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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내는 아침 일찍 서울에서 출발해서 일본 규슈(九州)의 후쿠오카(福岡)로 향했다. 후쿠오카는 서울에서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외국 도시이다. 우리는 출발한 지 1시간이 조금 지났는데 비행기에서 금방 내려야 했다. 다행히 입국심사가 빨리 끝나서 1시간에 1대씩 있는 버스에 늦지 않을 수 있었다. 하카타역(博多驛)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 후쿠오카 국제선 공항 4번 정류장에 섰다.

오늘의 목적지는 규슈의 오이타(大分)현에서도 외진 산골로 더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유후인(由布院). 하카타역 레일패스 창구에서 일본철도 북큐슈 레일패스권을 받은 후 유후인노모리(ゆふいんの森) 기차 티켓도 발권했다. 일본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철도역의 여종업원들은 더 이상 질문사항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꼼꼼하게 답변을 해 준다.

하카타 역에서 크로와상으로 이름을 날리는 가게이다.
▲ 일 포노 델 미뇽 하카타 역에서 크로와상으로 이름을 날리는 가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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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후인행 기차를 타러 가려다 보니 역 안에 달콤한 향의 빵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그 냄새를 따라 가보니 그곳에는 하카타 역에서도 줄을 서서 사먹는다는 유명한 크로와상 가게, 일 포노 델 미뇽(il FORNO del MIGNON)이 있었다. 나와 아내는 점심 먹는 시간이 애매해서 이 크로와상을 잔뜩 사가기로 했다.

이 가게는 빵인 크로와상을 특이하게도 그램 단위로 팔고 있었다. 크로와상의 종류도 한 가지가 아니라 플레인, 초콜릿, 고구마 크로와상이 있다. 생각보다 크로와상이 작아서 우리는 다양한 맛을 보기로 하고 한 가지씩 여러 개를 주문했다.

윤기가 흐르는 크로와상의 맛이 달콤하다.
▲ 크로와상 윤기가 흐르는 크로와상의 맛이 달콤하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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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도 기차에 올라타자마자 배가 고파왔다. 나는 비닐봉지에 한 개씩 싸인 크로와상을 꺼냈다. 먹음직스럽게 크로와상 겉에 윤기가 흐르고 있다. 시럽을 빵 표면에 발라서 달콤한 맛이 나는데 빵 안에 들어있는 재료에 따라서 맛은 다 다르다. 겉은 바삭바삭하지만 크로와상 속은 찰지고 부드럽다. 크로와상을 먹느라고 손가락은 끈적끈적해졌지만 크로와상의 유명세는 헛된 것이 아니었다. 표면에 깨가 붙어있는 고구마가 제일 맛이 좋은데, 아내는 초콜릿이 진하게 담긴 크로와상이 제일 낫다고 한다. 그러니 명품 먹거리도 다 먹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평이 달라지는 것이리라.

유후인행 기차가 정차 역에 설 때마다 승무원 할아버지가 계속 기차의 통로를 돌아다닌다. 그는 좌석에 앉은 승객들의 기차표를 일일이 확인하고 있었다. 이미 우리나라 KTX에서는 승차권과 좌석을 확인하지 않기에 이제는 차표를 확인하는 승무원의 모습이 낯설게만 보인다. 일일이 승객을 확인하고 펜으로 기록하는 그의 아날로그식 접근이 매우 인간적으로 보인다.

우리 주변을 지나갈 때마다 웃으며 친절을 베풀었다.
▲ 기차 승무원 우리 주변을 지나갈 때마다 웃으며 친절을 베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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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 할아버지는 우리가 한국 사람인 것을 알고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우리 부부의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먼저 말을 건네며 웃는다. 그는 우리 사진을 숙달된 자세로 찍어주며 한 장을 더 찍어주겠다고 한다. 사진을 촬영하는 폼이 관광객들에게 숱하게 사진을 찍어준 솜씨다. 그가 외국 여행자들을 특별히 배려하고 자기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음이 몇 마디의 대화에서도 느껴진다. 더 이상 친절할 수 없는 할아버지 덕에 여행길이 더 풍성해진다.

