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선결과를 진단한 <오마이뉴스> 기사
'문 캠프, 신념은 투철했으나 전략이 없었다'에서 문재인 캠프가 이번 대선에 큰 표 차로 승리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로 중도층 대중 정서에 조응하지 못한 '진보 담론'으로 선거를 치른 '전략의 부재'를 지적했다.
이어
'참여정부실패론, 과연 맞는 이야기인가?'에서는 구좌파 이념이 올 총선과 대선의 전략이 된 이유는 진보 진영이 '참여정부실패론'이라는 '조중동 프레임'을 받아들인 것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참여정부실패론'은 객관적인 근거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진보의 분열에 기생하는 조중동 프레임이 자라 생긴 괴물이었다.
노무현의 진보적 자유주의(신좌파)가 21세기 시대의 대세임에도 소위 '친노'가 구좌파에 머리 숙이고 연대한 결과, 지려야 질 수 없는 선거를 박빙으로 만들었다고 본다. 이게 한국 진보 진영의 운명이고 역량이니 남 탓하지 말고 공동의 성찰을 통해 5년 후를 철저히 대비하길 기대한다.
5년 후 진보 진영이 집권하기 위해 향후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사실은 진보 논객 은퇴 전 이 말을 전하기 위해 서둘러 대선 분석을 했다. 아직 패배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분들에게 패배의 원인을 진단함으로써 마음의 상처를 줬다면 용서를 구한다. 상당히 여유 있게 이길 수도 있는 선거였는데 전략 실패로 박빙의 선거로 만든 것에 대한 분석이라 이해를 부탁한다.
진보 진영, 보수 진영의 10년 절치부심 배워야
진보 진영은 보수 진영이 권력을 잃은 지난 10년간 어떻게 절치부심했는지 배워야 한다. 그들은 죽기 살기로 싸웠고, 지지층을 결집시켰고, 그러기 위해 학습했다. 보수층은 부도덕하고 부패하고 무능하지만 목표 지향적이었기에 정권 탈환에 성공했다고 본다.
한 문재인 캠프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선거 기간 내 누구도 이명박 정부의 실상을 폭로하거나 공격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지난 대선에서 그런 일을 했던 김현미 의원은 유죄 판결을 받았고 정봉주 의원은 감옥에 갔다. 그런데, 당이 이들을 지켜주질 못 했으니 누가 다시 그 일을 하겠는가. 네거티브를 하라는 게 아니라 포지티브로 가되 집권당의 실정을 국민에게 알리는 일은 당연히 야당이 해야 할 책무 중 하나다.
자신을 던져 싸우거나, 조중동에 미운 털이 박힌 사람들은 진보 진영이 먼저 팽하는 보상 구조였으니 민주당 의원들이 이미지 망가지는 일을 회피했던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본다. 민주당을 향해 쓴소리를 하면 조중동이 의인처럼 띄워 준 덕분에 민주당에서는 쇄신 대상이 쇄신파가 되기도 한다.
만일 '친노'가 캠프에 있었다면 어떤 손해를 보더라도 힘든 일을 기꺼이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 후보는 출마선언 전부터 참여정부 장·차관급 이상을 지낸 사람은 경선 캠프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 범진보 진영의 캠프를 구성하기 위한 용단이라 생각해 다들 그 뜻을 따랐다. 그나마 몇 명 남아 있던 비서관급 인사들마저도 민주당 내 반발로 결국 후보 곁을 떠나야 했다.
'친노'는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어려울 때 의리를 지킨 사람들이다. 2002년 선거에서 이겨본 경험도 있고, 5년 동안 국정을 운영해봤으며, 함께 일해본 팀워크도 갖췄다. 나는 '친노'가 역차별을 받아야 하는 합리적 이유를 모르겠다. 그러나 선거에 패하자 다시 '친노 책임론'이 나온다. '친노'가 계속해서 동네북이 된다면 앞으로 진보 진영에서 누가 자신을 던져 신념과 원칙을 지키겠는가.
