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총선에서 자민당이 과반을 훌쩍 뛰어넘은 압승을 거두며 3년 만에 정권을 되찾았다.
16일 실시된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17일 아침까지 진행된 개표 결과 전체 480석 가운데 과반이 넘는 294석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절대안정의석으로 불리는 269석마저 초과하는 승리다.
절대안정의석을 확보하면 중의원의 모든 상임위원장을 독식할 수 있다. 또한 31석을 확보한 공명당과 연립하면 320석을 넘겨 참의원(상원)에서 법안이 부결되더라도 중의원에서 재의결해 성립시킬 수 있고, 헌법개정 발의까지도 가능하다.
일본 극우 정치를 대표하는 이시하라 신타로의 일본유신회가 제3당으로 등극하면서 자민당의 국정 운영은 한결 수월해졌다. 이날 총선과 함께 치러진 도쿄도 지사 선거에서는 이시하라 전 지사의 후계자 이노세 나오키 부지사가 당선됐다.
반면 2009년 총선에서 54년간 이어져 온 자민당 시대를 끝내고 역사적인 정권 교체를 이뤄냈던 민주당은 기존 의석 대부분을 잃고 참패했다. 민주당 대표인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고 당 대표직에서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일 미군 후텐마 기지 이전과 소비세 인상 등을 놓고 역량 부족을 드러냈고, 동일본 대지진 당시 미흡한 대처로 민심을 잃으며 결국 3년 만에 다시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민주당은 후지무라 오사무 관방장관, 조지마 코리키 재무상 등 현직 각료 8명이나 낙선했다. 일본 헌정 사상 현직 각료가 8명 이상 총선에서 패한 것은 처음이다. 간 나오토 전 총리도 지역구에서 낙선했지만 비례대표에서 겨우 살아남았다.
그러나 출구조사 결과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아무리 높아도 60%를 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 3년 전 총선 투표율 69.28%보다 무려 10%포인트 이상 줄어들면서 유권자의 낮은 관심을 반영했다.
총리직 되찾은 아베, 5년 전 실패 만회할까이번 총선에서 자민당의 정권 탈환을 주도한 아베 신조 총재는 국회에서 지명 절차를 거쳐 제96대 총리로 취임한다. 이로써 지난 2007년 이후 5년 만에 다시 총리직에 올라 일본을 이끌게 된다.
아베 총재는 일본의 대표적인 정치 명문가 출신이다.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부친 아베 신타로 전 외무상 등의 영향을 받아 정치에 입문했고, 1993년 부친의 지역구(야마구치 1구)를 이어받아 중의원에 당선된 뒤 6선을 지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시절 관방장관으로 내각 경험을 쌓은 뒤 2006년 9월 만 52세 나이로 전후 최연소 총리에 올랐다. 아베를 자민당 총재로 만들어준 강경한 우파 정책은 총리가 되자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다.
과거사 부정,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으로 주변 국가와 마찰을 빚었고,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연행을 부인했다가 국제사회의 큰 비난에 시달렸다. 결국 측근 비리까지 터지며 악재가 겹치자 이듬해 2007년 취임 1년 만에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했다.
총재 사임 후 주목을 받지 못하면서 와신상담의 시간을 보냈고, 일본의 우경화 흐름을 타고 자위대 지위 격상과 적극적인 경기 부양책 등을 주장하며 지난 9월 자민당 총재로 당선됐고, 끝내 총리직까지 되찾았다.
아베는 헌법을 개정해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변경하고, 집단적 자위권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한국, 중국 등의 반발이 당연하기 때문에 아베는 우선 미국의 동의를 얻기 위해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미국을 방문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자민당의 다음 목표는 참의원 선거다. 여전히 참의원 제1당은 민주당이며, 자민당은 현재 87석으로 연립을 추진하고 있는 공명당 19석과 합해도 과반 121석에 미달한다. 더구나 공명당은 헌법개정을 반대하고 있어 연립도 순조롭지 않다.
헌법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모두 재적 의원 3분의 2가 찬성해야 한다. 중의원에서 공명당과의 연립이 틀어질 경우 일본유신회와 손을 잡아 통과시킬 수도 있지만 참의원은 불가능하다.
민주당 역시 총선에서 참패를 당했지만 최소한의 정치력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내년 참의원 선거에서 제1당 지위 유지를 노리고 있어 자민당과의 힘겨루기는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