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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시간에 구름들이 솟구쳐 오르더니 맑은 하늘 아래 기묘하게 솟아 오른 백록담 분화구가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장관이었다.
삽시간에 구름들이 솟구쳐 오르더니 맑은 하늘 아래 기묘하게 솟아 오른 백록담 분화구가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장관이었다. ⓒ 서종규

  한라산은 온통 하얀 눈으로 반짝이고 하늘은 구름 속에 갇힌 한 조각 푸름이 하얀 눈 위에 반사된다. 나무는 모두 하얀 옷을 입어 빛나고, 무궁무진한 꿈의 나라 설국을 이루었다.
한라산은 온통 하얀 눈으로 반짝이고 하늘은 구름 속에 갇힌 한 조각 푸름이 하얀 눈 위에 반사된다. 나무는 모두 하얀 옷을 입어 빛나고, 무궁무진한 꿈의 나라 설국을 이루었다. ⓒ 서종규

온종일 구름에 갇혀 있던 한라산이 약 1분 정도 그 얼굴을 드러냈다. 찰나의 순간에 드러난 한라산의 얼굴은 경건하다. 산은 온통 하얀 눈으로 반짝이고 하늘은 구름 속에 갇힌 한 조각 푸름이 하얀 눈 위에 반사된다. 나무는 모두 하얀 옷을 입어 빛나고, 무궁무진한 꿈의 나라 설국을 이뤘다. 바위며 풀숲까지 아늑한 눈꽃 나라에 잠긴다.

한라산의 날씨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산 아래는 쨍쨍 햇살이 가득한데, 한라산 정상 부근은 종일 구름이 쌓여 있다. 이런 날씨 때문에 감탄을 터져 나오는 눈꽃 산행이 될는지도 모르겠다. 구름 가득 50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 길가에서 눈꽃을 보다가 가끔 1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반짝 드러내는 맑은 하늘. 한라산 설국의 눈부심은 황홀 그 자체다.

지난 11월 28일 오전 8시, 한라산 눈꽃 산행을 위해 중문단지 숙소에서 영실탐방로를 향해 출발했다. 영실탐방로에는 제주시에서 어리목탐방로-영실탐방로-중문-서귀포를 연결하는 노선버스가 있는데, 나는 홀로 콜택시를 타고 영실탐방안내소를 지나 영실휴게소까지 올라갔다.

오전 8시 50분. 영실휴게소(해발 1280m)에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됐다. 영실휴게소 초입부터 소나무 군락이 특이하다. 보통 제주도에서는 곰솔이라는 소나무가 해안지방을 중심으로 분포돼 있는데, 한라산 900~1300m 정도 이곳 영실에는 나무껍질이 얇고 붉은색을 보이는 굵은 소나무숲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 숲은 산림청과 생명의 숲 가꾸기 운동 본부가 지정한 '22세기를 위해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이다.

소나무 숲은 참 아늑했다. 바닥 돌 틈에 눈이 내려서 길이 약간 미끄러웠다. 소나무 숲을 지나 약 1.5km 정도까지 병풍바위에 이르는 길은 가파르게 치솟아 있었다. 등산길은 잘 정비돼 있고, 군데군데 나무 계단들이 놓여있다. 그런데 소나무숲을 지나자 능선을 타고 오르는 길이 됐다. 바람이 세다. 산은 온통 구름에 휩싸였다. 병풍바위는 보이지 않았다.

오전 10시. 병풍바위를 볼 수 있는 곳에 다다르자 산은 온통 하얀 눈꽃 세상이 돼 있었다. 구름에 가려 비록 멀리 볼 수는 없었지만, 나무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눈꽃들이 환상을 자아낸다. '환상적이다' '아름답다'고밖에 표현할 말이 없다. 겨울 눈꽃산행을 해 본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아름다움의 극치라고나 할까.

