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할매네 마당가 빨랫줄 붉은 집게 두엇이 버선발 하나를 물고 있다.그래 겨울에는 일감도 없지하, 작은 밥줄에 매어달린저 잇몸 시린 입술들. -13쪽, '빨래집게' 모두시인 박호민이 펴낸 첫 시집 <들개와 솔개>(화남) 첫 장에 실린 시를 읽는다. "옆집 할매네 마당가 빨랫줄"에 매달린 "붉은 집게"는 거친 들판을 들개처럼 쏘다니면서도 솔개처럼 하늘을 나는 꿈을 꾸고 있는 박호민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에서 '마당가 빨랫줄'은 이 세상이며, '버선발 하나'는 시인에게 "작은 밥줄"을 이어주는 "일감"이다.
시인 박호민이 쓴 이 시와 이번에 펴내는 첫 시집에 실린 여러 시편들을 읽고 있자니 슬며시 눈물이 난다. 시인은 1980년대부터 1990년대 허리춤께까지 글쓴이와 가끔 술잔을 기울이며 엇박자만 치며 흘러가는 우리 정치와 경제, 사회를 때리고 꼬집기도 했던 살가운 동무이기도 했다. 그 동무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가 이제야 시집 한 권을 들고 낮도깨비처럼 불쑥 나타났으니... 그래. 그도 그동안 나처럼 이 세상이 세운 날 끝에 많이 베였나 보다.
박호민 첫 시집 <들개와 솔개>는 4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그가 대자연을 바라보며 느끼고 품은 심상과 고향이야기가 새록새록 숨을 쉬고 있다. 2부는 이 세상 곳곳에서 살아가는 동식물과 스스로를 쓰다듬는, 그야말로 몸부림이 폴폴 묻어나는 짧은 시편들이다. 3부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가 지닌 속내를 사람살이에 빗대고 있다. 4부는 시인이 바라본 여러 가지 모습들을 통해 시인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있다.
'북한강에서', '은행나무를 보며', '수탉', '갯벌에서', '똥개', '저녁강' '겨울새', '파주역에서', '작은 마을에서', '부랑자를 위하여' 등 79편이 그 시편들. 그렇다고 이 시편들이 제각각 떨어져 등을 돌리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4부에 실린 모든 시편들은 서로 딴 살림을 차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피붙이나 살붙이처럼 튼튼한 동아줄로 이어져 있다는 그 말이다.
시인 박호민은 '시인의 말'에서 "이제야 지난 내 궤적들을 한 권에 묶어본다. 돌아보면 삶은 슬픔의 바다였다"고 말문을 연다. 그는 "그 슬픔은 그리움으로, 때론 한 잔 술의 분노로, 혹은 아무도 없는 들판 그 허수아비의 외로움으로 새겨졌던 모양"이라며 "들개처럼 살아왔다. 그러나 내 눈은 언제나 솔개를 닮고 싶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시인과 민초들이 기어이 붙잡으려는 희망
다시 벌판으로 가야겠다
잿빛 새들의 쉰 울음만 붙박인 하늘 끝 정정한 그 숨결 끊어졌다 하여도 남은 발바닥으로 처음처럼 울부짖으며 가야겠다 저 인간의 거리엔 얼마나 많은 꽃들이 피었다 졌던가목을 빼도 이제 새벽별은 뜨지 않으리라 다만 오랜 갈증만 핏줄 속에 살아서 얼어붙은 한 점 불씨를 되살리겠다 그러므로 결코 나를 길들이려 하지 말라 불 맞은 짐승처럼 절룩일지라도 원시原始의 풀잎들이 몸을 푸는 곳으로 쉼 없는 바람의 노래 들으러 가야겠다 빛바랜 풀숲더미를 휘적이면서 거칠고 무딘 발자국을 홀로 찍으면서 -31쪽, '들개.1' 모두시인이 이 세상 거친 들판을 들개처럼 서성이면서 솔개를 닮고 싶은 까닭은 무엇일까. 솔개가 "두려움 없이 길을 열고 / 어둔 벌판을 두 동강이치듯 날아가"기 때문이다. "쥐새끼 몇 마리쯤은 단숨에 쓸어버릴 발톱으로 / 지금 내 심장을 할퀴고 가는" 그 새가 솔개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 시집 곳곳에서 들개와 솔개를 화두로 삼아 이 세상살이를 빗대고 있다. 여기서 들개는 시인이기도 하고, 이 거친 세상살이에 부대끼며 살아가는 민초이기도 하다.