유후인역에 도착해서 밖으로 나오니 유후다케(由布丘, 1584m)의 장엄한 산줄기가 우리의 시야를 자연스럽게 장악한다. 분지로 둘러싸인 이 유명한 온천마을은 평균 고도가 해발 470m나 된다. 유후인은 깊은 산속에 있었기에 개발이 늦었지만 최근의 유후인은 일본의 작은 온천마을을 대표하며 특히 일본 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온천마을이 되어 있다.

작고 아담한 유후인 역에서 우리가 묵을 료칸(旅館)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되는 거리다. 나는 인터넷 일본 료칸 사이트에서 출력한 지도를 들고 기찻길 옆 2차선 도로를 따라 걸어갔다. 맑은 물 흐르는 개천을 건너니 소박한 식료품 가게와 두부 가게가 나왔다. 숙소를 찾아가면서 나는 소박한 일본 시골의 풍경에 매료되고 있었다. 개천 너머 유후다케에는 한적한 구름이 걸려 있었다.

일본에서 최근에 가장 인기있는 온천 여행지이다.
▲ 유후인 일본에서 최근에 가장 인기있는 온천 여행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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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모르게 마을 분위기가 편안하다. 유후인 어디를 걷더라도 포근한 유후다케가 시야에 들어왔다. 마을 어디서나 유후다케가 보이는 것은 유후인에 들어선 모든 건물의 높이가 11m를 넘지 못하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골목길에는 한적한 가정집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고요함은 일본의 주택가를 걸을 때마다 느끼는 감성이다. 작은 골목길로 접어들자 우리가 찾는 료칸 표지판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친절한 여러 개의 안내판은 골목이 꺾어질 때마다 우리를 인도했다.

료칸의 체크인 시간이 오후 4시인데 우리는 료칸 체크인 시간보다 1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여행 짐을 맡기고 유후인 시내 관광에 나서려고 료칸 로비 문을 열었는데 예상 외로 료칸에는 아무도 없다. 료칸에서 기르는 검은 고양이 한 마리만이 료칸의 로비를 넘나들며 주방 아래 물그릇에 담긴 물을 마시고 있었다. 고양이는 이 료칸의 구조를 잘 아는 데다가 고양이가 물을 마시는 곳은 고양이 지정 음수대 같았다. 이 고양이는 내가 어릴 적부터 갈고 닦은 고양이 소리로 친근감을 표시했지만 나를 본 체도 하지 않는다.

로비 안에서 약간 서성거리다가 로비 입구 밖으로 나가 보니 료칸 입구의 안내판에 내 이름이 적혀 있다. 내 이름 옆에는 우리가 묵을 방 이름과 함께 우리를 환영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리고 만약 내가 체크인 시간보다 일찍 료칸에 도착하면 로비에 있는 열쇠를 가지고 가서 방을 이용해도 좋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료칸 문을 열어두고 열쇠까지 맡기고 나간 이 마을의 자부심과 함께 손님에 대한 일본인들의 꼼꼼함과 세밀함이 다시 한 번 느껴진다.

일본의 료칸마다 자신들만의 특색있는 저녁식사를 제공한다.
▲ 료칸 가이세키 일본의 료칸마다 자신들만의 특색있는 저녁식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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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잠시 유후인 시내를 관광 나갔다가 다시 료칸에 돌아왔다. 일본 료칸의 정식요리인 가이세키(懐石, かいせき)가 준비를 마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위아래로 검은 면옷을 입은 료칸의 여주인은 친절했고 한국인 여행자들과 이야기하기 위해 배운 한국어로 우리를 환대했다. 그녀는 저녁식사 시간과 노천온천을 사용하는 방법 등을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친절하게 알려줬다.

료칸의 식당에서도 우리가 식사하는 자리는 따로 정해져 있다. 식탁 위에 세워진 명패에는 우리의 방 이름인 '소보(祖母)'가 적혀 있다. '소보'는 일본의 100대 명산에 포함된다는 유후인 인근의 소보산(祖母山, 1,756m)을 말하는 것이다. 방 이름 하나에도 지역 특색을 담아내고 자신의 마을에 대한 애향심이 가득하다. 불현듯 다음에는 소보산과 같은 규슈 고산지대의 억새밭을 종주해보고 싶은 생각이 일어난다.

