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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4가지 도둑이 있다. 첫째는 물건 훔치고 안 훔쳤다고 한다. 두 번째 도둑은 물건 훔쳐서 자기가 쓴다. 세 번째 도둑은 물건 훔쳐서 판다. 그리고 가장 나쁜 네 번째 도둑은 물건 훔쳐서 자기가 쓰다가 원래 주인에게 판다. 이 4 가지 조건을 갖춘 도둑이 정수장학회 도둑이다. 그 도둑을 잡자!"

지난달 28일 저녁, 서울 헌법재판소 앞의 한 카페에서 서해성 작가가 이렇게 말하자 좌중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장물바구니-정수장학회의 진실>(오마이북) 북토크를 위해 7평 남짓한 카페 안마당에 20여 명의 청중이 모였다.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 최재천 민주당 의원, 서해성 작가와 <장물바구니>의 저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2시간 남짓 북토크를 진행했다.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 최재천 민주당 의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서해성 작가가 29일 안국동에 있는 한 까페에서 한홍구 교수의 신작 <장물바구니>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한홍구 교수의 신작 <장물 바구니> 북토크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 최재천 민주당 의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서해성 작가가 29일 안국동에 있는 한 까페에서 한홍구 교수의 신작 <장물바구니>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조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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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날은 대선올레 취재진이 박근혜 후보의 천안 유세장을 들렀다 온 터였다. 책 주인공의 장녀를 만나고 온 것. 본격적인 북토크에 앞서 오연호 대표와 서해성 작가는 박 후보의 천안 유세 현장을 전했다. 오 대표는 "박 후보가 연설의 1/3을 참여정부를 비판했다"고 했다. 이에 서해성 작가는 "이명박 정권의 탄생으로 참여정부는 심판을 받았는데"라며 "직전 정부를 심판하는 것이 상식이다"라고 말했다.

"김지태가 친일파라고? 박근혜는 그 입 다물라!"

서서 읽는 책은 최재천 의원, 서해성 작가, 한홍구 교수가 몇 년동안 진행해 온 대중강좌다. 이 강좌의 시작은 저자가 책 일부를 읽는 것으로 시작하는 게 관행이다. 한 교수는 서서 다음 대목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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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물바구니-정수장학회의 진실> 표지 -
ⓒ 돌아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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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과거사라고 불리는 이런 일들을 다룰 때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모함하는 일이다. 사과하지 않아도 좋다. 반성하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그 입은 다물라!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어디 혈서 써서 일본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한 친일파의 후예들이 무고한 피해자를 친일파라고 모함하는가" -pg321

김지태씨는 1927년 동양척식주식회사(이하 동척) 부산지점에 말단직원으로 취직한다. 동척이 식민지수탈기구임에는 분명 하나 한 교수는 "그러나 해방 후 친일파 청산에 대한 논의가 뜨거울 때 제시된 여러 가지 기준을 보아도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말단 직원까지 친일파로 낙인찍지는 않았다"고 썼다. 오히려 김지태는 신간회 부산지부의 간부와 야학 등 민족주의 계열의 사회활동을 벌였다.

마이크를 잡은 한 교수는 4·19 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 교수는 "1960년 3·15부정선거를 계기로 마산에서 크게 시위가 일어났다"며 "이때 김지태가 보유한 부산문화방송이 생중계를 했다"고 했다. <장물 바구니>에는 '언론인으로서 김지태의 일생에 가장 짜릿했던 순간'이 자세히 적혀있다. 다음은 마산 3·15 의거 당시 부산문화방송 라디오 방송의 일부다.

"(탕탕탕 자지러지는 총소리와 함께 비명소리가 뒤섞여 나오고) 단기 4293년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가 민족 반역자의 흉계로 악랄한 수법에 의해서 감행되자 전국 각지에서는 눈앞에서 죽어가는 민주주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몸부림치며 통곡했습니다" - pg75

그뿐이 아니었다.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김주열 군의 사체를 처음 찍은 언론사가 김지태 소유의 부산일보였다. 사진이 너무 참혹해 일부 간부들은 조간에 실을 수 없다고 했지만, 김지태는 사진을 실었다. 김주열 군의 사체 사진이 크게 박힌 4월 12일자 부산일보는 평소보다 수만 부 더 인쇄되었고 김지태 소유의 모든 차량이 동원되어 마산 곳곳에 배달되었다. 김지태가 4·19혁명의 견인차 역할을 한 셈이었다.

