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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지난 27일 광화문 유세에서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제 도입'을 약속했다. 결선투표제 도입은 그동안 진보정당과 정치학계 일부에서 요구해온 것으로, 투표자의 과반 지지도 획득하지 못하는 대통령 당선자의 취약성을 보완하고, 소수정당의 활동기회를 보장해 준다는 차원에서 고안된 제도다.

결선투표제가 갑작스레 대선 쟁점으로 부상하자, 주도권 상실을 우려한 새누리당은 즉각적인 반격에 나섰다. 지난 28일 새누리당 선대위 박선규 대변인은 SBS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결선투표제가 "양당제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정치와 정당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 우려가 있기 때문에 대선 정국에서 느닷없이 던져서는 안 될 문제"라고 말했다.

'안철수 현상' 이해 못하는 새누리당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는 27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광화문 집중유세에서 "대통령선거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겠다"며 "결선에 나갈 후보를 국민들이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약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는 27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광화문 집중유세에서 "대통령선거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겠다"며 "결선에 나갈 후보를 국민들이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약했다. ⓒ 남소연

그러나 이런 새누리당의 인식은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 정치개혁 의제를 대선정국에 던지지 않으면 언제 던져야 하느냐는 반론은 일단 접어두고서라도, 도대체 흔들지 말아야할 정치와 정당의 근간이 무엇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새누리당의 반응은 왜 많은 국민들이 기성정치에 한 발도 들여 놓지 않았던 안철수 후보에게 호응했는지를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각종 제도적 이점을 누리면서 국민 위에 붕 뜬 채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 왔던 지금의 정치를 흔들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으로 정치개혁을 하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또한 대한민국의 정치 근간이 정말 양당제인지도 의문이거니와 새누리당이 결선투표제를 그런 식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다. 결선투표제는 혼란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과 균열, 이질적인 요구들을 수렴해 내기 위해 고안된 제도다. 프랑스와 브라질 등 결선투표제를 도입한 나라들이 이 제도를 추진했던 이유는 정당체제가 지나치게 파편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 혼란을 극복하고 정치적 안정을 확보하려는 의도에서였다.

더욱이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면 후보 등록 이전의 단일화나 소수정당의 사퇴압박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다당제를 강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그러나 그동안 새누리당이 말하는 한국정치의 근간(?)인 양당체제가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갈등과 균열, 여러 요구들을 잘 수렴해 내고 있었다면, 결선투표제가 도입되더라도 다당제가 성립될 가능성은 적다. 결국 결선투표제를 거부하는 새누리당의 논리는 현 정당체제에서 대표되지 못하고 억눌려 왔던 다양한 목소리들이 앞으로도 대표되지 말아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에 대한 교훈으로 인해 결선투표제를 꺼내들었기 때문에 의도가 불순하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는 모양이지만, 5년 뒤에나 적용될 제도개혁이 이미 끝난 단일화 상대 후보를 위해서 제기했다고 보는 것은 타임머신을 타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논리다.  

일부 보수언론도 결선투표제 '초치기'에 여념이 없다.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면 이념과 무관한 정치연합이 대거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거나 1차 투표 통과자와 탈락자 간에 담합과 거래행위의 부작용이 이루어질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으나 지금 한국 정치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 아니라면 참으로 염치없는 주장이다.

결선투표는 민주적 대표성의 '최저 기준선'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선거캠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정권교체를 위해서 백의종군을 선언한다"고 대선후보직 사퇴의사를 밝히고 있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선거캠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정권교체를 위해서 백의종군을 선언한다"고 대선후보직 사퇴의사를 밝히고 있다. ⓒ 유성호

주지의 사실이지만,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재도입 후 대선에서 과반 지지를 획득한 대통령 당선자는 단 한명도 없다. 가장 최악의 경우는 1987년 대선에서 단 38.6%를 득표해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의 지지도 얻지 못하고도 당선된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헌법 제67조 3항에서는 대통령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선거권자 총수의 3분의 1이상 득표를 당선요건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단독후보였다면 대통령이 될 수 없는 득표였다.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도 김영삼(42.0%), 김대중(40.3%), 노무현(48.9%), 이명박(48.7%) 당선자 모두 과반 득표에 실패했다.

물론 결선투표제가 도입된다고 해서 민주적 정당성이 완전히 갖춰지는 것은 아니다. 선거라는 제도의 특성상 결선투표제 역시 전체 국민 중 일부의 의사만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한계는 있다. 투표자의 과반이 전체 선거권자의 과반을 의미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설령 투표율이 100%를 달성하고 결선투표를 통해 어느 후보가 50%를 넘는 지지를 획득하더라도 50%미만의 국민의사는 허공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선투표제는 민주적 정당성을 구현할 최적의 제도라기보다 실제 투표자 중 다수의 의견을 수렴하여 민주적 대표성의 '최소 기준'을 만들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이 최소한의 기준선이 없을 경우, 대표성은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처럼 결선투표제가 없는 단순다수대표제 상황에서 투표율이 50%이고 여러 명의 후보가 각축하는 가운데 특정 후보가 40%정도의 득표율로 당선되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이 사람은 국민 10명 중 단 2명의 지지만으로 당선된 것에 불과하다. 놀랄 일이 아니다.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던 상당수 사람들이 이렇게 당선됐다. 더구나 국민 10명 중 3명이 서로 다른 후보를 지지하면서, 1등 후보만이 당선되지 않기를 바라더라도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더 적은 수의 의사가 더 많은 수의 의사를 거스르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비전의 등장을 가로 막는 '단순다수제'

또한 결선투표제는 단순히 후보 단일화를 손쉽게 하거나 민주적 대표성을 보완할 수 있다는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결선투표제 없는 현행 단순다수제 방식은 다양한 사회적 갈등과 요구가 제도정치영역으로 투입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가로막는 효과를 발휘한다.