솔개는, 먹고 살기 위해 들개처럼 침을 흘리며 미친 듯이 쏘다니는 시인과 아무리 몸부림쳐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민초들이 기어이 붙잡으려는 희망이다. 그 솔개는 오늘도 시인 마음에 둥지를 틀고 앉아 "누구도 들을 수 없는 울음으로 / 누구도 가 닿을 수 없는 슬픈 날개짓"(나의 솔개)을 퍼덕이고 있다.
너 이놈, 아직도 멀었다 느닷없는 호통소리에 놀라 하늘을 보니 거기, 여전히 솔개 한 마리 날고 있었네 한낮의 숨죽인 정적을 쪼개나가는 눈빛으로 저 천길 허공에서 오직 일직선으로 떨어지던 한 방울 핏소리의 기억. 두려움 없이 길을 열고 어둔 벌판을 두 동강이치듯 날아가던 솔개여 아아, 지금도 내 가슴에 살아있는 떨림이여" -36쪽, '나의 솔개' 몇 토막.작은 촛불 하나 들고 길을 찾아 헤매는 시인콩나물 가게에 가보았나,검은 천의 그늘 아래 서로 키를 재고 있더군밑에 있는 놈들의 머리 위에하얗게 뿌리를 내리는 것들어쩌면 나도 그런지 몰라아, 우리는 고작 콩나물이었을까 -41쪽, '콩나물' 모두시인 박호민은 이 세상 곳곳에서 살아가는 동식물이 지닌 속내를 이 세상 사람들 고된 삶에 빗댄다. 이 시에서 말하는 콩나물, "검은 천의 그늘 아래 서로 키를 재고 있"는 콩나물이나, "밑에 있는 놈들의 머리 위에 / 하얗게 뿌리내리는 것"도 '들개'를 상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들개'는 시인과 민초들이기도 하지만 식의주 앞에서는 한 치 양보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바라보면 힘센 권력자를 상징하고 있기도 하다. 시인이 "아, 우리는 고작 콩나물이었을까"라고 스스로 탓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인이 동식물을 오래 깊이 바라보며 스스로 주저앉고, 스스로 일어서는 들개와 솔개 같은 시편들은 이 시집 곳곳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놈이 홰를 칠 때 / 왜 애써 퍼덕거리는 줄 아는가 // 한번만, 한번만 / 멀리 날아보고 싶은 것이다"(수탉)라거나 "쓴 소금국 위로 / 아프게 흩어지던 꽃잎"(개망초), "다 가고 / 괴로움만 남겨 두거라"(갯벌에서),
"어허, 몇 백 년을 밥 얻어먹었으면 / 이젠 나가서 땔 나무라도 해와야지 / 때 묻지 않은 신발이 자랑이더냐"(흰 고무신), "꽝꽝― 꽝꽝― / 추운 땅, 시린 발들 서로가 다지며"(꽝꽝나무), "바싹 마른 햇살에 / 팔 벌린 느티나무는 여전히 말이 없고 / 못난 것들의 하루는 멀기만 하다"(언덕길) 등이 그러하다.
하얗게 질린 눈썹달 마을은 집집마다 문을 걸었다 달아나라, 달아나 맨살로 붙박인 외진 밭머리 깜깜한 바람이 일면 드디어, 내가 싸늘한 혼불로 뜬다 -78쪽, '허수아비' 몇 토막 시인 박호민이 바라보는 봄과 여름, 가을, 겨울 등 사계절은 춥고 어둡다. 그 사계절은 캄캄한 곳에서 작은 촛불 하나 들고 길을 찾아 헤매는 시인을 쏘옥 빼닮았다. 그래. 시인이 초겨울에 오래 바라본 허수아비도 어쩌면 밤마다 먹이를 찾아 컹컹거리는 그 들개가 남긴 발자국인지도 모른다. 들개가 솔개를 닮고 싶어 하듯이, 허수아비가 "싸늘한 혼불"로 뜨는 것, 그것은 곧 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허수아비가 솔개로 거듭나는 것과 다름없다.
봄이 다가와도 그 들개가 밤마다 울부짖는 울음소리 같은 짙은 어둠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봄날, 비린내 뜨는 들길 위에 / 비는 내려 / 새떼들 서둘러 길을 떠난 뒤 / 골안개의 울음소리만 들리었느니"(빗소리)나 "언제나 변두리로부터 달려오는 봄 / 이 봄은 누구의 계절로 다시 오는 걸까"(삼송리의 봄), "이 고운 봄날에 / 텅 빈 하늘처럼 말라버린 / 내 가슴 밑바닥에도 / 다시금 맑은 샘물이 솟아날 수 있을까"(봄노래) 등도 마찬가지다.
