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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정말 약인 모양입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패배 직후, 5년 후까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으로 멘붕에 빠졌는데, 지금은 많이 나아졌습니다. '반공주의자'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가 '빛고을'(저는 광주보다 빛고을로 부르기를 더 좋아합니다)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정도로 우리 사회는 생각보다 많이 진보했고, 여기저기서 '힐링'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번 선거 패배가 언론의 편파 보도에 있다면 '국민방송', '시민방송'을 만들자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문재인 후보'는 '박근혜 후보'에게 졌지만, 시민은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패배했다면 문 걸어잠그고 아무도 만나지 않거나, 분노를 증오로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반공주의자가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여기저기서 힐링과 프리허그를 하고, 시민방송을 만들자는 것만 아니라 저는 문재인 후보가 특정 지역에서 얻은 득표에서도 작은 희망을 보았습니다.

저는 경남 사천이 고향입니다. 고향 선산에는 5대조 할아버지까지 있습니다. 지금도 경남 진주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10년 후쯤은 고향으로 완전히 돌아갈 것입니다. 이른바 '골수갱상도' 사람입니다.

선거 기간 중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 측은 PK(부산울산경남)에서 45% 이상 득표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기준은 지난 2010년 6월 지방선거 때 민주당 김정길 부산시장 후보는 44.6%, 무소속 김두관 경남지사 후보는 53.5%를 얻어 김정길 후보는 패배했고, 김두관 후보는 당선되었습니다. 그러므로 45%는 전혀 불가능한 득표율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밑바닥 민심은 40%를 넘는 것은 어려워보였습니다. 제 주위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면 문재인 지지자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특히 50대 이상은 박근혜 몰표에 가까웠습니다. 그리하여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문 후보가 35% 득표를 하면 많이 얻는다고 예상했습니다. 민주당 바람과는 약 10% 차이가 났지만 현실은 현실이었기에 35%를 예상했던 것입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제18대 대통령선거일을 하루 앞둔 지난 18일 저녁 부산역 광장에서 마지막 유세를 펼치며 환호하는 지지자들을 향해 필승을 다짐하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제18대 대통령선거일을 하루 앞둔 지난 18일 저녁 부산역 광장에서 마지막 유세를 펼치며 환호하는 지지자들을 향해 필승을 다짐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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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문재인 후보는 부산에서 882,511표(39.87%),  경남에서 724,896표(36.33%), 울산에서 275,451표(39.78%)를 얻었습니다. 사실상 40%를 득표한 것입니다. 이같은 득표는 노무현 후보가 당선된 지난 2002년 때보다 훨씬 많은 득표율입니다. 당시 노무현 후보는 부산 587,946표(29.85%), 울산 178,584표(35.27%), 경남 434,642표(27.08%)를 각각 얻었습니다. 문 후보는 노무현 후보보다 부산에서는 10.02%, 울산에서는 14.51%, 경남에서는 9.25%를 더 많이 얻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같은 PK민심은 TK와는 조금 다릅니다. 문 후보는 대구에서 309,034표(19.53%), 경북에서 316,659표(18.61)를 각각 얻었습니다. 그런데 2002년 노무현 후보는 대구 240,745표(18.67%), 경북 311,358표(21.65%)를 각각 얻었습니다. 자세히 보면 문 후보는 2002년 대구에서 노무현 후보보다 0.86%를 더 득표했지만 경북에서는 오히려 노 후보보다 3.04%나 적게 얻었습니다.

PK 지역주의는 퇴색하고 있지만 TK지역주의는 더 견고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박근혜 당선인이 대구가 지역구였고, 문재인 전 후보는 부산이 지역구이고, 안철수 전 후보 부산 출신이라는 점이 영향이 컸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PK가 예전처럼 '묻지마 투표'가 균율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사실 PK는 TK처럼 보수 아성은 아니었습니다. PK가 '묻지마 투표' 경향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87년 13대 대선에서 김영삼 출마가 시작입니다. 특히 1990년 노태우-김영삼-김종필 3당 야합과 1992년 14대 대선 당시 '초원복집' 사건이 묻지마 투표 결정판이 됩니다. 이후 PK는 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었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평생 지역주의와 싸운 배경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 40%는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40%가 별거냐고 하겠지만 문재인 후보가 전국에서 얻은 득표율이 48%입니다. PK는 전국 득표율보다 8%가 모자랄 뿐입니다. 지난 2002년 노무현 후보는 전국 득표율이 48.9%였고, PK평균 득표율이 30.7%였으니 18.2%가 차이가 난 것에 비하면 많이 좁혀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작은 희망입니다. 이미 PK는 지역주의가 균열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번 대선은 지역주의보다는 5060과 2030세대의 '세대대결' 성격이 강했지만 대한민국 정치를 30년 이상이나 지배했던 지역주의가 퇴보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희망입니다.

5060과 2030 세대간 갈등이 지역주의보다 해결 방법이 더 쉬운 이유는 '가족'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입니다. 5060과 2030은 딱 부모와 자녀 사이입니다. 이번 대선에서 부모는 박근혜를 자녀들은 문재인을 서로 찍으라고 다툼이 벌어진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지역주의처럼 증오와 미움으로 비화할 가능성은 적습니다. 앞으로 5년 동안 대화하고, 논쟁하면서 해결 방안을 찾아가면 됩니다.

PK는 변하고 있습니다. 1979년 박정희 독재정권이 무너졌던 부마항쟁이 일어난 곳이 PK입니다. 그때 그 정신까지 가기에는 아직 멀었지만 첫발은 내딛었습니다. 그러므로 좌절과 낙담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절망이 아닌 희망을 가질 때입니다.


태그:#문재인, #PK, #지역주의,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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