이게 바로 설원이로구나

 겨울 눈꽃산행을 해 본 사람만이 맛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겨울 눈꽃산행을 해 본 사람만이 맛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 서종규

 산작지왓이 눈에 들어온다. 한라산 중턱에 하얗게 펼쳐진 넓은 평원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산작지왓이 눈에 들어온다. 한라산 중턱에 하얗게 펼쳐진 넓은 평원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 서종규

병풍바위에서 200미터 정도 올라가니 거의 평평한 길이 나타났다. 그리고 구름 속에 가려졌지만 눈 덮인 넓은 평원이 나타났다. 1600m 정도 높이에 펼쳐진 평원이었다. 봄에는 털진달래와 산철쭉이 아름답고, 가을에 영실기암의 단풍이 장관을 이룬다는 '산작지왓'이라는 평원이다. 평원에는 한라산조릿대가 눈 아래 다소곳이 숨어있고, 작은 나무들도 눈꽃 아래 숨죽이고 있었다.

이 산작지왓 평원에는 나무 통행로가 잘 다듬어져 있고, 위세족은오름으로 오르는 계단이 놓여 있다. 윗세족은오름은 산작지왓 평원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한다. 이 윗세족은오름에서는 제주도의 각종 오름들과 백록담 화구벽이 한눈에 들어온다고 하는데,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망원경에도 눈꽃이 말발이다.

 윗세족은오름은 산작지왓 평원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한다. 멀리 볼 수 있는 망원경마저 눈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윗세족은오름은 산작지왓 평원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한다. 멀리 볼 수 있는 망원경마저 눈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 서종규

 윗세족은오름에서 아름답게 펼쳐진 평원위의 눈꽃천지와의 사랑싸움을 하고 있었다.
윗세족은오름에서 아름답게 펼쳐진 평원위의 눈꽃천지와의 사랑싸움을 하고 있었다. ⓒ 서종규

내려오는데 1분 정도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 오름들이 눈부셨다. 나무들에 피어 있는 눈꽃들이 눈부셨다. 세상은 온통 하얀 눈세상. 가득 펼쳐진 산작지왓이 눈에 들어온다. 한라산 중턱에 하얗게 펼쳐진 넓은 평원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아, 사진 몇 장 찍지 못했는데, 금방 구름이 덮어버렸다.

그래서 이 윗세족은오름에서 지나가는 구름 사이로 맑은 하늘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조금은 긴장하며, 조금은 추위에 떨며 기다리다 지쳐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다시 맑은 하늘이 열렸다. 다시 사진 몇 장 찍고, 구름에 다시 가리면 기다리고... 아름답게 펼쳐진 평원 위의 눈꽃 천지와 사랑싸움을 하고 있었다.

나무로 잘 다듬어진 등산로를 따라 가니 노루샘이 나타났다. 아직도 샘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놓여 있는 바가지로 마신 물 한 모금. 차가울 줄 알았던 샘물은 따뜻했다. 샘물이 입안을 감돌며 달콤함이 느껴졌다. 노루샘을 지나 구름 속을 뚫고 나가니 나무들에 덮인 눈이 더욱 많이 쌓여 있다. 그 사이로 집 몇 패가 보였다. 바로 윗세오름대피소였다.

주어진 시간은 1분, 아쉬움 삼킬 수밖에

 노루샘을 지나 나무로 잘 다듬어진 등산로를 따라 가니 윗세오름대피소가 나타났다.
노루샘을 지나 나무로 잘 다듬어진 등산로를 따라 가니 윗세오름대피소가 나타났다. ⓒ 서종규

 구름 가득한 등산로 주위에 하늘이 열리자 나무위에 더덕더덕 덮인 눈들이 보인다.
구름 가득한 등산로 주위에 하늘이 열리자 나무위에 더덕더덕 덮인 눈들이 보인다. ⓒ 서종규

오전 11시께 찾아든 윗새오름대피소 안. 사람들이 모두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보통 도시락을 준비하지 않고 오르기 때문에 대피소에서 1500원을 주고 컵라면을 사 먹고 있는 듯. 나는 준비한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그리고 500원을 주고 커피 한 잔을 사마셨다. 종이컵은 구겨서 배낭 속에 넣었다.

