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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은 기세다


무릇 싸움이라 함은 기세의 다툼이다. 아무리 '쪽수'가 많아도, 아무리 '장비'가 좋아도, 사기가 꺾인 진영은 승리하기 어렵다. 싸움도 인간이 하는 이상 그 승패는 구성원의 마음가짐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는데, 만약 개인 각자가 승리에 대해 확신이 없다면 그 전체는 지리멸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리더들이 결전에 앞서 아군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이와 같은 맥락으로 민주주의의 선거 역시 그 기세가 매우 중요하다. 물론 1인 1표라는 원칙 때문에 전장에서처럼 일당백은 존재할 수 없지만, 진영의 사기는 그들을 지지하는 이들의 투표율과 밀접한 관련을 지닐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승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질 선거라면 투표하는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자거나 놀러 나가는 것이 훨씬 낫다는 나름 합리적인 판단. 우리는 이미 2007년 대선 등을 통해 그 실례를 지켜보지 않았던가. 고백컨대 나 역시 그와 같은 패배의식으로 투표를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문제는 2007년 대선 이후 발생되었다. 그와 같은 패배의식을 쌓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여론조사가 실제 민심과 다른 결론을 내놓기 시작했던 것이다. 2010년 6.2 지방선거 당시 지지율 20% 이상 차이 난다던 오세훈-한명숙의 실제 표 차이는 0.6% 차이였으며, 역시 20% 이상 차이가 벌어졌던 강원도지사 보궐선거에서는 오히려 결과가 역전되어 최문순 민주통합당 전 의원이 승리했다. 여론조사를 믿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각 진영의 기세다. 심지어 여론조사의 20% 차이까지도 믿을 수 없다면 5~6%의 차이는 장난에 불과할 것이므로, 어느 후보가 얼마나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지지자를 투표장으로 불러낼 수 있는가가 승부를 좌우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표가 사표가 아니라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희망. 바로 그 희망을 어느 후보가 더 주느냐가 승리의 관건이 될 것이며, 이 분위기는 각 진영의 사기와 정비례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현재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 진영 중 어느 쪽이 더 사기가 높을까? 과연 어느 쪽이 더 많은 사람들을 동하게 만들고 있는가?

새누리당, 혹시 떨고 있니?

선거를 승리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가 결코 나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을 심어주어 우리편의 투표율을 높여 이기는 방법이 그 하나요, 반대 지지자들에게 그럼에도 너희들이 질 수밖에 없다는 패배주의를 심어주어 반대편의 투표율을 낮추는 것이 또 하나의 방법이다.

후자의 경우가 바로 대세론을 이용한 패배주의의 확산인데, 이는 현재 새누리당이 가장 심혈을 기울일고 있는 방법이다. 어차피 박근혜 후보의 표는 견고하게 굳어져 더 이상 확장하기 어렵기 때문에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서는 자신들의 득표보다 문재인 후보의 득표를 낮게 만드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2007년 대선 때와 마찬가지로 '그래봤자 문재인은 안 돼'라는 주문만을 주야장천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와 같은 패배주의가 2012년 대선 공간에는 확산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록 4월만 해도 총선을 이기고, 몇 달 전만 해도 박근혜 대세론이 정답이었으며, 최근까지의 여론조사에서도 박근혜 후보가 근소하게 1위를 유지하고 있으나, 현재는 새누리당 그들 스스로도 대선에서의 승리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기가 꺾이는 순간 패배임을 알기에 티를 내지는 못하고 있으나, 최근 여러 군데에서 그들의 위기의식과 패배주의가 묻어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주목할 것은 최근 업로드된 <나는 꼼수다>와 <유시민, 노회찬의 저공비행>의 지적이다. 두 팟캐스트에서 김어준, 주진우, 유시민, 노회찬은 최근 대선 판세를 분석하며,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 지지율 사이에 '골든 크로스'가 곧 달성될, 혹은 이미 달성되었다고 이야기하는데 그 근거로 제시되는 항목들이 청취자들의 입장에서 꽤 설득력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그들이 지적한, 새누리당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징후이다.

