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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 책표지
이은책표지 ⓒ 푸른역사
"선생님, 우리나라도 영국처럼 왕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궁궐도 있는데 조선시대 왕의 후손들이 직접 살면서 왕실 문화를 보존하면 문화적 가치도 훨씬 높아지지 않을까요?"

역사가 좋아 사학과를 가겠다며 자주 찾아오던 아이가 어느 날 내게 던진 질문이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아이가 납득할만한 답을 해주지 못하고 '민주사회에서 굳이 왕이 존재할 이유가 있을까' 되물었다. 아이는 답했다. "통치자로서의 왕이 아니라 상징적 존재로서 국민의 존경을 받는 왕은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지나가버린 왕조의 유산을 굳이 현실에 되살려 보존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아이가 제기한 문제도 나름의 일리는 있다. 외세의 침략으로 국권이 피탈되는 과정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국권을 지키려 노력했던 자취가 있고, 국권 피탈 후에도 상실한 국권을 되찾기 위해 싸운 흔적이라도 있고, 그래서 존경의 대상이 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존경의 대상이 된다는 것

굳이 프랑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다. 국운을 걸고 직접 전투에 참가했던 왕이며 귀족들은 우리 역사에도 무수히 많다. 고구려 고국원왕이나 백제 성왕처럼 전투에서 전사한 왕도 있다. 권력과 부를 장악한 사람은 그에 걸맞은 사회적 의무를 다할 때 존경의 대상이 된다.

외세의 침략 속에서 힘겹게 연명하던 조선 왕조는 대한제국을 선포했지만 일제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권력과 부를 장악했던 사람들은 그들의 지위에 걸맞게 국권 상실을 막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

나라를 지키겠다고 일으킨 의병에 해산권고 조칙을 내린 이가 고종이었다. 척양척왜를 부르짖으며 일어선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조정에서는 청에 군대 파병을 요청했다. 갑신정변을 계기로 개화세력을 축출했고, 독립협회도 탄압해서 해산시켜버렸다.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된 뒤에야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했지만, 때는 늦었다.

"일제 36년 동안 잃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 가족을 버리고 고향을 버리고 자기 몸을 처참하게 희생한 독립운동가들이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긴 세월 동안 이은은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에 힘쓴 일이 전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고국이 겨우 독립된 이후에도 그런 사실을 미안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일본인'으로서의 생활을 너무나 호사스럽게 너무나 오래 누린 결과,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에게는 어렵게 되찾은 나라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역시 없었다."(본문 중에서)

철저한 일본인이 된 영친왕 이은

"내 지위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아무쪼록 지금까지와 마찬가지의 대우를 해줄 수 없습니까?"

일제가 패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은이 일본 고위 관료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멸망한 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의 품격과 자존심은 보이지 않고 패망의 대가로 일본 정부로부터 받던 엄청난 세비와 예우가 사라질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철들기도 전에 인질처럼 일본으로 보내졌고, 일본 황족 여성과 결혼해서 생활할 수밖에 없었던 불행한 그의 삶을 고려한다면 식민지로 전락했던 조선의 운명처럼 안타깝게 느껴져 동정의 눈길로 바라볼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가 살아온 내력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면 그 눈길을 거둬들일 사람도 적지 않나 싶다.

1919년 이은은 일본에서 약혼녀인 방자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 시기 고국에서는 3·1운동의 불길이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고, 독립운동가는 물론이고 일반 민중들까지 모진 탄압 속에서도 저항을 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 일본의 신문에 보도됐음에도 이은은 일본 군인으로서의 의무에 충실하며 약혼녀와의 사랑에 몰입했다. 그리고 다음해인 1920년, 그는 결혼했다.

일제는 이은과 방자의 결혼 축하의 명분으로 3·1운동으로 체포돼 재판받고 복역 중인 사람들을 대거 사면했다. 하지만 의식 있는 독립지사들은 그 사면을 거부했다. 차비가 없어 고향에 갈 수 없으니 옥에서 나가지 않겠다며 출감을 거부했다. 그래서 일제 당국자들은 차비까지 마련해주며 강제 출옥시켰다.

일본 육사와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장교 생활을 했던 이은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많다. 관동대학살 사건 당시 보여준 처신, 만주사변과 태평양전쟁 당시 장교로 복무하면서 보여줬던 언행, 일본의 항복 후 보여준 태도, 일제 패망 후 귀국하지 않고 일본에 남아 누드화를 그리며 살아간 나날들이 말이다.

<평민이 된 왕 이은의 천하>는 단지 과거의 이야기에 머물지만 않는다. 겉모습만 바꾼 채 지금, 여기, 우리 속에 그대로 현존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이은의 일생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는 무겁기만 하다.

덧붙이는 글 | <평민이 된 왕 이은의 천하> (송우혜 씀 | 푸른역사 | 2012.04 | 1만5800원)



평민이 된 왕 이은의 천하

송우혜 지음, 푸른역사(2012)


#영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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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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