윗새오름대피소에서 백록담 남벽까지는 약 2km 평지의 길이 펼쳐진다. 그런데 오후 1시가 지나면 남벽까지 가는 길의 출입을 통제하기 때문에, 남벽까지 가려는 사람들은 오후 1시 이전에 이곳을 통과해야 한다.

오전 11시 30분. 윗새오름대피소를 출발했다. 구름 가득한 등산로 주위로 나무 위에 더덕더덕 덮인 눈들을 보며 나갔다. 좁은 골짜기를 건너 오르는데 눈앞에 갑자기 거대한 바위산이 나타났다. 삽시간에 구름이 솟구쳐 오르더니 맑은 하늘 아래 기묘하게 솟아오른 백록담 분화구가 눈앞에 펼쳐진 것. 장관이다. 그것도 1분 정도의 시간에 다시 구름 사이로 숨어 버렸다. 몇 장의 사진으로 만족하지도 못하고 아쉬워하며 다시 길을 재촉했다.

 백록담 화구벽과 오름
백록담 화구벽과 오름 ⓒ 서종규

구름으로 덮인 백록담 화구벽을 못내 아쉬워하며 길을 재촉하니 또 하나의 샘이 나타났다. 방아오름샘이다. 방아오름샘 앞 전망대에 놓인 사진에 백록담 남벽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남벽은커녕 구름만 가득해 앞을 내다 볼 수 없었다. 남벽분기점까지 가는 내내 남벽은 설렘만 남기고 구름 속에서 나타나지 않았다.

낮 12시 30분. 백록담 남벽분기점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하늘이 열리면서 병풍처럼 펼쳐진 백록담 남벽이 나타났다. 남쪽이어서 그런지 앞에 펼쳐진 나무들은 눈이 녹아 본래의 모습을 드러냈지만, 남벽 바위에 서린 하얀 눈꽃들은 장엄했다. 남벽 너머에 백록담이 있을 것이다.

 백록담 남벽 분기점에 도착하였을 때 갑자기 하늘이 열리면서 병풍처럼 펼쳐진 백록담 남벽이 나타났다.
백록담 남벽 분기점에 도착하였을 때 갑자기 하늘이 열리면서 병풍처럼 펼쳐진 백록담 남벽이 나타났다. ⓒ 서종규

그런데 등산로는 남벽 분기점에서 끊어져 있었다. 출입제한구역 표지석은 '30만 원 이상의 벌금을 물린다'며 등산객을 위협하고 있었다. 조금만 오르면 백록담을 눈으로 볼 수 있는데 오르지 못한 아쉬움이 가득하다. 잠깐 본 남벽의 모습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이 분기점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돈내코 탐방코스가 된다.

아쉬운 마음으로 돈내코 탐방코스에서 머뭇거렸다. 시간도 남아 있고, 그 아름답게 펼쳐진 눈꽃이며, 가끔 감질나게 모습을 보이는 백록담 화구벽이며, 여기저기 펼쳐진 오름들의 향연을 다시 보고 싶었다. 발길을 돌렸다.

돌아오는 길에 잠깐 동안 나타나는 한라산의 모습에 취해 사진을 찍고, 또 찍고, 때로는 기다리고, 한라산과의 '밀당'을 계속하며 천천히 내려왔다. 윗세오름대피소를 돌아 어리목 탐방코스로 발길을 향했다. 오후 3시, 어리목탐방안내소에 도착했다. 영실휴게소에서 남벽분기점까지 5.8km, 소요시간은 2시간 30분 정도. 남벽분기점에서 어리목탐방안내소까지 6.8km, 소요시간 3시간 정도면 충분한 탐방코스라고 한다.


#한라산#영실탐방로#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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