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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떡볶이, 순대, 오뎅.
 떡볶이, 순대, 오뎅.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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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들, 뭐 먹을 거야?"
"음... 순대, 떡볶이, 오뎅!"
"그래, 우선 그거 시키고 더 먹고 싶으면 다른 거 더 시키자."

분식집에서 음식 주문을 하고 나니 작은 손자녀석이 말한다.

"할머니! 강아지1은 형아고, 강아지2는 나지?"
"그렇지. 맞았어"

내 휴대전화에 녀석들이 '강아지1' '강아지2'로 저장돼 있는 걸 보고 하는 말이다.

"자, 음식 나왔으니깐 맛있게 먹자."
"할머니! (음식이) 되게 빨리 나오네!"

녀석들은 오뎅을 한 꼬치씩 들고 먹기 시작한다.

점심에 도시락 까먹는 아이들... 마음이 짠해요

초등학교 다니는 두 손자가 지난 12월 마지막주에 겨울방학을 했다. 방학이니 점심은 집에서 해결해야 한다. 딸아이는 출근 준비로 바쁜 아침시간에도 두 아이의 점심을 보온도시락에 싸놓고 집을 나선다. 생각만 해봐도 무척 바쁜 아침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딸아이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수영장에 다니고 있다. 그 이유인 즉슨 수영이 끝나면 딸아이 집을 돌아보고, 손자 녀석들도 짬짬이 돌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 수영 강습이 끝나고 손자들을 보러 가면, 녀석들은 제엄마가 싸놓은 도시락을 먹고 있을 때도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웬지 마음이 짠하다.

그렇다고 방학 내내 우리 집에 데려다 놓을 수도 없는 일. 하여 될 수 있으면 수영 강습이 끝나고 빨리 가려고 한다. 하지만 녀석들은 점심시간이 되지 않아도 미리 도시락을 까먹곤 한다.

지난 2일, 나는 손자 녀석들에게 "내일 할머니가 점심 사줄게, 좋지?"라고 물으니 "응! 할머니, 그런데 뭐 먹을까?"라고 답한다. 나는 그저 너희 먹고 싶은 거 생각해놓으라는 말만 남겼다. 손자들은 엄마한테 점심 싸놓지 말라고 해야겠다며 재잘거린다.

이윽고 다음날. 그런데 그날은 매서운 한파가 들이닥친 날이었다. 그러니 아이들이 배달시켜서 먹으면 안 되냐고 묻는다.

"할머니가 나가보니깐 견딜만 해. 그리고 이런 날도 잠깐씩 나가서 바람 쏘이면 기분도 괜찮아져. 우진이 지금 책읽기도 숙제도 하기 싫다면서. 자, 어서 옷 잘 챙겨 입고 나가자!"

겨우 달래서 녀석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가족끼리 함께 외식은 자주 하지만 나와 녀석들과의 '떡볶이 데이트'는 처음 있는 일이다. 밖으로 나가기를 귀찮아 하던 녀석들이 막상 밖으로 나오니 기분이 괜찮아지는 듯했다.

"배 부르지만, 금세 배고파 질 거야"

"그런데 할머니, 작년에는 재민(큰 손자의 친한 친구)네하고 스키도 잘 타러 다녔는데 올해는 그러지 못하고 있어."
"이렇게 추운 날씨에는 스키타는 것도 힘들어 적당히 추워야지"
"맞아. 그리고 재민이가 학원을 멀리 다녀서 보기도 힘들어..."

큰 손자가 그러자 작은 녀석도 덩달아 자기 이야기를 들어달라 난리법석이다. 큰 손자는 그런 동생을 말리느라 분주하다. 그렇게 우리는 분식집에서 떡볶이·순대·오뎅을 주문하고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큰 손자는 바쁘게 먹는 와중에도 내게 분식을 맛있게 먹는 법을 알려줬다.

"할머니! 순대는 이렇게 떡볶이 양념을 묻혀 먹으면 더 맛있어. 할머니도 한 번 해봐!"

처음 주문한 음식으로는 조금 부족한 것 같아 김밥과 오뎅을 더 시켰다. 손자들은 게 눈 감추듯 잘 먹는다. 큰 손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할머니!  나 지금 배가 많이 부른데... 금세 배가 고파질 거야"
"응 할머니도 알아. 우진이는 지금 한창 클 때라 그렇지. 뭐든지 잘 먹어서 이쁘다. 이거 먹고 더 먹고 싶으면 더 시켜."

주문한 음식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녀석들의 배가 든든해진 뒤 분식집을 빠져나왔다. 녀석들은 껑충껑충 뛰면서 집으로 향한다. 녀석들의 건강한 모습을 보면서 가끔은 딸아이의고단함도 덜어주고, 녀석들과의 친목도 도모할 겸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이런 자리를 마련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자들과의 점심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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