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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후보 단일화를 위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간의 TV토론이 끝이 났다. 시간이 두 차례 조정되는 우여곡절 끝에 21일 오후11시 15분부터 시작된 토론은 많은 사람들의 밤을 잊게 해 주었을 것이다. 평소 같으면 딴 짓도 하면서 여유를 가지고 시청했으련만, 일찌감치 오마이뉴스로부터 토론 총평 기사를 청탁 받은 처지라 평소 하지 않던 메모까지 해가면서 귀를 쫑긋 세우고 내용 하나하나를 새겨들어야 했다.

시민기자가 쓰는 토론 관전평은 아무래도 '날 선 공방을 벌였다'느니 '기 싸움이 대단했다'느니 하는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기자 개인이 어떻게 토론을 보았는지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언론들은 서로의 멘트를 번갈아 따서 대비 시키고, 몇 가지 쟁점이 되었던 내용을 소개하는 것으로 보도가 됐다. 이런 식의 무색무취한 기사 방향보다는 이 글에서는 기자 개인이 받았던 느낌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자 한다.

모두 발언, 안철수 감성적 접근 인상적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2012 후보 단일화 토론회'에 참석해 토론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2012 후보 단일화 토론회'에 참석해 토론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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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발언에서 문재인은 자신의 국정 경험을 강조했고, 안철수 후보는 시내버스 파업을 시작으로 정치 불안을 엮어내고 자신이 받은 편지를 소개하면서 "지금 아니면 언제 국민이 정치를 이겨보겠느냐!"면서 자신의 당위성을 이야기했다. 두 후보 모두 원고를 보기 위해 지나치게 아래를 내려다보는 모습을 보여 TV토론에 들어가면서 상당히 긴장하고 있음을 나타냈다. 내용적으로는 안철수의 감성적 접근에 점수를 더 주고 싶은 모두 발언이었다.

그러나 여유를 먼저 찾은 것은 역시 문재인이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역시'라는 말을 쓴 이유를 사족처럼 붙여야 하겠다. 문재인은 TV토론에 있어서는 아무래도 안철수보다 경험이 더 많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과 안철수 후보 모두 학습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로 평가받고 있다. 단기간에 정치인으로 변신을 한 공통점을 가진 두 사람이 유력한 대선 후보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가진 학습 능력이 아니면 설명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학습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경험이 가지는 무게를 단박에 뛰어넘기란 쉽지 않다. 필자는 그래서 안철수 후보보다는 문재인 후보가 TV토론의 긴장감을 빨리 떨치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그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첫 질문, 문재인 이야기 훨씬 잔영에 남아   

아무래도 사회자가 첫 질문이라고 던진 군대 시절 에피소드에 대한 질문도 결과론적으로 문재인이 안정적인 페이스를 빨리 찾도록 도와준 것이 아닌가 싶다. 군대 시절에 대한 스토리텔링은 비교적 편한 군복무라 할 수 있는 군의관 출신의 안철수 후보보다는 특전사로 강제 징집을 당한 문재인 후보에게 비교우위가 있었을 것 같았다. 안철수 후보는 해군으로 복무하면서 받은 하얀 제복을 이야기했고 문재인 후보는 여자 친구가 먹을 것은 안 가져오고 특전사와 잘 안 어울리는 안개꽃을 들고 온 이야기를 했다. 이 질문을 시작으로 문재인 후보는 급속도로 안정감을 찾으면서 토론에 자연스럽게 젖어들었고, 기자의 귀에도 문재인 후보의 이야기가 훨씬 잔영이 많이 남았다.

이후 이어진 정책 토론은 언론에서 공방이 벌어졌다는 표현이 많이 사용되었으나, 새누리당 논평대로 조금 밋밋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것은 후보의 문제였다기 보다는 기본적으로 경쟁자이면서도 함께 단일화를 해 나가야할 대상이라는 측면에서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TV토론에 대한 역사적 경험이 있듯이 반듯이 상대방을 몰아세운다고 단일화 토론의 승자가 될 수 없다는 것도 후보들이 미리 감안했을 것이다.