10월 26일 오후 '정봉주와 미래권력들'(미권스), '나는꼼수다'(나꼼수) 팬클럽 등이 홍성교도소에 수감중인 정봉주 전 의원을 위해 마련한 서울 여의도공원 콘서트에서 주진우 시사인 기자,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김용민 시사평론가, 공연기획자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가 무대에 올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자료사진)
 10월 26일 오후 '정봉주와 미래권력들'(미권스), '나는꼼수다'(나꼼수) 팬클럽 등이 홍성교도소에 수감중인 정봉주 전 의원을 위해 마련한 서울 여의도공원 콘서트에서 주진우 시사인 기자,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김용민 시사평론가, 공연기획자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가 무대에 올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자료사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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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박근혜 후보의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직접적인 네거티브 공격

1차 대선 토론이 끝나고 난 뒤, 유시민 전 장관은 부산저축은행, 아들 취업문제 등 박근혜 후보가 직접적으로 문재인 후보에 대해 네거티브 공격을 했음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선거에서 1위를 하고 있는 후보는 절대 네거티브를 하지 않는 법인데, 당시 여론조사 상 최소 4~5%p 앞서고 있는 박 후보가 직접 문 후보를 공격했음은 새누리당이 자체적으로 돌리고 있는 여론조사가 결코 그들에게 유리하지 않게 나오고 있음을 반증한다는 것이다.

둘째, 여의도 연구소의 전면적인 등장과 낙관적인 전망

김어준 총수는 최근 여의도 연구소가 종편에 나와서 대선 전망을 얘기하면서 이번 대선에서 박 후보가 확실하게 이기고 있다고 언급했음을 주목했다. 그동안 여의도 연구소는 자기 진영이 이길 때 지지자들을 긴장시키고 표를 결집 시키기 위해 이기고 있다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 그런데 이번 대선에는 굳이 전면에 등장해 승리를 낙관하는 것을 보면 지금은 표정 관리할 시점이 아니라 보수 진영의 결집도가 떨어지고 있는 것에 위기감을 느껴서 보수 진영의 불안감을 덜어줘야 할 상황이 됐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셋째, '광화문대첩'의 장소 변경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대규모 서울지역 합동유세에서 청년유세지원단 '빨간운동화' 단원들이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대규모 서울지역 합동유세에서 청년유세지원단 '빨간운동화' 단원들이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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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전 장관은 지난 8일 소위 '광화문대첩'에 있어서 박 후보 측이 갑자기 대규모 동원령을 내려 유세 장소를 서울 광장에서 문 후보와 같은 광화문 광장으로 변경한 것을 지목했다. 이는 지지자들에게 수도권에서의 막상막하의 격동을 보여줄 필요성이 있기 때문인 듯한데, 이를 통해 자신들이 결코 밀리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때마침 이 유세가 끝난 뒤 유세와 관련된 조작된 사진이 인터넷에 돌고, 경찰 또한 박근혜 1만5천명, 문재인 1만1천명 운집이라고 발표했는데 이 역시 새누리당이 스스로 떨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촌극이라는 주장이다.

넷째, 새누리당의 막말 및 언론 보도지침

김 총수와 노회찬 의원은 현재 끊임없이 산발적으로 튀어나오고 있는 새누리당 내부의 막말과 언론의 안철수 보도에 대한 안형환 새누리당 대변인의 간섭을 지목했다. 현재 새누리당에서는 문 후보와 안 전 후보에 관해 입에 담지 못할 막말들이 등장하며, 어떻게든 안 전 후보의 지원유세 장면을 공중파에 등장시키지 못하기 위해 혈안되어 있는데, 이는 결국 그들이 그만큼 위기의식을 느끼고 여론조사처럼 넉넉히 이기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대형 교회 목사들과 권력기관의 수상한 움직임

주진우 기자는 역시 그 직업상 최근 대선 정국에 있어서 대형 교회 목사들과 권력기관들의 수상한 움직임에 대해 지목했다. 대형 교회 목사들이 주말 설교 이후 대선과 관련하여 다른 행위를 하고 있으며, 새누리당과 청와대, 국정원 등 권력기관원들이 어느 시점 이후로 매우 분주해졌는데 이는 결국 박 후보의 위기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주장이 모두 옳을 수는 없다. 오히려 그들의 논리를 갖다댄다면, 그들의 주장도 역시 문재인 후보 진영의 불안감의 결과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불안하니까 위와 같은 분석으로 지지자들에게 헛된 믿음을 심어준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이젠 여론조사의 지지율마저 알 수 없는, 그야말로 혼전의 시국이다. 여기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내 자신. 나의 승리에 대한 확신만이 시대의 변화를 이끌 것이다. 2년여 동안 항상 들으며 용기 내었던 구절을 떠올린다.

"쫄지마 씨바!"


태그:#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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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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