이것은 한국 정치 특유의 '적대성의 정치' 상황에서 한층 극명하게 나타난다. 한국 정치는 매 선거 때마다 아무리 '정책선거'를 강조해 왔어도 새로운 국가운영의 비전과 정책 패러다임이 각축하는 장이기보다 서로를 '적'으로 규정한 가운데 적에 대한 공격을 최우선 과제로 상정하는 형태가 압도해 왔다.

1987년 대선의 비판적 지지와 후보단일화, 1997년의 반민자당 민주대연합, 1997년과 2002년의 반창연대, 2007년의 반MB연대는 모두 진보개혁진영이 독재정당의 후신을 반대하기 위해 모든 자원을 동원하려는 시도였고, 반대로 보수진영은 반북이데올로기에 근거해 상대 후보를 '제거해야할 내부의 적'인 종북좌파·빨갱이로 분칠해 왔다. 

이런 가운데 가장 중시되는 것은 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었고, 새로움에 대한 비전은 부차화될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 더 좋은가에 대한 '최선 선호 효과'보다 무엇이 덜 나쁜가를 평가하는 '최악 회피 효과'를 만들어냈던 적대성의 정치는 단 한 차례의 투표로 득표율에 상관없이 당선자를 선출하는 단순다수대표제에서는 벗어나기 어렵다. 

그동안 새로운 정치를 추구했던 다양한 실험들이 소위 '사표 심리'와 '전략적 투표'로 인해 꽃봉오리조차 펴보지 못하고 사라졌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결선투표제와 독일식 비례대표제의 도입이 한국 정치개혁의 최우선 과제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새로운 정치? 이렇게 해보자

무엇보다 문재인 후보의 새로운 공약이 반가운 이유는 이번 대선이 역대 어느 대선 보다 재미없다는 푸념이 들려올 정도로 미래를 향한 담론이 부재했었기 때문이다. 후보별 정책 차별성이 없어 후보간 정책 단일화를 한 것이 아니냐는 비아냥은 지나친 감이 있지만, 그동안의 대선에 비해 흥행요인을 찾기 어려웠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는 부분적으로 대선국면이 보여줄 수 있는 역동성이 오로지 적대성에 근거한 단일화 효과에 압도당했던 상황에서 기인한다. 엎치락뒤치락 하는 두 후보의 지지율 추이로만 대선 흥행을 노리기에는 역부족이다. 

 김소연 무소속 대선후보가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본관 앞에서 '선거투쟁 출발'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을 하고 있다.
김소연 무소속 대선후보가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본관 앞에서 '선거투쟁 출발'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을 하고 있다. ⓒ 조재현

적대성의 정치는 대선정국의 출발점일 뿐이지 전부가 아니다. 이것이 지난 4.11 총선 결과가 말해주는 교훈이다. 국민들은 플러스알파를 보고 싶어 한다. 누가 얼마나 나쁜지는 알겠지만, 다른 누군가가 얼마나 더 좋을지도 판단하기를 원한다. 알아듣기 어려운 전문용어로 점철된 정책공약이 나열되는 것이 아니라 뚜렷한 비전과 새로운 패러다임이 전달되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문재인 후보가 던진 새로운 공약이 논란이 되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이어야 한다.

결선투표제는 개헌 논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공직선거법 개정만으로도 도입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대통령 선출 관련 헌법 조항들 중에는 결선투표제와 조화되지 않는 내용도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손질이 필요하다. 어차피 4년 중임제 도입 등 '원 포인트 개헌론'이 확장될 것이라면 적극적으로 새로운 의제를 던져야 함이 마땅하다.

당초 많은 이들이 기대했던 2012년 대선은 오랜 87년체제의 틀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2013년 체제를 그려보는 것이었다. 철저히 과거만 붙들고 있는 대선 후보는 한 명으로 족하다. 이명박 정부 5년을 넘어 어디로 향해갈 것인지, 패러다임을 제기해야 옳다. 전면 개헌까지도 회피하지 않는 미래 논쟁이 대선국면을 장식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철저히 언론의 외면을 받고 있는 군소후보들도 주목해야 옳다. 두 거대 후보가 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의제를 적극 개진함으로써 다양한 방면으로 의제를 확장하고 논란을 일으키는 역할이 필요하다. 일종의 급진세력의 측면효과가 필요한 것이다.

대선이 코앞에 다가오긴 했지만, 그리 짧은 기간은 아니다. 무엇보다 새로운 정치는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가 더 다양하게, 더 뚜렷하게 말해지는 것이다. 결선투표제 약속이 이런 역할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최고의 대선 전략이라 의심치 않는다.


#결선투표제#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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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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