예상대로 안철수 후보는 참여정부 당시의 정책적 실패, 가령 재벌 개혁의 후퇴와 같은 것들을 언급하면서 자연스럽게 문재인 후보의 책임을 부각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대한 문재인의 방패는 실패를 인정할 것은 인정하면서 오히려 이를 국정 경험의 모습으로 바꿔보이게 하는 노련함을 보였다.

모두 발언 때 빼고 훨씬 자연스러웠던 문재인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와의 '2012 후보 단일화 토론회'에 참석해 토론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와의 '2012 후보 단일화 토론회'에 참석해 토론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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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세적인 모습은 상대적으로 안철수 후보보다는 문재인 후보에게서 더 많이 보였다. 단일화 협상의 와중에서 안철수 후보 측이 전혀 물러선 안을 제시하지 않는다거나 제대로 보고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의 발언을 할 때에는 제대로 한판 붙는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대북 정책에서도 안철수 후보측이 금강산 관광 재개에 전제를 다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정책과 다르지 않다고 몰아세우는 모습도 보였다.

안철수 후보는 교수 출신이라서 그런지 주도권을 가진 시간에도 설득형 대답을 유도하는 질문보다는 설명형 대답을 유도하는 질문이 많았다. 가령 '경제 성장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지 못하는 근본 원인'을 물어본다든지, 복지 분야 질문에서 수치의 구체적 의미를 물어보는 것들이 그런 느낌을 들게 하였다.

일반적으로 수치에 관한 의미를 물어볼 때는 상대방의 수치 제시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경우가 많고, 경제 정책에 대해서는 원인보다는 정책의 효과성을 가지고 공방을 벌이는 경우가 많은데, 안 후보의 이런 질문들은 그런 방향과는 거리가 있었다.

일자리 창출의 미진에 대해서 문 후보는 대기업의 성장이 중산층과 서민에게 연결되지 않는 이유를 댔고, 안 후보는 금융과 실물 부문의 분리를 원인으로 지목했지만, 크게 토론이 될 성질은 아니었다.  안 후보 개인적 성격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캠프 차원의 연성 전략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안 후보에게는 부드러운 경향성이 토론 내내 시종일관 유지 되었다.

토론의 외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문재인 후보가 훨씬 자연스러웠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카메라 앞에서 문재인 후보는 모두 발언에서만 원고를 계속 내려다보는 식의 부자연스런 모습을 보였을 뿐, 이후에는 손과 몸짓이 자연스러워지면서 카메라와 안 후보를 쳐다보면서 토론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반해 안철수 후보는 모두 발언을 하는 초반에 비해서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지나치게 준비한 원고와 자료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였다. 말 한마디와 제시될 자료 하나하나를 정확히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리더의 카리스마는 보통 말하는 와중에 드러나는 법인데 약간 부족했던 면이 있음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여담이긴 하지만 대중들 앞에 정치 지도자들이 처음 자신의 정견을 제시할 때에는 누구나 어려움을 겪는 법이다.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 김정은은 처음으로 대중 연설을 할 때 군중들을 보지 못하고 원고의 글자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의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군중 앞에서 보인 여유로운 모습은 타고난 것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많은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쌓인 것이다.

TV토론의 달인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경선 후보 시절에 1대 다수의 패널 토론에서는 큰 취약점을 보였다. 상대방의 논리적 허점을 끌어내던 청문회와 자기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대선후보 TV토론은 긴장도의 차이가 크다. 청문회의 경우에는 논리와 상대방의 발언 자체에 집중하며서 자신에게 쏠린 TV 카메라와 그 너머에 있는 대중들의 시선을 잊고 자연스럽게 발언할 수 있지만, 대선 후보로서의 토론은 그런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청문회는 증인의 허점을 발견하기에 혈안이 되었다면, 대선 TV 토론은 후보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TV토론이 있기 전날이면 스튜디오를 빌려 리허설을 하고 상대의 대역을 세워 실전 연습을 하지만, 단기간에 긴장도를 떨어뜨리기는 어려운 법이다. 카메라 전문가들이 옆에서 이런 저런 조언을 하게 되지만 카메라에 몸이 익숙해지는 과정은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그런 면에서 안철수 후보에게는 기본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 TV토론이 아니었나 싶다.

