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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엄청나게 왔다. 한 맺힌 사연이라도 있는 듯 깜깜한 하늘에서 애기 손바닥만 한 눈송이가 화산재처럼 쏟아져 내린다. 지난 주 온 눈이 녹지도 않고 있는데 그 위에 하염없이 쌓인다. 평소 같으면 훤해야 할 오전 8시. 여전히 어둑어둑하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가 실수를 하셨다. 부엌에서 불 때고 아침밥 준비하는 그 짧은 시간에 마치 틈새를 노리고 있기라도 한 듯 기습적으로(?) 일을 보셨다. 물론 기습적이라는 것은 내 판단일 따름. 어머니는 그냥 볼 일을 봤을 뿐이리라.

어머니의 실수로 손이 바쁘다, 특히 겨울엔...

똥이 묻은 빨랫감은 둘둘 말아서 수돗가로 옮기는데 겨울에는 이게 문제다.
 똥이 묻은 빨랫감은 둘둘 말아서 수돗가로 옮기는데 겨울에는 이게 문제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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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압변화가 있거나 날씨가 널뛰기를 하면 어김없이 오늘처럼 초대형 실수를 하신다. '실수'라고 표현은 했지만 이미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어머니랑 산 지 만 6년. 해마다 다르다. 다달이 다르다.

역시 어머니 뒤처리가 일상이 된 나는 신속하고 능숙하게 수습에 나선다. 제일 먼저 어머니를 안전한 곳으로 모셔야 한다. 안전한 곳이 방 어디를 둘러봐도 없다. 초대형 실수답다. 안전지대를 확보한다. 물 적신 수건과 위생깔개매트로 한쪽을 깨끗이 닦는다. 그곳으로 어머니를 모시고는 몸을 닦고 새 옷을 입혀 드린다. 뒷방에 있는 커피포트에 초특급으로 물을 데워서.

똥이 묻은 빨랫감은 둘둘 말아서 수돗가로 옮기는데 겨울에는 이게 문제다. 바로 얼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방구석에 모으고 방바닥을 닦지만 가장자리는 벌써 말라붙어서 주방휴지에 물을 흥건하게 적신 다음에 두세 번은 닦아야 한다. 이 빨랫감을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일이 커진다. 어머니가 젖은 옷을 말린답시고 방바닥에 골고루 널어놓기 때문이다.

오늘이 유독 초대형 실수가 된 것은 입었던 바지와 속옷을 다 벗고 기저귀는 갈기갈기 찢어 낸 다음 똥과 오줌을 누셨기 때문이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신 어머니가 손에 잡히는 대로 이불과 옷을 뭉쳐 똥을 닦는다고 문질러대다 보니 온 방과 벽에 똥칠이 된 것이다.

몇 달 전부터는 혼자 힘으로는 일어나시지 못한다. 아프리카 난민처럼 마르셔서 무릎 뼈가 앙상하다. 외출하기 위해 트럭에 안아 올릴 때면 알 수 있다. 얼마나 마르셨는지를. 어머니를 모신 초기에는 안은 채 몇 걸음도 못 갔는데 요즘은 마루에서 마당을 지나 대문 밖 트럭까지 안고 가서 태워도 너끈하다. 내 고생 덜어드리려고 마르셨나 싶을 때가 있다.

스테디셀러가 된 책의 저자, 다 어머니 덕분입니다

30여분을 가만히 계시는 어머니.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 어머니 30여분을 가만히 계시는 어머니.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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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아흔 하나. 어머니와 같이 할 시간들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리 길지는 못할 것이라고 판단된다. 소화를 못하시고, 누워서만 지내시게 되었고, 더 자주 정신을 놓으실 뿐 아니라 그런 시간이 길다. 맑은 시간은 짧고 혼탁한 시간은 길다.

지뢰밭을 가듯 뒤꿈치를 들고 오가면서 방을 부지런히 닦고 있는데 "똥을 이렇게 많이 싸니까 배가 텅텅 비었다"고 하신다. '배고프다'는 말씀을 이리 예쁘게 하신다. 어머니는 표현 하나하나가 문학적이다. 고백하건대 어머니 모시는 동안 꾸준히 책을 출판하게 된 것도 어머니 덕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것도 일곱 권이나.

<똥꽃>(귀농한 농부인 필자가 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시골에 살면서 겪은 체험담을 모은 책 - 편집자주)이라는 책은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수 만권이 나갔다. 이게 어머니 덕이라고 하는 것은 어머니가 글의 소재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머니의 문학적 감수성과 소양이 내게로 쬐금 흘러 내려 온 것으로 여겨져서다.

