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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나비는 봄소식을 전하는 전령, 언덕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와 함께 출현하는 곤충의 한 가지 정도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나비는 봄소식을 전하는 전령, 언덕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와 함께 출현하는 곤충의 한 가지 정도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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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10여 년을 넘게 살던 집에서 이사를 하며 서재를 정리하다보니 표지색이 누렇게 바란 얇은 책, 초등학교용 공책 두께 정도로 묶여 있는 시험지 한 권이 어느 이삿짐에선가 나왔습니다.

누렇게 바란 표지색도 표지색이지만 표지에 써진 글씨 또한 흔하디흔한 인쇄 글씨가 아니라 손으로 쓴 글씨라서 그런지 눈길이 끌렸습니다. 표지에는 한자와 한글을 섞어 "第3回全國機能競技大會課題", "1968. 10.", "(社)國際技能올림픽大會韓國委員會"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1968년 가을에 치러진 '제3회전국기능경기대회' 과제물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20여 쪽의 내용물 역시 요즘의 복사지보다는 질이 훨씬 많이 떨어지는 갱지, 지면이 거칠고 누런빛이 나는 종이에 한글과 한자를 섞어 손으로 쓴 글씨였습니다. 내용물로 들어가 있는 도면들 또한 요즘에는 그 용어조차 듣기 어려워진 '청사진', 감광지에 전기 광선을 쬐어 도면을 복사하는 청사진 도면이었습니다.

1968년이면 필자가 초등학교 2학년생이던 44년 전입니다. 그때 치러졌던 전국기능경기대회과제물이 어떻게 필자의 이삿짐에서 나오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고문서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오랜 세월이 지난 것도 아니고, 진품명품에 가지고 나갈 만큼 귀한 것도 아니지만 그 시절, 1968년에 치러지던 시험문제는 이랬고, 시험지(문제지)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어느 나비 연구자가 남긴 열대 탐험의 기록, 67년 만에 빛 보다.

<박물관의 나비 트렁크> 표지 사진
 <박물관의 나비 트렁크> 표지 사진
ⓒ 프로네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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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체카우·한스 차슬러 지음, 유영미 옮김, 김성수 감수, 프로네시스 출판의 <박물관의 나비 트렁크>는 수십 년이 넘게 베를린 자연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던 트렁크, 나비연구가인 아르놀트 슐체가 1937년에 브라질에서 보낸 트렁크가 2006년에 조사되면서 되살아난 기록, 트렁크를 채운 한 나비 연구가의 생애와 업적을 담은 내용입니다. 

1875년생인 독일인 아르놀트 슐체는 독일 식민지 장교로 카메룬에 근무하면서부터 여가시간을 이용해 나비를 관찰하고 수집하며, 나비들의 자연사를 연구합니다.  재능 있는 자연저술가이자 자연애호가, 선견지명을 가진 최초의 자연보호가로 평가되고 있는 아르놀트 슐츠는 군을 제대 후인 1920~30년대에 중남미의 여러 지역을 누비며 그 지역을 측량하고, 동식물 표본을 채집하고 나비를 연구하며 기록하였습니다.

독일과 연합국 사이에 전운이 드리웠던 1939년 8월 25일, 아르놀트 슐체는 그동안의 연구결과물인 식물표본들을 함부르크로 향하는 상선 '인'에 싣고 브라질 항구를 출발하지만 9월 5일, 영국 군함 '넵튠'이 '인'에 탄 사람들만을 대피시키고 배를 침몰시킴으로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박물관의 나비 트렁크>의 주인공인 41번 트렁크, 69년 만에 열리며 베를린 자연사박물관에서 조사되어 <박물관의 나비 트렁크>의 내용이 되는 트렁크는 2년 전인 1937년에 이미 베를린 자연사박물관으로 보냈던 트렁크로 식물표본과 개인적인 메모, 그림과 사진 등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사를 해 정리하던 서재에서 발견한 1968년 ‘제3회 전국 기능 경기대회  과제' 글씨는 손으로 쓴 한자이고, 내용물로 첨부된 도면은 '청사진' 도면입니다.
 이사를 해 정리하던 서재에서 발견한 1968년 ‘제3회 전국 기능 경기대회 과제' 글씨는 손으로 쓴 한자이고, 내용물로 첨부된 도면은 '청사진' 도면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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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의 이름은 여러 방식으로 계속 살아남지만(용어 같은 것에서), 그 이름과 연결된 삶의 이야기는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이 자연과학 분야에서 고집스럽게 지속되고 있는 경향이다. (중략)

헐겁게 접힌 슐체의 종이봉투들은 시간의 미로 속에서 수취인과 목적지를 잃어버린 '문학적' 나비 떼이자, 유치된 우편물이다. 이렇듯 나비 이름이 적힌 재활용 용지들은 원래의 앞뒤 문맥에서 떨어져 나와 우리 눈앞에서 초현실적인 산문이 된다.
- <박물관의 나비 트렁크> 17쪽

종이봉투에 보관했던 나비는 겨울 등 기회가 될 때 미리 날개를 부드럽게 한 다음 다시 편다.

