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MBC의 간판 예능프로그램인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 폐지 소식이 포털을 달궜다. '국민 MC' 유재석이 9년 동안 진행한 간판 프로그램도 '시청률 저조'를 이유로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최근 형식을 바꾸는 등 각고의 노력과 더불어 기사회생의 기미를 보였다는 점에서 다소 충격적이다.
이는 <뉴스데스크>의 오후 8시대 이동으로 방영시간 변경이란 타격을 입은 시트콤 <엄마가 뭐길래>의 2달 만의 폐지와 함께 MBC의 현 상황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올 한 해 내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MBC의 시청률 지상주의와 더불어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언론사로서의 임무 포기 말이다.
MBC가 친 사건사고가 어디 하루 이틀이랴. 그럼에도 최근 사건에 한정해 보자면, <놀러와> <엄마가 뭐길래>의 폐지가 전자,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의 TV 광고에 대한 방영중지 가처분 신청은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 더욱이 이 가처분 신청은 스스로 야당후보의 선거 광고를 걸고 넘어졌다는 점에서 불안함과 편파성을 자백하는 꼴이기에 더없이 문제적이다.
MBC "문화방송 명예 훼손" VS 민주통합당 "정치적 의견 표시일 뿐""문화방송이 현 정권에 의해 장악을 당한 언론사인 것처럼 구체적 사실관계를 적시하면서, 공영방송사로서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하는 문화방송의 명예를 현저하게 훼손하고 있다."MBC가 6일 남부지방법원에 대선 TV 방송광고 '문재인 TV광고_국민출마 실정 편'에 대한 방영중지가처분을 신청한 내용이다. 그러면서 MBC는 이 광고가 "공영방송사로서의 지위에 적극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특정 당파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함이지 공공의 이익으로 보기 어렵다", ""전 국민의 이목이 집중 된 대통령 선거를 주제로 하고 있어 국민에게 미쳐지는 MBC에 대한 명예훼손의 결과가 매우 크다"고 주장했다.
민주통합당이 가만있을 리 만무했다. 민주통합당은 6일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공영방송 MBC의 정상화를 위해서 투표권을 행사해달라는 호소이지 공영방송 지위에 타격을 주는 내용이 아니다"라며 "명예훼손은 구체적 사실의 적시를 전제로 한다. '언론장악의 희생양'이라는 표현은 구체적 사실의 적시가 아니라 정치적 의견 표시이며, 언론자유라는 공공의 이익을 강조하는 의미로 어떠한 명예훼손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민주통합당은 또 논평을 통해 "김재철 사장은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덮으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김 사장은 문재인 후보의 정당한 TV광고를 사실상 방해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라고 비판했다.
대선을 앞두고 다시금 민주통합당과 MBC 간의 법정공방이 불붙게 된 셈이다. 헌데 이 TV광고는 진짜 MBC의 명예를 훼손한 게 맞은 걸까. 문재인 후보는 이에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시청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MBC는 무슨 자신감으로 이런 자충수를 거듭하는 걸까.
MB정부 질책하는 이 광고가 MBC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먼저 '팩트'를 체크해 보자. 문재인 후보의 TV 광고 '국민출마 실정' 편이 도대체 어땠길래.
"지난 5년 행복하셨습니까/ 포탄에 찢긴 연평도가 출마합니다/ 구석구석 썩어가는 4대강이 출마합니다/ 폭력진압에 쓰러진 용산이 출마합니다/ 청춘의 고민, 반값등록금이 출마합니다 / 언론장악의 희생양, 무한도전이 출마합니다 / 권력에 짓밟힌 민주주의가 출마합니다 / 검찰개혁을 위해 정의가 출마합니다 / 문재인의 이름으로 당신도 출마해주십시오 / 잘못된 정권의 연장을 막아주십시오 / 사람이 먼저다 문재인"연평도 포격과 녹차라떼, 용산 참사 시위 현장, 쓸쓸한 재래시장, 촛불을 든 반값등록금 시위 대학생, 노동자 시위 현장, '정치' 검찰의 뒷모습, 그리고 '쫌 보자 무한도전'의 피켓을 든 시민들.