설사하신다고 밥 대신 죽을 끓여 반 공기쯤 갖다 드리면 "닭구새끼 모시만도 못하다."(닭 모이만도 못하다)고 하신다. 죽을 다 드신 어머니께 내가 짐짓 "배불러요?" 라고 물으면? 이럴 때 뭐라 대답하시겠는가? "밥 묵은 사람 쳐다 본거만도 못하다"고 하신다. 어머니의 비유와 풍자는 혀를 내 두르게 하신다. 밥 먹은 사람 한 번 쳐다 본 것만도 못하다니 먹은 둥 만 둥 하다는 것 아니겠는가.

언젠가 중학교 때 다 먹은 도시락에 밥풀이 하나 붙어 있었다. 딱 하나. 어머니는 그 도시락을 가만히 두었다가 저녁 때 들어 온 내 코앞에다 도시락을 들이대고 "니 에미 줄락꼬 냉기 왔나? 나락이 어떻게 해서 밥되는지도 모르는 놈이 공부는 무슨 공부냐?"(네 어머니 주려고 밥 남겨왔나? 벼가 어떻게 해서 밥이 되는지를 모르면 헛공부다. 이거는 왜 안 먹었냐?)고 하시던 생각이 난다.

그 당시에도 어머니 표현이 참 남다르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뒤로 나는 어디에서나 밥상을 대할 때는 밥풀 하나 남기지 않게 되었다. 밥이 곧 하늘이라는 말을 들을 것은 스무 살이 훨씬 지나 동학공부를 할 때였으니 어머니는 밥상머리에서 나를 조기교육을 시킨 셈이다. 이른바 요즘 유행하는 '밥상머리 교육'.

지지리 상복도 없는 내가 상을 받다니, 이 또한...

전주시장과 전라북도 행정부지사 등 300명이 넘게 참석한 자리에서 영광의 상을 내가 받았다.
 전주시장과 전라북도 행정부지사 등 300명이 넘게 참석한 자리에서 영광의 상을 내가 받았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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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프다는 어머니께 똥을 치우다 말고 "뭐 드릴까요?"라고 물었더니 곶감을 달랜다. 아랫도리를 닦아드릴 때도 눕지 않겠다고 버티면서 곶감 한 개만 주면 눕겠다고 하시더니 시종일관 곶감이다. 설사에는 곶감이 최고다. 이렇게 우리 모자는 척척 손발이 맞다.

수도꼭지에 이불과 옷, 양말, 수건을 대고 똥 덩어리를 털어내는 초벌빨래를 한 다음, 끓인 물을 부어 세탁기를 돌릴 때야 문득 엊그제 받은 상이 생각났다. 전북환경운동연합이 준 상이었다. 이름하여 '2012년 전북환경인상'. 전주관광호텔에서 행사가 있었다. 전주시장과 전라북도 행정부지사 등 300명이 넘게 참석한 자리에서 영광의 상을 내가 받았다.

학교 때 말고는 평생 상을 받아 본 적이 없는 나는 상을 받는 게 민망하면서도 벅찼었다. 박수와 꽃다발에 한껏 고양되었다. 지지리도 상복이 없는 내가 상을 다 받게 되다니. 나는 그동안 상은커녕 온갖 벌을 받으면서 지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듭되는 해고와 투옥, 수배와 고문, 집단구타….

그런데 세탁기를 돌리면서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이것이 바로 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 뒷수습 하는 것 자체가 큰 상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호텔까지 가서 받은 상이 이 똥 빨래를 하지 않는다면 절대 받을 수 없는 상이었다는 것을. 화려한 식장 조명과 갈채 속에만 상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일 속에는 '상'의 씨앗이 스며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모든 것들은 서로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작용한다는 사실을 보게 된 것이다. 어머니 빨래를 하면서.

그러고 보면 어머니는 '실수'한 것이 아니다. 막내자식 상 받게 하려고 궂은 일 마다않고 이런 상황까지 연출하신 것 아닐까? 남은 생에 이렇게라도 해서 자식 상 하나 주리라 작정하신 것은 아닐까? 가끔씩 요양보호사와 노인요양원 도움을 받지만 내가 최대한 직접 어머니 곁을 지키려고 6년여 살아오는 동안 어머니는 어머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부모 역할을 다하신 것은 아닐까?

타인의 일상을 실수라고 단정 짓는데 시간을 낭비할 게 아니라 내가 실수하지 않고 살아갈 궁리를 하는 것이 옳으리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북치매관리센터> '우리랑'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어머니, #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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