1971년에는 박정희가, 2012년에는 박근혜가...

1960년 1월 부산의 군수기지사령관으로 내려온 박정희는 3·15 마산의거부터 4·19 혁명까지 언론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 가까이서 지켜봤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은 대구사범 동창인 부산일보 주필 황용주 어울리며 속사정도 자세히 알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일찍이 언론의 중요성을 알았다.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언론장악을 시도했다. 결국 1962년 박정희는 김지태에게서 부산일보, 부산문화방송, 문화방송을 강탈한다. 김지태는 감옥 안에서 강압으로 기부 승낙서에 도장을 찍었으며, 이 날짜를 '석방 후'로 위조당했다. 이는 2005년 국정원 과거사위원회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한 결과 밝혀진 사실이다.

한홍구 교수는 당시 국정원과거사위원회에서 활동했다. 한 교수는 이 책의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서해성 작가가 "이 책을 지금 낸 이유가 있죠?"라고 하자, 한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 밑에서 책을 낸다면 그야말로 연구서일 것이다"라고 했다. 이에 최재천 의원이 장난스럽게 "선거에 나쁜 영향을 끼치려는 '악랄한' 의도가 있는 거 아닌가?"라고 하자 웃어넘겼다. 최재천 의원은 "잠시 쉬어가자"며 1971년 대선 김대중 당시 신민당 대선후보의 부산유세 연설의 한 대목을 읽었다.

"5·16 장학회는 재산이 오백 억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재산은 장학회라는 이름으로 면세 등의 특전을 받고 있는데 5·16장학회가 장학에 쓰는 돈은 71년도에 2천4백만 원에 불과합니다. 5·16장학회의 실제 소유자는 모든 사람들이 박 대통령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pg213

최 의원은 "그런데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역사를 청산 못하고 또다시 주인이 누구니 하고 있다, 현대사의 비극이다"라고 했다. 그는 "40년 전에도 공화당과 장학회가 성명서를 내고 반박했다. 1971년 대선 뒤에는 이종남 신민당 국회의원이 부산문화방송 지분을 대선자금으로 유용했다고 폭로했다"며 "40년이 지난 2012년에도 저들은 부산문화방송 지분을 잠시 이용해 먹으려다가 들통나지 않았나"라고 했다.

5·16은 아직 진압당하지 않았다

한홍구 교수는 “5·16이 아직 진압당하지 않았다. 올해 있었던 언론인들의 투쟁은 5·16 반란군들과 맞서 싸우는 일이다. 진압은 성숙한 시민들이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 한홍구, "5·16이 아직 진압당하지 않았다" 한홍구 교수는 “5·16이 아직 진압당하지 않았다. 올해 있었던 언론인들의 투쟁은 5·16 반란군들과 맞서 싸우는 일이다. 진압은 성숙한 시민들이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 조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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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성 작가는 "그로부터 41년 뒤에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이진숙 MBC 기획본부장이 만나 똑같은 일을 모의했다"며 "선거를 떠나서 너무 놀라운 일이다"라고 했다. 김지태 씨는 1982년 숨지기 직전까지도 재산환수 노력을 기울였지만 반 세기 가까운 시간이 지나도록 이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다. 한 교수는 "정수장학회 문제의 본질은 언론문제다"라며 말을 이었다.

"올해 초 KBS, MBC, YTN, 국민일보, 부산일보, 연합뉴스 등 6개 언론사가 파업 내지 파업에 준하는 혼돈에 빠졌다. 이명박 대통령의 언론장악 때문이다. 이를 거슬러 올라가면 박정희 언론장악이 나온다. 박정희 언론장악의 출발은 정수장학회다. 부산일보, 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 강탈이 언론장악의 시초다."

여기까지 말한 한 교수는 "5·16이 아직 진압당하지 않았다, 올해 있었던 언론인들의 투쟁은 5·16 반란군들과 맞서 싸우는 일이다, 진압은 성숙한 시민들이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는 아직 쓰여지지 않았다, '박근혜가 당선되고 진숙이가 MBC 지켜내고 PD수첩은 없어진 상태로 MBC는 흘러갔다'가 마지막 페이지가 되느냐 '2013년도에 부산일보는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왔고 우리는 좋은 장학회를 갖게 되었다'가 되느냐 이건 순전히 12월 19일 우리들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했다.


태그:#한홍구, #박근혜, #정수장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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