의 극심한 차별 문제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해외입양은 곧 미혼모와 여권의 문제이며, 미혼모의 양육권을 보장하지 않는 우리사회의 구조적 문제다. 입양의 문제점은 인간의 기본권인 자신의 자식을 키울 권리를 사회구조적으로 박탈한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자기가 낳은 자식을 스스로 키우면 되지 누가 말리나?"며 자녀 양육을 '포기'하고 입양을 보낸 미혼모들을 비난한다. 그러나 이런 비난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철저하게 간과한 맹목적 비난이다. 정상적인 엄마라면 당연히 자기가 낳은 아이를 스스로 키우고자 최대한 노력한다. 그런데도 엄마가 자녀 양육을 포기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극한상황과 불가피한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유럽과 북미의 미혼모 99% 이상이 자녀를 스스로 키우는데 그 원인은 첫째 국가의 지원이고 둘째는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열악한 복지체계와 미혼모에 대한 극심한 사회적 차별 때문에 미혼모의 80%가 자녀양육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미혼모가 아이를 낳을 때까지 지낼 수 있는 시설은 25개다. 그런데 그중 17곳이 아이를 판매하여 이윤을 추구하는 사설입양기관에 의해 운영되며, 일부는 심지어 입양을 먼저 약속해야 입소할 수 있다. 그렇게 시설에서 태어난 아기들은 '아기농장'으로 불리는 해외입양 시장에서 한 명당 1000만 원 정도 비용으로 '거래'된다. 사실상 해외입양이 계속돼야만 돈을 벌 수 있는 입양 비즈니스 관계자들이 입양 문제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현실이다. 



해외입양인의 인종적 자살


 
제 1회 싱글맘의 날 행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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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리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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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나라는 '저출산율 세계 1위'의 국가이면서 동시에 '아기 해외판매국 세계4위'를 기록하는 나라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렇게 해외입양된 아이들은 또다시 낯선 백인들의 나라에서 어려서부터 10대를 거쳐 성장할 때까지 갖가지 인종차별과 정체성 위기를 겪으며 온갖 고통과 괴로움 그리고 후유증으로 평생 시달린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입양인들이 결혼을 하지 않거나 후손을 낳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통계에 의하면 입양인의 결혼률은 일반인보다 훨씬 낮고, 결혼해도 자녀출생률이 낮다. 사회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인종적 자살'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문제와 모순은 입양이 정부주도의 사회복지제도 대신 이윤추구의 사설입양기관에 의해 주도되는 한 영원히 해결될 수 없다. 해외입양인들이 해외입양된 후 온갖 심리·정서적 문제를 겪은 뒤 나중에 친가족을 만나게 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아동이 친가정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국가와 정부의 당연한 책무다.



2009년 11월 8일 <뉴욕타임스>는 한국 입양인들이 미국사회에서 겪는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루었다. 뉴욕타임스는 에반 도널드슨 입양연구소가 179명의 한인입양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를 근거로, 이들이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한인입양인 78%가 어렸을 때 자신을 백인으로 생각했거나 백인이 되기를 원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60%는 중학생 때부터 인종에 대한 정체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많은 한인입양인들이 미국에서 인종차별을 경험하고 정체성 문제로 갈등과 혼동의 시간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한인입양인들은 미국이라는 낯선 타국에서 친부모 품에서 강제로 이별된 상처로 인해 우울증, 두려움, 강박관념, 고립감, 분노, 무기력감, 모호한 정체성 문제 등을 혼자서 감당하는 힘겨운 체험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 사회는 지금도 아동을 버린 미혼부에 대해서는 아주 관대한 반면 어떻게 해서든지 그 아이를 키워 보려고 바동거리는 미혼모는 마치 범죄인 취급을 한다. 그래서 그런 사회적 압력과 잘못된 편견에 못 이겨 결국 80%의 미혼모가 아이를 키울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포기하고 해외입양을 택한다. 이 뉴욕타임스 기사는 당시 아들을 혼자 낳아 키우는 30대의 한 한국 미혼모가 "한국에서는 미혼모가 되면 부도덕한 실패자로 낙인찍힌다"며 그녀가 "8번이나 회사로부터 채용을 거절당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시설 중심에서 가정보호 중심으로



입양은 물론 부모 없는 외로운 아이들에게 새로운 가족을 소개해 주는 좋은 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보다 좋고 바람직한 일은 아이가 친부모와 함께 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최대한으로 그런 바람직한 환경조성을 위해 노력하고 지원할 책무가 있다.



이런 면에서 지난 16일 보건복지부가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발표한 국외입양인 사후관리 종합대책을 환영한다. 이날 발표회에서 정부는 세계 91개국이 이미 비준한 입양아동 인권보호를 위한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에 뒤늦게 가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래서 정부는 올해 안에 법무부와 외교부 등 관계부처와 헤이그협약 가입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구성할 계획이며 또한 최근 이슈가 된 국적 미취득 미국입양인의 국적 취득을 돕기위해 미국정부와 협의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외에도 정부는 국외입양인 뿌리찾기를 돕기 위해 사설입양기관의 정보공개 의무이행을 내실화 하되 장기적으로는 민간 입양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입양정보를 정부 혹은 공공기관으로 이관해 입양인 뿌리찾기 권리를 보장하는 방안을 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제 남은 것은 조속한 실천이다. 이경은 복지부 아동복지정책과장이 밝혔듯이 "헤이그 국제아동입양협약은 아동이 친부모 아래 자라도록 최대한 노력하되 '그것이' 어려우면 국내입양, 국제입양 순으로 검토토록 명시하고 있으며 시설보호는 최후의 방편"이다. 그래서 "헤이그아동입양협약에 가입하려면 시설중심으로 된 아동보호체계를 가정보호 중심으로 개선해야 한다".



늦게나마 정부가 우리나라 아동보호체계를 지난 60년 동안의 시설중심에서 가정보호중심으로 개선하겠다는 노력을 기쁘게 생각하며 이제 그 실천을 지켜보겠다. 그래서 향후 다시는 이 땅에 "나는 단지 외화벌이 수출품 이었다!"고 절규하는 해외입양인이 한 명도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해외입양인모임(TRACK) 이사이다.


태그:#TRACK, #해외입양인모임, #헤이그협약, #입양,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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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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