안 후보, 부드러움과 진심 돋보여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의 '2012 후보 단일화 토론회'에 참석해 토론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의 '2012 후보 단일화 토론회'에 참석해 토론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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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안철수 후보에게 소득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부드러움과 진심은 안철수 후보의 장점이었다. 시종일관 진지하게 경청하고 정책들의 구체적 의미를 따지는 모습은 대선 후보로서 안철수가 가지는 장점이었다. TV토론에 처음 나온 것을 감안하면 합격점을 줄 수 있을 만큼 준비를 잘했다고 본다.

문재인 후보는 정치력 부족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시켜주는 토론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많은 대중들이 문재인 후보를 집중해서 볼 시간은 많지 않았다. 이번 TV토론은 전국 시청률 18.8%, 수도권 시청률 20.4%로 그 어떤 선거 운동보다 유권자에게 자신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 펼쳐진 장에서 문재인은 자신의 실력을 발휘함으로써 신뢰감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특기할 사항은 문재인이 수치와 경륜을, 안철수가 감성과 진심의 코드가 돋보였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문재인과 안철수 후보의 서로 다른 출신 성분이 이런 코드 차이를 불러 온 것으로 보인다.

정책의 차이가 일부 있었지만 새정치공동선언과 단일화의 과정, 그리고 당선 이후 정책 집행 과정까지 감안하면 큰 차이가 나타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에는 TV토론에서 보여준 두 후보의 코드 차이가 유권자들에게는 중요한 선택의 변수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단일화 TV토론 편성 시간 유감  

마지막으로 TV토론 시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단일화 TV토론은 누가 뭐래도 국민적 관심사가 높은 빅이벤트였다. 그럼에도 시청률 황금 시간을 훌쩍 넘기고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편성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시청자들이 하품을 하면서 잠을 쫓아내면서 토론을 보게 한 것은 무성의인지 시청률 저하를 위한 의도된 행동인지 잘 모르겠다.

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TV토론을 보고 자신의 정치적 결정을 하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TV토론에 대한 언론의 평가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다음 날 조간 신문에 심도 깊은 분석 기사를 내기 어려운 자정이 넘은 시간에 토론이 끝나게 하는 처사는 국민들의 알 권리에도 큰 저해요소가 될 것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22일 새벽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2012 후보 단일화 토론회'를 마친뒤 악수하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22일 새벽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2012 후보 단일화 토론회'를 마친뒤 악수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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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단일화의 9부 능선을 넘어섰다. 마감 시간이 다가오면 생산성은 무한대로 증가한다는 말이 있다. 단일화의 시안이 다가온 만큼, 그리고 TV토론에서 후보들끼리 만나 단일화 문안에 대한 담판을 한다고 한 만큼 조만간에 단일 후보가 결정될 것으로 본다.

두 후보 모두 자기가 후보가 되지 않아도 최선을 다해 일한다고 했으니, 그 약속만 지켜진다면 누가 단일 후보가 되어도 큰 무리는 없지 않을까 싶다. 이번 TV토론에서 좋았던 것은 누구를 찍으면 선이고 누구를 찍으면 악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좋았다. 과거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토론에서는 토론을 보기도 전에 내가 누구의 편인가가 확실했다면, 이번에는 토론을 보고 결정하겠다는 마음이 정말로 들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 정치의 선거는 이런 토론과 같은 모습이어야 한다고 본다. 사생결단이 아니라 치열하게 경쟁을 하되 상대방이 적이 아닌 경쟁자이면서 협력자가 되는 모습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토론은 한국 정치의 수준을 한 단계 격상시켜주는 토론이었다고 평가한다. 두 후보 모두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태그:#단일화, #TV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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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고등어 사전(메디치미디어)>, <나의 권리를 말한다(뜨인돌)>, <세상을 보는 경제(인포더북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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