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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경제 양성화한다고요? 기득권층이 가만히 있을까. 다 이리저리 얽혀 있는데...아니 국회에서부터 제동을 걸지도 모르지."

지난 12일 정부 사정 당국 한 인사의 말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 내놓은 대안 중 하나인 지하경제 양성화에 대한 반응이었다. 그는 경제부처의 고위급이다. 그는 또 "그동안 여러 선거에서 지하경제 양성화로 돈을 끄집어내겠다는 이야기는 있었다"면서 "하지만 실제로 집행돼서 얼마의 돈이 빛을 봤다는 통계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한마디로 실현 가능성이 없는 정책인 셈이다. 박 후보가 경제복지 공약에서 가장 우선시해왔던 '실현 가능성'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다.

경제학자나 조세전문가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의 경제적 이권에 따라 지하경제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정책에 영향을 주려는 모습도 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리는 한 조세전문가는 "지하경제에 대한 개념과 규모에 대해선 아무도 모른다"고 단정하기도 했다. 기업 쪽을 대변해 온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지하경제를 없애려면 세율 자체를 대폭 내리거나 규제를 없애면 된다"고도 했다. 그는 이어 "그런 의미에선 박 후보의 줄푸세 공약(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치는 세우자)과 일맥상통한다"고 말했다.

지하경제 정의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지하경제 행위의 구성
 지하경제 행위의 구성
ⓒ 전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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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럴까. 우선 지하경제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일반적으론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경제통계로 파악되지 않는 모든 경제활동을 말한다. 여기에는 무허가 영업활동을 비롯해 밀거래 등 불법적인 경제활동도 포함된다. 또 합법적이라도 세무당국에 신고하지 않거나, 일용노동 같은 이유로 정부 통계에 포착되지 않는 활동도 들어간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조차 지하경제의 정의가 명확히 떨어지지 않는다. 전승훈 대구대 교수(경제학과)는 "지하경제에 대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정의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조세포탈이나 조세회피 행위를 비롯해 물물교환이나 품앗이 등 시장을 통하지 않은 경제활동 등을 모두 포함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입장에서 지하경제를 폭넓게 인정한다고 해서 정책적으로 별다른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고 한다. 예를 들어 가내생산처럼 시장을 통하지 않은 경제활동 규모를 집계한느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연구의 목적에 따라서 지하경제를 다양하게 정의를 내리고 있다"고 전했다.

안종석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지하경제는 대개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제활동, 공식통계에 잡히지 않는 부분을 일컫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언뜻 뜻은 명확해 보이지만 실제 지하경제를 어떻게 추정하느냐의 관점에 따라 정의하면 매우 복잡하고 어렵게 된다"고 덧붙였다.

규모도 제각각 해석, 국내 GDP의 20%안팎... "최근 10년새 크게 줄어" 분석도

그렇다면 지하경제 규모는 어떻게 추정할수 있을까. 안 연구위원은 "지하경제 정의 자체가 통계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학자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규모가 추정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렇게 추정된 결과에 대한 정확성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그는 "정확성을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느 추계 방법이 가장 우수한지도 입증할수 없다"고 말했다. 그 말대로라면 지하경제 규모로 알려진 수치나 내용 자체에 대한 신뢰성에 큰 의문이 생길수 밖에 없다.

지난 2010년에 그가 내놓은 '지하경제 규모의 측정과 정책시사점'이라는 제목의 논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안 연구위원은 "지하경제 규모 추정에 대한 연구 역시 그동안 활발하게 진행되지 않았다"면서 "해당 논문은 당시까지 사용됐던 방법을 모두 동원했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소개했다. 특정 방법에 의존하지 않고 학계에서 사용된 방법을 총망라했다는 것이다.

지하경제 추정 결과
 지하경제 추정 결과
ⓒ 안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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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그가 사용한 네가지 연구 방법에 따르면 우리나라 지하경제규모는 2010년 기준으로 전체 국내총생산(GDP) 대비 17~19% 수준이다. 또 지하경제 개념을 좀더 좁혀서 소득세 탈루 규모로만 따지면 GDP 대비 5% 미만까지 떨어지게 된다.

그의 이같은 수치는 다른 국내외 연구 추정치보다 낮다.  오스트리아 빈츠대학의 슈나이더 교수는 우리나라 지하경제 규모를 GDP대비 27.6%(2004/2005년), 한국개발연구원 노기성 박사팀은 22%(2006년), 대한상공회의소는 30%(2007년)를 추정했었다.

안 연구위원은 "지난 10여년동안 국내 경제의 투명화가 크게 진전되면서 지하경제 규모도 크게 축소됐다"면서 "예전 (지하경제 규모) 연구 자료 등은 이같은 현실이 잘 반영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하경제 양성화? 사실상 현실성 없는 구호로 그칠 가능성 커

그렇다면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재원 마련은 가능할까. 전문가들 사이에선 회의적인 반응이 많다. 이미 사회 경제적으로 투명성이 크게 높아졌다는 점을 들고 있다. 안 연구위원은 "90년대 들어 금융실명제를 비롯해 최근 몇년사이 신용카드와 현금영수증까지 도입됐다"고 전했다. 그는 "이같은 금융거래의 투명성과 세원의 투명화로 인해 지하경제가 상당히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하경제를 둘러싼 명확한 개념과 정확성이 없는 상황에서 양성화를 통해 구체적인 재원을 마련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의 한 고위인사는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몇조원을 거둬들이겠다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오히려 고소득층이나 재벌 대기업 등 특정 계층이나 소득 파악이 잘되지 않았던 업종에 대한 과세 강화를 말하는 것이 맞다"면서 "하지만 이는 이미 꾸준히 집행하고 있는 것들"이라고 덧붙였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조세전문가도 "지하경제 양성화라고 하면서 갑자기 어떤 금융규제를 강화하든지 할 경우 자칫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침해할 소지까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어차피 선거 국면에서 내놓을 수 있는 선언적 의미정도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전승훈 대구대 교수는 "숨어있는 세원을 양성화하는 쪽으로 정책적 수단을 잡는 것이 옳다"면서 "납세자의 금융정보를 좀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고액현금거래 보고제도 역시 좀더 실효성있게 고쳐나갈 필요는 있다"고 강조했다.


태그:#지하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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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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