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재물은 부자여도 마음이 가난한 사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진정 행복한 삶을 사냐는 물음엔 돌아오는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직 자기 자신만 생각하니깐 만족이란 게 없고 더욱 탐욕스러워지며 결국 마음의 가난이 초래됩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평생 나누는 기쁨을 모르는 사람이 가장 불쌍한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 나눌 수 있는 위치가 되고 그게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 그때야 비로소 진짜 행복이 뭔지 알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싱글싱글 웃으며 봉사에 대해 말하는 그의 눈빛엔 자신감이 넘친다. 봉사의 확고한 신념을 갖고 무려 23년째 영어 무료멘토링 봉사를 하는 이는 김용연(군산시수 소재 영어학원) 원장이다. 소위 잘 나가는 학원 원장이 봉사에 더 큰 뜻을 품게 된 건, 지난 삶의 팍팍함과 감사가 내포돼 있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에서 아홉 남매에 막내로 태어났어요. 먹고 살기도 빠듯하여 공부하고 싶어도 그럴 상황이 안 됐었죠.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턴가. 리어카를 끌어 고물을 싣고 다녔어요. 배우지 못한 설움과 원망이 교차했던 시기였죠."고등학교 졸업 뒤, 직업훈련소 제1기생으로 중장비 운전을 배우며 오후에는 고물장사를 계속한 그는 몸을 아끼지 않고 일에 전념했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젊은 날의 직업은 액세서리 장사를 비롯해 과일, 생활용품 판매, 도서·정수기 영업사원 등 이것저것을 가리지 않았으며 벽돌과 배수선 공장 및 굴착기 기사에 이르기까지 열정과 책임감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다.
일만 하면서 배움에 대한 갈증이 밀려올 때 즈음, 그가 도전한 건 영어공부였다. 1987년 당시, 군산영어성경학습회라는 주한 미군이 개설한 모임에서 영어교육을 무료로 받게 된 것이다. 이후 영어공부에 남다른 흥미를 갖게 된 그는 지방대학을 거쳐 서울로 상경해 대학원에 진학, 영어공부에 전념하게 됐다. 그리고 자신만의 영어공부비법을 찾게 된 후 'K-one 기본영어'라는 책을 출간하게 됐고 이 책은 영문대비 국문비율이 가장 높다는 이유로 재작년 군산시에서 선정한 '군산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제가 받은 무료영어교육은 제 인생의 있어 큰 전화점이 된 것 같아요. 공부한 지 4년 만에 당시 군산에서 가장 유명한 학원의 강사가 됐고, 2년 후 지금의 학원을 차리게 됐죠. 어떻게 보면 무료영어학습이 아니었다면 저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어려운 시절, 조건 없이 받은 영어교육의 영향이 컸던 것일까. 그는 학원을 열고 얼마 되지 않아 매주 금요일 하루는 무료로 영어번역과 작문강좌를 개설, 시민에게 영어 배움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공부에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원에 다니기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무료로 수강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줄이는 교육 기회의 확대결과, K-one 영문법책 군산기네스북에 이어 가장 저렴한 사설학원으로도 군산기네스에 이름을 올렸다. 그의 끊임없는 선행은 감출 수가 없었다. 지난 2003년 군산시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으며, 이듬해에는 월드비전으로부터 감사장, 2004년과 2005년 2년 연속으로 한국평생교육평가원 우수봉사상 등을 받았다.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낳는다고 했던가. 그에게 무료교육을 받은 학생(멘티)들은 또 다른 학생을 돕기 위한 멘토가 되어 현재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군산시자원봉사센터에 등록된 봉사단체 '더군산타임즈'와 '예사모'를 통해 일명 '가난극복 무료영어멘토링'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사회취약계층 후원의 일환으로 연탄기부 활동도 이어왔다. 이어 저개발국의 취약아동을 국내에 초대하여 리더로 양성하고 본국에 돌려보내는 '가난극복 무료국제학교'도 계획, 기금 마련을 위한 바자회 운영 및 후원회를 결성해 더 원대한 봉사의 큰 꿈을 그려나가고 있다.
"저는 무료영어교육을 하며 항상 말합니다. 저 역시 조건 없이 배워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고. 여러분도 조건 없이 배웠으니, 꼭 조건 없이 베풀었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이제는 20년 넘게 이런 활동을 하다 보니 감사하게도 저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자신이 가진 재능이 지식이든, 물질이든, 육체적 활동이든 관계없습니다. 그저 나누는 기쁨이 얼마나 행복한지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인터뷰 내내 싱글싱글 웃으며 이야기하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얼마나 행복하세요?"돌아온 대답은 살벌했다. 행복해서 죽겠단다. 이런 그를 만나고 생각했다. 우리네 삶이 가진 게 많아 짊어질 삶의 무게가 늘어난 게 아닐까. 영어 배워서 남 주고, 돈 벌어서 남 주는 그의 삶의 무게가 깃털처럼 가벼워 보이는 건 기자뿐일까. 연말연시, 이 시대 '가장 행복한 사람'을 만나 감사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서해타임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