폭압에 길들여지면 더 큰 억압이 기다린다
새누리당은 재집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적반하장은 기본이었다. 반면 진보 진영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걸핏하면 실패했다고 인정하며 사과한다. 부당한 공격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 중도층은 '진보 진영이 뭔가 잘못했나 보다'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맞고 자란 사람은 대들 줄을 모른다"고 했듯이 진보 진영은 구박받고 눈치 보며 자란 사람처럼 부당한 탄압과 대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탄압받는 게 일상화된 사람들 같다는 이야기다.
지금 진보 진영이 5년 후 집권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핵심 지지층의 열정을 꺼트리지 않는 것이다. 여러 번 말하지만 홍보의 기본은 핵심 지지층을 먼저 잡고 그 후 외연을 확대해 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늘 중도층의 눈치를 보는 정치를 함으로써 핵심 지지층의 열정을 꺼트렸다. 그나마 이번에 문재인이 1470만 표의 득표를 한 이유는 핵심 지지층의 열정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현재 다음 아고라에는 개표정의를 위해 20여만 명의 국민이 서명을 했다. 방송 3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예측조사는 문재인 후보의 승리를 예측한 바 있다.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예측한 방송 3사의 출구조사도 오후 3시까지는 문재인 후보가 앞서는 것으로 나왔다. 그 외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수많은 사례들이 등장하고 있다.
개표정의 없이 '신뢰의 정치'는 없다나는 인터넷에 떠도는 일부의 개표 의혹 제기는 과장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수개표를 청원할 수 있는 성원이 이미 됐으니 선거의 정당성 확보와 신뢰의 정치를 위해 의혹에 대한 적절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몇 표가 부정인지, 그래서 승패를 바꿀 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부정의 뿌리를 발본색원해야 유권자들이 믿고 투표할 의욕을 갖게 된다. 그래야 박근혜 당선인도 5년 내 신뢰의 위기를 겪지 않고 국민 통합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대중 정부 당시에는 철제 투표함이 사용됐다. 투·개표 부정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회창 후보 지지자들은 수개표를 요구한 바 있다. 불필요한 과정도 승복을 위해 필요한 경우가 있다면 바로 이런 경우다. 하물며 이명박 정부에서는 각종 투·개표 부정 의혹이 제기된 바 있지만 민주당은 단 한 번도 진실을 제대로 규명하지 않았다. 보수 진영이라면 이런 일을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며 넘어갔을까.
민주당 의원들이 재개표했다가 망신을 당해 정계 은퇴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에게 표를 준 지지자들을 위해 한 번쯤 자신을 불태울 용기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요즘 SNS의 발달로 <조선일보>에 찍힌 정청래 의원도 부활했다. 과거와는 보상 구조가 달라진 데 그 이유가 있다. 유권자들은 '개표 정의를 위해 헌신하지 않는 의원은 검찰에 뒷덜미를 잡혔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한다. 민주당은 이 의심을 유념해야 한다. 정치 자금으로부터 자유로운 비례대표 의원들의 활약을 기대한다.
합리적 보수를 자처하는 경찰대 표창원 교수는 국정원 직원 댓글공작 의혹을 둘러싼 '불의'에 맞서기 위해 사직서를 던졌다. 민주당 의원이 합리적인 교수보다 정의에 대한 열정이 없다면 지지자들은 앞으로 누구에게 표를 줄 수 있을까. 향후 선거에서 투표율이 추락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국민대통합은 권력을 가진 자가 패배한 쪽을 포용할 때 가능하지 민주당이 양보한다고 이뤄지지 않는다. 보수는 원래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사람들이다. 진정한 대통합은 양측이 세력이 비슷해서 서로 싸우다간 망하겠다는 '공포의 균형'이 이뤄질 때 가능하다.
폭압 당하는 데 길들여지면 더 큰 억압이 기다릴 뿐이다. 쥐도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뒤돌아 물곤 하는데, 민주당은 아직도 절박함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이 새누리당의 파트너로 대접받고 싶다면 싸우고, 싸우고, 또 싸워야 한다. 선거가 끝났다고 새누리당의 SNS 불법선거운동·국정원 직원 댓글공작 의혹 등에 대한 진실 규명을 멈춰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blog.daum.net/leadershipstory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