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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3일, 안철수 전 대선 예비후보가 후보직을 사퇴하던 날, 부산 광안리에 살고 있는 이영자(68)·황소영(42)씨 모녀는 망연자실했다. 뉴스를 듣고 또 들었지만 믿기지가 않았다. 결국 황소영씨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밤새 펑펑 울고 나서도 3일을 또 앓아야 했다.

황씨는 안 전 후보에게 "신뢰가 있었다"고 했다. 그동안 봐 왔던 정치인들과 달리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고, 반드시 지킬 수 있는 사람 같았다고 했다. 그래서 안 전 후보의 부산지역 진심캠프 회원이 됐다. 한푼 두푼 반찬값을 아껴 모은 돈으로 '안철수 펀드'도 가입했다. '정치인 안철수'를 지켜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안 전 후보가 후보직을 내려놓은 것이다. 그래서 "정말 많이 아쉬웠다"고 한다. 3일을 앓고 난 황씨는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안 전 후보가 '단일후보'로 지명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에게 마음을 주기로 했다.

"그래도 어떻게 하겠습니꺼. 세상을 바꾸려면 어쩔 수 없지예."

"그래도 우짜겠노. 안철수가 저리 나오니..."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전 후보가 7일 오후 부산 서면 롯데백화점 지하상가 분수대 앞에서 손잡고 부산시민들 앞에서 첫 공동유세를 펼치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전 후보가 7일 오후 부산 서면 롯데백화점 지하상가 분수대 앞에서 손잡고 부산시민들 앞에서 첫 공동유세를 펼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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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이영자씨의 생각은 달랐다. 이씨가 딸보다 더 '안철수 지지자'가 된 이유는 정치권에 대한 회의 때문이었다. 그는 "박근혜 자체가 싫어서가 아니고, 기존에 정치하던 사람들이 계속 나오니까, 너무 국민들을 우습게 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정치가 잘못하면 국민 스스로 바꾼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특히 그는 안 전 후보에 대해 "새롭고 획기적인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기존 정치인들은 국민은 안중에 없이 제 밥그릇 챙기기 바쁘고, 그래서 만날 싸움질만 하는데, 안 전 후보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안철수씨는 유능한 교육자이기도 하지만, 정말 국민을 위해서, 국민의 입장에서 뭔가 하려는 사람 같았다"며 "그래서 투표 할 때 100%, 두 손으로 찍을 수 있다면 두 손으로 찍어주고 싶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황씨가 안 전 후보의 빈자리를 메울 다른 후보를 쉽게 찾지 못한 이유였다. 기존 정치권이 싫어서 안 전 후보를 지지했는데, 그가 후보직을 사퇴하고 나니, 남은 사람이 박근혜·문재인 후보밖에 없더라는 것이다. 그는 "박근혜나 문재인이나 똑같다고 생각했다"며 "'이왕이면 여성이니까 박근혜로 갈까' 했다가, '그래도 문재인이 좀 낫지 않을까' 하면서 지지할 후보를 정하지 못했다"고 했다.

딸 황씨의 설득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지난 6일 문재인 후보에 대한 안 전 후보의 '전폭 지원' 선언 모습을 보면서 황씨도 마음을 다잡았다.

"문재인은 안철수에 대한 나의 기대와 안 맞지만, 그래도 우짜겠노. 안철수가 사퇴하고 나서 '어떻게 하노'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안철수가 저리 나오니, 박근혜보다는 문재인에게 조금 더 기울드라."

"부산에서 문재인 40% 넘기면, 새누리당 깜짝 놀랄 것"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전 후보가 7일 오후 부산 서면 롯데백화점 지하상가 분수대 앞에서 첫 공동유세를 펼치자 부산시민들이 일제히 환호하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전 후보가 7일 오후 부산 서면 롯데백화점 지하상가 분수대 앞에서 첫 공동유세를 펼치자 부산시민들이 일제히 환호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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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3시, 부산 서면 롯데백화점 지하 분수대 앞. 안철수 전 후보가 문 후보와 함께 첫 공동 번개모임을 시작하려면 아직 2시간이나 남았다. 그러나 두 모녀는 일찌감치 나와 발을 동동구르며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모녀 옆에는 황씨의 3살짜리 딸도 있었다. '3대 모녀'가 안 전 후보를 보기 위해 눈발을 뚫고 외출을 나온 것이다.

황씨는 "안 전 후보가 문 후보를 전폭 지원하고 나선 효과가 있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분명히 있다"고 단호하게 말해다. 그는 "저보다 어린 30대들 얘기를 들어봐도, 그동안 갈등을 많이 했었는데, 이번에 안철수가 확실하게 지원한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우리가 (정치인들에 대해) 아는 것은 그냥 단순히 보여지는 겉모습뿐인데, 안철수가 직접 지지할 때는 문재인에게 뭔가 있을 거다, 그냥 따라가자, 그런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황씨는 특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세간의 우려에 대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에는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없다"고 했다. 그는 "어느 한 마디, 어느 한 행동이 한 순간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며 "부산 사람들이 조금 거칠지만 인간적인 정이 많다. 문재인과 안철수가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면, 지지는 하지만 투표하러 가지 않으려고 했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황씨는 이번 대선 전망에 대해 "민주당이 이겼으면 좋겠는데, 이겨도 아주 힘겹게 이길 것 같다"며 "새누리당이 부산을 안심하고 있지만, 문재인이 40% 넘게 나오면 새누리당 사람들도 깜짝 놀랄 것"이라고 기대했다.

어머니 이씨 역시 "안철수는 젊은 팬들이 많다"며 "(두 사람이 부산에서 공동 유세를 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표심에) 변화가 있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우리같이 나이 많은 사람들은 미리 다 정해 놨다. 나야 젊은 사람들과 소통하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그런 사람들은 몰라도 너무 모른다. '박근혜가 잘 났냐, 문재인이 잘 났냐'보다 정치인들이 잘못하면 국민이 스스로 바꾼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데, 내 친구들은 그런 것을 잘 모른다."

이씨는 "우리가 세금을 내면서도 만날 (정치권의) 눈치를 보고 사는데, 우리가 우리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것은 바로 지금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재인-안철수 두 사람이 분수대 앞에 몰려있는 2천여 명의 사람들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자, 곳곳에서 '문재인!', '안철수!', '정권교체!' 등의 구호가 터져 나왔다. 이씨는 자신의 손녀를 높이 들어 올리며 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3대 모녀'의 입가에 함박웃음이 번졌다.


태그:#안철수, #문재인, #박근혜, #부산 민심, #후보단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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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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