여름이 다가와도 그 지독한 어둠은 끝내 꼬리를 내리지 않는다. "땅속의 세월이 어둠은 아니다. / 제대로 울지도 못하는 것, 그것이 / 너의 어둠"(매미)이기 때문이다. 가을이 다가오면 그 지리한 어둠은 쓸쓸함과 서러움으로 다가선다. "차라리 세월 없는 마을로 가고 싶었다. / 살아라, 살아라 밤새 서럽던 방울새는 평안한가"(가을편지), "사방엔 말라가는 풀꽃들의 향기만 가득하고"(이 가을의 노래) 등이 그 시편들이다.
들개를 키운 그 어둠을 닮은 추운 겨울은 결국 외상술 먹고 울지 않으면 도저히 어쩔 수 없는 화두로 자리 잡는다. "시린, 아들놈 손을 붙들고 / 호호 불어주다가 / 붕어빵 하나 사서 / 완행버스에 태워 보낸 뒤 / 버스가 사라져가는 / 산모롱이 모퉁길 /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 기어이 들린 동네 선술집 / 외상술 먹고 나는 / 우, 우노라."(겨울날)
솔개 닮기 위해 스스로를 마음이란 거울에 비추다끊어진 분필토막 뒹군다 칠판 위엔 서툰 솜씨로 흐려진 선생님 안녕 같은 글씨들 ......바람결에 건너간 시간이 잠시만 돌아와 녹슨 종을 울릴 때 백엽상, 혹은 풍향계 위에서 새들이 떠나간다 이 저녁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고 있을 공간 사라져가는 것들의 그 쓸쓸한, 허리를 본다. -110쪽, '폐교' 몇 토막그래. 사라지는 것들은 모두 쓸쓸하다. 손 흔들고 등을 보이며 떠나는 사람,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쓸쓸하던가. 시인 박호민은 하늘 높이 거침없이 날고 있는 솔개를 닮은 희망을 거머쥐기 위해 여기저기를 들개처럼 떠돌며 스스로를 마음이란 거울에 비춘다. 시인 스스로가 비춰지고 있는 그 마음이란 거울 속에는 시인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시인 주변에서 끼니 한 끼를 위해 낮이나 밤이나 배고픈 들개처럼 떠돌고 있는 이 세상 모든 삼라만상이 함께 서로 등을 부드럽게 기대고 있다.
"가난한 친구가 받아 주는 낮술은 / 아끼는 맛이 좋아라 / 비 오는 바다 위로 청둥오리떼 내리니 / 세상도 조금은 느긋해지려나"(해변길), "내 가는 길에는 / 반딧불 하나라도 떠올랐던가 / 돌아보면 언제나 제자리걸음인 듯, 그러나 /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르고 있었나 보다"(새벽별-누이에게), "그리하여, 오직 슬픈 마음만이 / 또 다른 슬픔을 위로한다"(위로) 등이 그 시편들이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오민석은 "박호민은 울보시인이다. 바람 불어도 울고 비 내려도 운다. 그의 울음에 감염된 나도 그의 시를 읽으면서 뻑 하면 질질 짠다"고 말문을 연다. 그는 "세상은 슬프고 적멸寂滅의 길은 아득히 멀다. 어린 아들을 보내고 돌아와 시골 구멍가게에서 외상술 먹는 시인 때문에 세상은 비애로 가득하다"라며 "오늘밤도 선창가에 가을비 내릴 게다. 술 취한 마도로스처럼 박호민은 담배를 길게 내뿜으며 누이의 환생 때문에 짠해질 게다"고 평했다.
그래. 시인 박호민 동무여. 이제는 질질 짜지 말거라. 이 세상에는 눈물만 있는 게 아니다. 외상술에 까빡 취해 저만치 흐릿한 세상을 바라보면 그 흐릿함 속에도 밝음이 보이지 않던가. 이 세상에 어둠만 있고 낮이 없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대는 어둠이라는 그 깊은 구렁텅이에서 들개가 되어 이 세상이란 들판으로 겁나게 뛰쳐나왔다. 그래. 이제는 곧 힘차게 날개를 저으며 새로운 희망을 물어 나르는 저 솔개로 거듭날 일만 남았지 않은가.
시인 박호민은 1958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광주상고를 나와 한때 은행원으로 일하다가 군복무를 마친 뒤 늦깎이로 단국대 경제학과를 마쳤다. 1989년<민족문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시인은 잡지, 출판, 행상, 목수, 프리랜서 등을 거쳐 2006년 3월부터 고향 고흥으로 돌아가 팔영산 자연휴양림에서 일하며 틈틈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시인 박호민 첫 시집 <들개와 솔개>에 글쓴이가 쓴 서평을 손질한 글입니다. [문학in]에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