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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시작되는 1월 1일 아침. 새로 산 수첩을 꺼냈습니다. 거의 20년째 윗주머니에 들어가는 작은 수첩을 사용하는데, 거기에다 미리 공책에 적어놓은 가수 이선희의 <인연> 가사를 옮겼습니다. 제법 내용이 길어서 비록 포켓용 수첩이지만 한 면을 가득 채웠습니다.

노랫말을 적으면서 문득 1989년 6월 여름이 생각났습니다. 그 당시 31세였던 나는 25세인 젊은 처녀와 중매로 만나서 열심히 데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일요일, 나는 그녀와 인천 영종도로 놀러 갔습니다. 그때는 월미도에서 배를 타야만 그곳에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녀와 둘이 그곳에 가서 둑을 거닐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잠깐 앉았습니다.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다 나는 윗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펼쳤습니다. 거기에는 가수 이미자의 노래 <아씨>의 노랫말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것을 보고 깜짝 놀라며 나를 쳐다봤습니다. 그리고 내게 말했습니다.

"신기하네요. 저는 처음 봤어요. 수첩에 노래가사를 적어서 갖고 다니는 사람은요."

그로부터 20년이 넘게 흐르는 동안 생각은 잘 나지 않지만 수첩에 노랫말을 적어 다닌 게 한두 번은 더 있을 겁니다. <인연>을 적어나가면서 옛 추억이 떠올라 저절로 미소를 지었습니다.

어쩌다 마주친 노래, 장난 아니네

 <나는 가수다2>에서 이선희의 <인연>을 열창 중인 가수 소향
<나는 가수다2>에서 이선희의 <인연>을 열창 중인 가수 소향 ⓒ MBC

지난 12월 22일 밤의 일입니다. 그날 내가 회원으로 있는 어느 문학모임 출판기념회에 갔다가 자정 넘어 집에 들어왔습니다. 술도 한 잔 하고 노래방도 가서 노래 몇 곡 불러서 그랬는지 잠이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텔레비전을 켰는데, 사람들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서야 그 프로의 제목을 알았는데, 바로 그 유명한 <나는 가수다2>였습니다.

유명하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그것에 대해 거의 몰랐고 본 적도 물론 없었습니다. 그날은 이은미·소향·더원·국카스텐 등 4명이 나와서 노래 경연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4명  중 문재인의 찬조연설을 해서 알게 된 이은미 빼고는 다 모르는 가수들이었습니다. 나는 진행자의 설명을 듣고 그 4명 가운데 그 시합에서 1명이 탈락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잠이 오지 않아 처음 본 것이었지만 나는 그 프로그램에 쏙 빠져들었습니다. 다른 가수들도 다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를 불렀지만, 그날 거기에 나온 4명은 정말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열심히 불렀습니다. 그날 소향은 이선희의 <인연>을 택해서 불렀습니다. 워낙 제가 대중가요에 관해 문외한이기 때문에 소향이 누구인지 몰랐고, 이선희의 <인연>도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노래가 시작됐을 때, 노랫말은 거의 모르지만 언젠가 들었던 곡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소향은 <인연>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녀 뒤로 자리한 악기가 다른 것과 많이 달랐습니다. 보통 대중가요를 부를 때에 서양 악기를 연주하는데 이번에는 놀랍게도 해금과 가야금 같은 우리의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것이었습니다.

참 신선했습니다. 그리고 소리가 퍽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나의 혼을 쏙 빼버린 것은 악기, 그 가운데 가야금을 연주하는 사람들의 신비스러운 몸놀림이었습니다. 소향이 고음과 저음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거기에다가 사랑의 미묘한 감정까지 충분히 넣어가면서 열창을 하는 모습. 가야금을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사랑하는 연인을 따뜻한 마음으로 어루만지는 것처럼 연주하는 모습은 인간의 세계가 아니라 마치 천상의 세계를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물론 내가 악기 연주하는 것을 많이 보지 못해서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대부분의 악기 다루는 사람들이 그렇게 연주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날 그들의 모습은 나의 머릿속에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가수와 악기 연주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매료됐는지 저는 화면에 나타나는 가사를 조용하게 따라 불렀습니다. 가수도 열창하고 악기도 잘 연주해서 그랬던가요. 노래가사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연인에게 가장 아름다운 날이 된다는 생각이, 그리고 서로를 고달픈 삶의 선물로 여긴다는 마음이 그렇게 아름답고 거룩하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이선희의 <인연>은 나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노래에 강하게 '꽂힌' 나는 그 이후 자주 컴퓨터에서 그날의 모습을 찾아서 동영상을 봤습니다.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서 낮은 소리로 노랫말을 따라 불렀습니다. 어떤 날은 거의 한 시간 동안 그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는데, 소향의 것만 아니라 처음 노래를 부른 이선희의 것도 여러 개 찾아서 듣고 또 들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 노래가사는 제 것이 되고 있었습니다.

수십 번 종이를 접었다 폈다... 노랫말 외워봅니다

 소향의 <인연>에서 주목할만한 것은 전통악기의 아름다운 선율이었다.
소향의 <인연>에서 주목할만한 것은 전통악기의 아름다운 선율이었다. ⓒ MBC

지난 12월 29일 아침의 일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에는 성당에 나가서 반찬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날도 아침을 간단히 먹고 걸어서 20여 분 되는 성당으로 발걸음을 향했습니다. 아파트 문을 나서자마자 바지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습니다. 바로 전날 밤에 컴퓨터를 켜고 적은 <인연>의 노랫말입니다. 그것을 왼손에 쥐고 걸어가면서 가사를 외웠습니다. 몇 구절 보고 종이를 접고 외웠다가 다시 확인하곤 했습니다. 가사만 외우면 잘 안 되기에 동영상에서 봤던 리듬을 생각하면서 속으로 읊조렸습니다. 잘 안 되지만 계속해서 여러 번 하면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수십 번 종이를 폈다가 접었다가를 되풀이하며 가사를 외웠고, 성당에 가서 봉사를 하면서도 잠깐 쉬는 시간에 종이를 꺼내 가사를 외웠습니다. 그렇게 해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가사가 쉽게 외워지지 않더군요. 그래서 더 확실하게 하려고 새로 산 2013년 수첩에 가사를 깨알 같은 글씨로 적은 것입니다. 오전에 서울에 볼 일이 있어서 전철을 탔는데 나는 그 수첩을 꺼내서 몇 번 열었다 덮었다를 반복하며 가사를 외웠습니다.

올해 저는 소박한 삶의 목표를 하나 세웠습니다. 그것은 바로 애창곡을 이선희의 <인연>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동안 저는 이미자의 <아씨> <섬마을 선생님>을 18번지 애창곡으로 불렀는데 앞으로 이 노래에서 벗어나 이선희의 <인연>을 새로운 애창곡으로 부르고 싶습니다.

이선희가 불렀던 노래, 그리고 소향이 대회에 나와서 불렀던 노래, 게다가 동양적인 신비로운 세계를 연상시키는 해금과 가야금의 부드러운 몸놀림과 연주가 덧붙여진 노래인 <인연>을 나의 새로운 애창곡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55세에 애창곡을 새로운 곡인 이선희의 <인연>으로 바꾼다, 나의 이 목표는 과연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가 있을까요? 남들 앞에서 그 노래를 멋들어지게 부를 수가 있을까요?


#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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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즈음 큰 기쁨 한 가지가 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마이뉴스'를 보는 것입니다. 때때로 독자 의견란에 글을 올리다보니 저도 기자가 되어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우리들의 다양한 삶을 솔직하게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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