가이세키에는 아내가 좋아하는 연어살 샐러드에 닭고기 화로구이, 생선구이, 계란찜, 단호박이 올라왔고 한국 사람들이 많이 찾기 때문인지 김치도 한 접시가 차려졌다. 음식은 여러 종류지만 그릇마다 정확히 1인분 정도씩만 깔끔하게 담아냈다. 닭고기를 굽는 작은 화로의 불빛이 타오르면서 어두워진 저녁 시간에 분위기를 더하고 있었다. 점점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저녁 속에서 아내는 별도로 커피까지 주문해 마시면서 여유를 누렸다.

저녁식사 하는 도중에 료칸에서 깔아주는데 이불이 두툼하다.
▲ 료칸 이불 저녁식사 하는 도중에 료칸에서 깔아주는데 이불이 두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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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를 마치고 우리가 묵는 다다미 방으로 들어오니 다다미 위에 두꺼운 일본 면이불이 깔려 있었다. 이불이 너무 두꺼워서 무겁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이불 속으로 한번 들어가보니 예상 외로 포근하다. 이불 밑에는 두꺼운 담요까지 깔려 있는데 유후인의 새벽 공기가 차기 때문일 것이다.

 숙박객에 비해 노천온천이 많아 여유있게 온천을 즐겼다.
▲ 료칸 온천탕 숙박객에 비해 노천온천이 많아 여유있게 온천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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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료칸의 최대 장점은 방 객실 수에 비해 온천시설이 많다는 점이다. 총객실이 5개 밖에 안 되는데 노천온천 2곳, 실내탕 2곳 해서 총 4개의 온천탕이 있다. 료칸 숙박객들이 24시간 온천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한 온천탕을 한 가족이 거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료칸 건물 실내에 있는 실내탕보다는 료칸 객실과 분리된 노천온천을 이용하기로 했다. 나는 아내와 단둘이서 노천탕을 독차지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시원한 공기를 느껴본다.
▲ 노천 온천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시원한 공기를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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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방에서 온천용 유카타(浴衣)로 옷을 갈아 입은 후 큰 타월을 들고 노천온천으로 향했다. 우리는 료칸에서 가장 큰 노천온천의 문고리에 '사용 중' 푯말을 걸고 탕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밖에서 문이 열리지 않도록 온천탕의 출입문을 꽉 잠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온천수가 목재의 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나무들 사이에서 흘러 내려오고 있었다. 넓직한 노천온천의 밖은 이미 해가 지고 어둠이 깔려 있었다.

홀로 명상을 하며 쉬기에 좋은 곳이다.
▲ 작은 노천온천 홀로 명상을 하며 쉬기에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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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드러난 바깥 공기는 차가운데 온천수에 잠긴 몸은 따뜻하다. 나는 한 몸이 서로 다른 온도차를 느껴보는 새로운 경험을 즐기고 있다. 온천탕에 들어오기 전에 열심히 몸을 씻고 있는 아내의 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명상의 시간을 가져본다. 명상을 하다가 다시 눈을 떠서 적막 속에 잠긴 밤하늘과 온천의 초록빛 나무들을 바라본다. 료칸의 따뜻한 온천수 때문인지 나무들의 잎사귀들은 부드럽게 반질거리고 있었다. 

뜨거운 온천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안개가 유후인을 덮고 있다.
▲ 온천마을의 아침 뜨거운 온천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안개가 유후인을 덮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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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에도 유후인에는 온천마을을 자랑하는 아침의 온천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온천마을의 안개 밑에는 일본에서 용출량이 두 번째로 많다는 따뜻한 온천수가 흐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시간에 료칸의 작은 노천온천탕에 들어갔다. 따뜻한 물의 즐거움 속에서 홀로 온천을 즐겼다. 밝아오는 아침 하늘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노천 온천 바깥에서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 들어왔다.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2012년 10.15일~10.18일의 일본 여행 기록입니다.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300편이 있습니다.



태그:#일본여행, #규슈, #후쿠오카, #유후인, #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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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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