MBC는 '무한도전'이란 문구의 사용에 기분이 상했을지도 모르겠다. MBC 노동조합이 장기간 파업의 아이콘으로 내세운 '보고 싶다, 무한도전'이 상징하는 바는 명징하다. 파업기간 내내 드러냈던 MBC의 불편한 심기 말이다. 반면 시청자들과 '무도' 팬들은 '파업 특별판'에까지 성원을 보내며 <무한도전>과 MBC 노조의 파업에 응원을 보낸 바 있다.
그러니까 이 광고 속 카피와 사진 한 컷이 MBC의 명예를 실추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민주통합당의 광고대로 MBC의 상황이 '정권에 의한 언론장악'이라고 스스로 자백하는 꼴이 되는 셈이다. 왜 그 반도의 흔한 속담들이 있지 않은가. 도둑이 제 발 저리고, 방귀 뀐 놈이 성 낸다고.
"기쁨 주고 사랑 받던" 문화방송 망가뜨린 김재철 "1등 방송 만들 것"애석하게도, 한때 MBC는 "기쁨 주고 사랑 받는 문화방송"이었다. 말을 바꿔보면 방송사가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지킬 때, 시청자들이 '신뢰'를 보낸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번 문재인 후보 TV광고 가처분 신청과 같이 '신뢰성'을 파괴한 것은 MBC 경영진 스스로다.
최근 사퇴를 천명한 양문석 방송통신심위위원회 상임위원은 지난달 8일 하금열 청와대 대통령 실장과 새누리당 김무성 총괄본부장이 방송문화진흥회에 압력을 행사, 김재철 MBC 사장 해임안을 부결하게 만들었다고 폭로했다. 그에 앞서 이진숙 MBC 본부장은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 나눈 녹취록이 한 매체에 의해 폭로되면서 물의를 빚었다.
그럼에도 이진숙 본부장은 한 방송에 나와 "김재철 사장은 비리가 없고, 양심에 떳떳하다"는 발언을 했다. 김재철 사장 역시 지난달 열린 MBC 창사 51주년 기념식에서 "1등 방송을 만들겠다"며 '사퇴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기도 했다. 각종 부정 의혹과 물의를 빚고도 고소와 고발을 남발하는 MBC에 어떤 국민이 신뢰를 보낼 수 있을까.
이런 때에 매달리는 것이 바로 시청률이다. MBC는 지난달부터 시청자와의 오랜 약속이었던 오후 9시 메인뉴스인 <뉴스데스크>를 8시로 옮겼다. KBS 1TV <9시 뉴스>를 피하고 SBS와 경쟁하기 위한 꼼수였다. 하지만 그 최우선으로 내세웠던 시청률은 SBS의 반토막을 기록하는 동시에 <하이킥> 시리즈를 탄생시켰던 시트콤을 희생시켰다. 신뢰는커녕 이 유재석도 강판시키는 이 시청률 지상주의에 어떤 시청자가 호감을 보낼 수 있을까 말이다.
'문재인 무한도전'이 아니라 <무한도전>의 미래를 걱정할 때 더욱이 MBC는 이번 대선 보도를 축소하는 한편 자의적인 편집으로 지적을 받고 있다. 국민적 축제인 대선을 놓고 심각하게 정치 보도를 제한하고, 사회 보도에 올인하는 한편,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 안철수 전 후보 간의 기계적 중립으로 일관했다. 여당발 네거티브 공세는 자세히 보도하면서도 7일 인터넷을 달궜던 '타임지 커버 독재자의 딸 표현 논란' 같은 사안은 침묵하기 일쑤였다.
"김재철의 공포정치. 피디도 숙청 기자도 숙청 작가도 숙청 출연자도 숙청. 이제 프로그램도 맘에 안 들면 숙청. 정권 비호로 되살아난 김재철과 그 일당. 저들의 독재 속에 mbc는 핏물 속에 잠겨가고 있습니다."노조원들을 좌천시키고 재갈을 물리고 있는 MBC 경영진에 대한 노동조합 측의 절규다. 안으로는 아나운서와 PD들을 숙청하고, 밖으로는 야당 대선 후보와 맞서는 김재철 사장과 MBC.
이들의 '무한도전'에 <무한도전>의 미래까지 걱정하는 시청자들이 한 둘이 아니라는 점을, '만나면 좋은 친구'에 대한 신뢰가 이미 추락해 버렸다는 점을 이제는 확실히 깨달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