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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가 울창하지 않은 돌산도 시선을 끌기에 충분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나무가 울창하지 않은 돌산도 시선을 끌기에 충분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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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스 캐니언 국립공원(Bryce Canyon National Park)을 떠나 다음 목적지 시온(자이언) 계곡(Zion Canyon)을 향해 떠난다. 또 다시 황량한 들판에 끝없는 도로가 전개된다. 주위 사람이 좋으니 가보라는 말만 의지해 가는 곳이다. 어떠한 곳일까?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시온 국립공원(Zion National Park)에 가까워지면서 깊은 계곡이 나오기 시작한다. 계속 운전해 내려가니 국립공원 입장료를 받는 곳이 나온다. 국립공원 입구에는 캠프장에 자리가 만원이라는 사인이 크게 붙어 있다. 표를 파는 안내원에게 텐트 칠 장소가 한 군데도 없느냐고 물으니 캠프장에 가서 알아보란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조금은 무식한 생각을 하며 국립공원에 들어선다.

국립공원 입구를 지나 조금 내려가니 커다란 바위들이 우리를 압도한다. 우리가 흔히 큰 바위를 집채만큼 크다고 표현하지만, 이곳의 바위는 커다란 빌딩만 하다. 이러한 바위가 도로 양편에 줄지어 있다.

 도로 주변에 끝없이 펼져지는 돌산
 도로 주변에 끝없이 펼져지는 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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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로 가면서 보이는 풍경이 절경이다. 오늘 떠나온 브라이스 캐니언 국립공원을 아기자기하게 만든 여성의 조각품이라고 표현한다면 시온 국립공원은 큼지막한 남성의 손으로 많은 것을 생략하고 만든 걸쭉한 작품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들어가니 자동차가 굴에 들어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1차선 도로이기 때문에 안내하는 차를 따라다니게 되어 있다. 깎아지른 벼랑의 바위를 뚫어 만든 굴이다. 1930년에 완공된 이 굴은 1.8킬로미터나 되며 이러한 종류의 굴로는 미국에서 가장 길다고 한다. 

굴을 지나니 산길을 꼬불꼬불 돌고 도는 도로가 나온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돌산을 깎아 만든 길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지도에는 입구를 지나면 곧 캠프장이 나오게 되어 있으나 한참을 가도 캠프장이 나오지 않는다. 하긴, 이렇게 수직으로 내려가는 길을 지도에 어떻게 표시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캠프장에 도착했다. 자리가 있느냐고 물으니 개인 캠프장은 다 찼으나 그룹 캠프장에 두 자리가 있다고 한다. 다섯 개의 텐트를 칠 수 있는 그룹 캠프장이 서너 개 있다. 개인 캠프장과 다른 점은 각자 알아서 적당한 자리에 텐트를 치는 것뿐이다. 전혀 불편한 점이 없다. 호주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텐트장의 모습이다. 바로 앞에는 단체로 온 학생들로 붐빈다. 

이곳에도 셔틀버스가 계곡 사이를 운행하며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 저녁을 일찍 끝내고 셔틀버스를 타고 차창 밖으로 경치를 둘러본다. 내일 돌아다닐 곳을 알아보려는 사전 답사인 셈이다. 버스를 운전하는 나이 많은 여자는 친절한 목소리로 국립공원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준다. 관광객에게 도움은 되겠지만 같은 이야기를 친절하게 계속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깊은 산 속에서는 해가 일찍 진다고 했던가? 지는 해에 반사되는 높은 산이 아름답다. 계곡을 파고드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일찍 잠자리에 든다.

 텐트촌에서 바라본 석양을 받아 반짝이는 돌산
 텐트촌에서 바라본 석양을 받아 반짝이는 돌산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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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눈을 뜬 우리는 일찌감치 셔틀버스를 타러 나선다. 버스는 계곡 사이를 다닌다. 일곱 개의 정거장이 있다. 가장 먼 마지막 정거장부터 둘러보기로 하고 마지막 정거장에서 내린다. 산책길이 있다. 운전사의 안내 말에 의하면 휠체어도 갈 수 있는 산책길이란다. 이렇게 깊은 계곡에 휠체어를 타고 올 생각을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나 있을까? 자세히 보니 국립공원 주차장에는 예외 없이 장애인을 위한 주차장이 가장 좋은 곳에 마련되어 있다.

산책길을 걸어본다. 포장이 되어 있는 산책길이다. 지팡이 하나씩 들고 그룹으로 산책하는 사람이 종종  보인다. 이렇게 잘 포장된, 휠체어로도 다닐 수 있는 길을 왜 지팡이를 가지고 갈까 하는 의문은 금방 풀린다. 포장된 산책로가 끝나고 계곡 사이로 물이 흐른다. 경고도 쓰여 있다. 비가 오면 물이 불어 위험할 수도 있는데 "등산객 스스로 위험을 감수(your own risk taking)"하란다.

단체로 온 학생들은 포장이 끝난 곳에서 방수 신발로 갈아 신으며 계곡을 산책할 준비를 한다. 옆에는 계곡을 다녀온 사람이 남기고 간 지팡이가 수두룩하다. 지팡이와 방수 신발이 없으면 가지 못하는 산책길이다.

 깊은 계곡에 흐르는 물을 따라 산책하는 관광객도 많다
 깊은 계곡에 흐르는 물을 따라 산책하는 관광객도 많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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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포기하고 다시 돌아와 버스를 타고 다음 정거장에 내린다. 보이는 산 모습이 색다르다. 카메라에 산을 담고 다음 정거장에 간다. 등산로도 많고 사진에 담고 싶은 풍경으로 넘쳐나는 돌산이다. 멀리 까마득하게 보이는 산 위로 사람이 걸어간다. 암벽을 타고 올라간 사람일 것이다. 높은 돌산 위에 손가락만 하게 보이는 인간, 저 높고 웅장한 산을 올라가 자연을 정복했다고 할 것이다. 정말 자연을 정복한 것일까? 자연의 자그마한 부분일 뿐이다.

이곳에는 예전에 모르몬교도들이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도 Zion(시온 :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있는 언덕. 솔로몬이 여호와의 신전을 건립한 이래 '성스러운 산'이라 불림)이라 지었다고 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원시의 돌덩어리 산이다. 호주에서 보았던 에이어즈 락(Ayers Rock)이라는 유명한 돌덩이와는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벽돌로 쌓아 놓은 듯한 돌산
 벽돌로 쌓아 놓은 듯한 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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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도 다양한 산책로가 있다. 짧은 산책로부터 하루 이상을 걸어야 하는 산책로까지 다양하다. 산책로를 따라 거닐며 주위를 둘러본다.

아내는 이름 모를 꽃들을 보며 처음 보는 꽃이라고 사진을 찍으란다. 눈물 바위라 이름 붙여진 보슬비 내리듯 물이 떨어지는 폭포 옆에 핀 들꽃, 산책길 옆에 무심히 혼자 안간힘을 쓰며 자신을 들어내고 있는 꽃들, 종류도 다양하다. 어느 석학의 말처럼 이름 없는 꽃이기에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유명한 이름이 붙어 있다면 어느 비닐하우스에서 대량으로 키우고 있을 것이다.

시온 국립공원을 하루에 돌아본다는 것은 무리다. 어느 희극 영화에서 본 것처럼 사진 한 장 찍고 감탄사 한 번 내뱉고 떠날 뿐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이리저리 쫓겨 다니는 나의 삶과 크게 다름이 없다. 

 관광객들이 무료로 탈 수 있는 셔틀버스
 관광객들이 무료로 탈 수 있는 셔틀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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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시온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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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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