부드럽게 하는 과정에서 젖은 모래에 날개가 직접 닿아 얼룩이 생기는 일이 없도록, 핀셋을 이용해 나비를 종이봉투에서 꺼낸 뒤, 젖은 모래에서 나비가 1센티미터 가량 떨어져 있을 수 있도록 작은 돌 같은 것을 놓고 촘촘한 철망을 깐 다음 그 위에 나비를 놓는다.
- <박물관의 나비 트렁크> 87쪽

나비 연구자의 삶까지 실루엣처럼 투영하고 있어

트렁크에서 나온 슐체의 메모는 일기입니다. 어떤 날, 1920년 6월 24일 메모는 두 줄 정도로 짧지만, 페이지를 넘길 만큼 장문으로 쓴 일기도 적지 않아 슐체의 하루, 슐체가 살았던 삶을 실루엣처럼 투영하고 있습니다.   

나비를 채집하는 슐체의 마음은 열정이고, 채집한 나비를 정리하고 기록하는 자세는 읽는 이의 마음을 간절하게 진동시킬 만큼 진지합니다. 채집한 나비를 종이로 포장하고, 포장지 속에서 꺼낸 바짝 마른 나비를 복원하는 과정은 단순하면서도 합리적입니다. 

대전에 패배한 독일의 운명처럼 침몰되는 배에 실려 함께 가라앉은 것을 바라 볼 수밖에 없었던 화물 속 보물, 트렁크 속의 채집 물들을 복원해 낸 슐체의 기억력과 그림솜씨는 자연을 누비던 그의 열정에 못지않을 만큼 섬세합니다. 실물에 견줄 만큼 사실적입니다.

나비를 바라보는 슐체의 눈길은 나비를 닮았습니다.
 나비를 바라보는 슐체의 눈길은 나비를 닮았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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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나비의 날개에는 눈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는데, 바로 이것으로 새들을 현혹시킨다. 새들은 나비를 새로 착각하고, 다시 말해 자신의 동료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나비를 잡아먹지 않는다. 그렇게 나비들은 페르세우스의 간계를 이용한다. 페르세우스는 자신의 방패로 메두사의 시선(시선을 받은 자는 돌이 된다)을 반사하여, 메두사 자신을 돌로 만들어 버렸다. 나비들의 상징적인 눈은 태양빛을 반사하고, 이런 가장된 반사로 잠재된 적의 눈을 압도한다.

더 세련되게 표현하자면, 거울에 비친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날개의 기하학적 모양, 즉 모방술은 관찰자로서의 자신을 잊게 한다. 이것은 반사적인 모방의 미묘한 유희다. 빛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자신 속으로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나비는-만달라처럼-시선을 사로잡아 관찰자를 현혹시킨다.
- <박물관의 나비 트렁크> 128쪽 

벌써 봄이 기다려지는 건 시공을 초월한 나비를 봤기 때문

대개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나비는 봄소식을 전하는 전령, 언덕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와 함께 출현하는 곤충의 한 가지 정도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나비의 일생에는 관심이 없고, 나비들이 갖는 특징은 잘 모릅니다. 나비의 구조와 날개에 새겨진 문양, 나비가 갖고 있는 감각 등도 진지하게 어림해 보지 않는 게 대부분입니다.

<박물관의 나비 트렁크>에서는 나비날개의 눈 모양 무늬를 페르세우스의 방패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의 나비 트렁크>에서는 나비날개의 눈 모양 무늬를 페르세우스의 방패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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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나비 트렁크>를 읽다보면 선구자처럼 앞서서 연구하는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가시밭길 같은 어려움을 어림하게 됩니다. 자연사, 박물관 자료로 남는 물증이나 기록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형성되고 생성되는지도 알게 됩니다. 지난하지만 업적으로 남는 연구결과물이 탄생하는 과정도 보게 됩니다.

나비를 바라보는 슐체의 눈길은 나비를 닮았고, 나비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슐체의 표현은 보석을 가다듬는 보석공의 손길만큼이나 섬세합니다. 배경음악처럼 깔인 전쟁의 잔혹함, 원시생활이 어림되는 미개발지의 생활, 몇날 며칠을 타야하는 배가 교통수단이던 시대의 생활상도 무성영화와 짝을 이루던 변사의 목소리처럼 들려옵니다.    

이제야 막 겨울다운 겨울이 시작되고 있지만 벌써부터 다가오는 봄이 기다려집니다. 그건 트렁크의 어둠에 갇혀 있다 69년 만에 햇빛에 드러난 나비, 아르놀트 슐체가 1937년에 트렁크에 담아 베를린 자연사박물관으로 보냈던 1만8000점의 나비 중 <박물관의 나비 트렁크>의 저자 한나 체카우가 실물 크기로 그린 87종가량의 나비가 시공을 초월하는 나비가 되어 나풀나풀 날갯짓을 하고 있는 걸 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제야 막 겨울다운 겨울이 시작되었건만 벌써부터 다가오는 날갯짓 나풀거리며 나는 나비를 볼 수 있는 봄이 기다려지는 건 <박물관의 나비 트렁크>에서 시공을 초월하는 나비를 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제야 막 겨울다운 겨울이 시작되었건만 벌써부터 다가오는 날갯짓 나풀거리며 나는 나비를 볼 수 있는 봄이 기다려지는 건 <박물관의 나비 트렁크>에서 시공을 초월하는 나비를 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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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박물관의 나비 트렁크>┃지은이 한나 체카우, 한스 차슬러┃옮긴이 유영미┃감수 김성수┃펴낸곳 프로네시스┃2012.10.27┃값 2만 1천원



박물관의 나비 트렁크 - 어느 나비 연구자가 남긴 열대 탐험의 기록

한나 체카우, 한스 치슐러 지음, 유영미 옮김, 프로네시스(웅진)(2012)


태그:#박물관의 나비 트렁크, #유영미, #프로네시스, #나비,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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