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 사람들은 자신들을 풀라우데와타Pulau Dewata(신들의 섬)라 부르며 선택받은 수호자들이라고 믿고 있다. 그 때문이지는 몰라도 섬의 고지대에는 수많은 사원이 산재해 있다. 그 사원들 가운데서도 특히 브라딴Bratan 호숫가에 있는 울룬다누Ulun Danu 사원이 가장 아름답다.
울룬다누 사원은 발리 중북부 부두굴 지역 1600m 고지 브라딴 호숫가에 있다. 남국의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정원 속 사원을 거닐다보면 마치 에덴동산을 거닐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고 만다. 이곳은 해변과는 달리 날씨 또한 시원하다 못해 한기를 느낄 정도로 서늘하다.
울루 다누 사원은 호수의 수호신 데위 울란 다누Dewi Ulan Danu의 제사를 모시는 '물의 사원이다. 인도네시아의 5만루피아 화폐에 등장할 정도로 발리 사람들로부터 가장 사랑을 받는 사원이다. 세상에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돈도 돈이지만 울룬 다누 사원은 화폐에 새길 만큼 신성하고 아름다운 사원이다.
울룬다누 사원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야자수가 시원하게 드리워진 논밭이 이국의 정서를 한껏 느끼게 한다. 계단식 논이 아스라이 펼쳐진 곳에는 발리 특유의 풀로 지붕을 이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풍경이다. 그 어떤 풍경보다도 소박하고 꾸밈이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발리풍의 담장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있고, 주변에는 싱그러운 숲이 맑은 산소를 무한정으로 공급해 주고 있다. 고도가 점점 높이 올라 갈수록 서늘한 공기가 전혀 적도에 위치한 땅이라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러 곳을 두고 '지상 최후의 낙원'이란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 발리는 해변보다도 오히려 산 쪽에 낙원이 있다. 발리 사람들이 왜 바다를 악으로 표현하고 산을 선으로 섬겼는지 그 이유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쿠타에서 2시간여를 지쳐 올라가니 아름다운 호수가 선경처럼 펼쳐진다. 브라딴Bratan호수다. 호수위에는 삿갓을 여러 개 쓴 것처럼 보이는 발리 특유의 힌두사원이 그림엽서처럼 나타난다. 호숫가에 내리니 정말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서늘하다.
"이렇게 추울 줄 알았으면 카디건이라도 걸치고 나오는 건데… ""아하, 서늘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나도 이 정도인지는 몰랐어요."가이드를 자청하고 나선 나에게 세 여인의 화살이 돌아온다. 브두굴은 실제로 반팔 소매를 입고가면 덜덜 떨 정도로 춥다. 더구나 오늘은 주변에 안개까지 서려 있어 더욱 서늘하다. 이 서늘한 날씨 때문에 발리사람들도 피서를 이곳으로 온다고 한다. 또한 신선한 기후 때문에 이 지역에는 딸기를 비롯해서 신선한 야채가 풍성하다.
사원의 입장료는 3만 루피아로 만만치 않다. 사원 쪽으로 들어가니 컬러풀한 깃발이 만장처럼 휘날리고 있다. 신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거대한 보리수나무가 세월을 말해주고 있다. 보리수나무 밑에는 선과 악을 나타내는 흰 천이 띠를 두르고 있다. 띠에 나타난 흰색은 선을 나타내고, 검은 색은 악을 나타낸다고 한다. 몇 천 년이나 되었을까? 과히 그 나이를 헤아리기가 힘들다.
신전 주변에는 정원수와 잔디가 깔끔하게 가꾸어져 있다. 가지가지 꽃들이 정원을 활짝 밝혀주고 있다. 칼로 내려치듯 두 개의 문으로 갈라 쳐진 입구를 지나 신들의 세계로 들어가니 별천지의 세계가 펼쳐진다. 크고 작은 발리 전통 사원 건물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다. 과연 신들의 정원을 거니는 느낌이 든다.
물위에 둥둥 떠 있는 듯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 사원의 탑은 다른 사원의 탑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아름답다. 11층으로 된 탑은 뻴린 메루Pelinggih Meru로 힌두신 시바를 위한 탑이라고 한다.
1663년에 세워진 울룬 다누 사원은 호수의 여신인 '데위 다누Dewi Danu'를 위한 제사를 올리는 곳이다. 부두굴 정상에 위치한 브라단 호수는 발리 전 지역으로 관계 수로를 공급하는 요지로 발리 사람들에게는 바뚜르 호수와 함께 매우 중요시하는 생명의 젓줄이다.
탑 뒤로 구름에 휘둘린 호수와 산이 더욱 몽환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과연 5만 루피아 화폐에 등장할 만큼 아름다운 사원이다. 사람들은 모두 화폐에 등장한 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에 바쁘다. 자신을 마치 화폐에 새기기라도 하듯이...
화폐에 문화유산 풍경을 넣는 것은 자기나라의 문화유산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이다. 2억 4000만의 인구를 가진 인도네시아는 거의 90%에 육박하는 대다수의 국민이 이슬람의 알라신을 믿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힌두 사원인 울룬 다누사원을 화폐에 새기고 있다. 이는 종교를 초월해서 오랫동안 보존되어온 자기나라의 문화유산을 아끼고 이를 세계만방에 알리는 인니인들의 여유있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화폐에는 우리고유의 문화유산 풍경을 새긴 화폐가 없다. 경주의 석굴암이나, 다보탑, 숭례문(불에 탔지만), 그도 아니라면 설악산이라도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을 화폐에 새기는 것도 좋지않겠는가. 이는 종교와 이념을 초월해서 수천년 동안 지켜오며 대물림을 해온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을 세계의 사람들에게 알리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브라딴 호수에서 수상스키도 즐길 수 있고 오리보트를 타고 유람을 할 수도 있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피서도 즐길 겸 오리보트를 타고 호수를 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보트를 타고 안개낀 산정과 탑을 바라보면 더욱 운치가 있으리라. 여행은 그 지방의 풍경과 문화를 느끼며 여유를 찾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원 못지않게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잘 가꾸어진 정원이다. 사이프러스가 도열하듯 하늘을 찌르고 있는 오솔길을 연인들이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거닐고 있다. 지구상에 잃어버린 실낙원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존 밀턴이 다룬 서사시 '실낙원'은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꾐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고 낙원에서 쫓겨나 이야기이다. 울룬 다누의 정원을 거닐다 보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가 이곳 울룬 다누의 정원에 나타나 사랑을 나누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정원에는 아름다운 남국의 꽃들이 여기저기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갖가지 조각품도 적재적소에 배치를 해놓고 있다. 신들의 정원을 거닐다가 우리는 정원 안에 있는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배가 고팠다.
뷔페식으로 차려 놓은 중국음식이 이런 곳에 있을 줄은 몰랐다. 우린 발리 전통 초가집 정자에 앉아 신들의 정원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었다. 우리는 아름다운 선경에 취해 점심을 먹고 나서 브라딴 호수 근처에 있는 G.T.W 폭포로 향했다.
☞ 여행 팁▷주소 : Bedugul Pura Ulun Danu Bratan
▷가는 방법 : 자동차로 쿠타에서 2시간, 우붓에서 1시간 30분
▷오픈시간 : 08:30~17:30
▷입장료 : 3만 루피아
울룬 다누 사원에 도착하기 직전에 있는 부두굴 '짠디꾸닝' 재래시장에도 들러볼 만하다. 시장에는 망고를 비롯해서 수십 가지의 열대과일과 야채가 풍성하게 진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