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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당선인이 7일 오전 서울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에서 열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 자리에 앉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이 7일 오전 서울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에서 열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 자리에 앉고 있다.
ⓒ 인수위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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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당선인과 영화 한 편을 함께 보고 싶다. 세밑 새해 대한민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레 미제라블> 말이다. 단순히 이 영화가 훌륭해서가 그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박 당선인과 이 영화를 함께 보고 싶은 이유는 반드시 논의돼야 할 한 장면이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와 <레 미제라블>... 그 이유는?

1832년 파리청년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프랑스 바리케이드'.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와 응원을 프랑스 대혁명으로 이끌어낸 사건이다. 영화에서 드러나듯, 청년시민군에 대한 정부군의 탄압이 본격적으로 이뤄지자 일반 대중은 청년시민군을 외면한다. 결국 바리케이드에 참여한 청년들은 처참한 최후를 맡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은 혁명 실패 이후다. 청년시민군의 호소를 외면했던 일반 대중이 자발적으로 나서 죽은 이들의 피를 닦고 동참한다. 청년들이 죽고 난 뒤, 비로소 그들이 왜 죽음의 길을 택했는지 깨달은 것이다. 치기 어려 보였던 청년들의 행동이 프랑스 대중에게 '빵'과 '우유'를 위한 투쟁의 중요성을 인식케 한 것이다.

이 장면 때문에 2013년 대한민국의 오늘이 안타깝다. 대선이 끝난 뒤 노동자 5명이 운명을 달리했다. 5명의 죽음이 박근혜 당선인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은 "기존 노동 분쟁과 사법적인 문제들이 악화되는 걸 박근혜 대선후보의 당선과 연결지을 순 없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아팠다. 죽은 이들과 일면식조차 없는데 이들의 죽음 소식을 듣고 당황스러워 울었다. 비단 나만 그랬을까. 영화 <레 미제라블>에서 혁명 실패 후, 시민군의 피를 닦아주는 대중의 모습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 참 많은 사람들이 함께 울었다. 왜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보인 것일까. 정녕 박근혜 당선인만 모르는 것인지 궁금하다.

비단 노동자들의 죽음이 안타까워서만 슬펐던 것일까. 200년 전 프랑스처럼 '경쟁을 두려워해 실패한 이들의 무모한 행동이었다'고 단정지어야만 옳은 것일까. 그래서 나는 묻고 싶다. 노동자들의 극단적 선택, 과연 대한민국 일반 대중의 삶과 정말로 무관한 일인지 말이다. 박근혜 당선인과 영화 <레 미제라블>을 함께 보면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정말로 대한민국 대통령 당선자로써 '그들'과 '나'는 상관 없는 관계에 놓여 있는지.

죽은 5명의 노동자 역시 이땅의 국민으로 열심히 살았던 시민이었다. 다만 어느날 갑자기 잘 다니던 회사에서 '정리해고' 명단에 포함됐을 뿐이고, 법원의 '정규직 전환' 결정에 제외됐을 뿐이다. 그들이 한 '노조 활동'은 다른 보통 사람의 편견과 무시 속에 158억 원에 다다르는 손배소와 가압류로 되돌아왔을 뿐이다.

어쩔 도리가 없다

그때는 치기 어렸다고 불렸겠지만, 결과는 혁명이었다.
 그때는 치기 어렸다고 불렸겠지만, 결과는 혁명이었다.
ⓒ UPI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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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석하지만 나 역시 죽은 노동자에게 감히 공감하지 못했던 이유는 단 하나다. 어쩔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는 서른이 될 때까지 제대로 취직조차 못하고 있는 이 땅의 '88만원 세대'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 대학 졸업 후 군대 다녀온 뒤 어학연수까지 마쳤지만, 정부의 조언대로 '눈높이를 과감히 낮출 수 없어' 취업 때문에 괴로워하는 그런 청년이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살았다. 하지만 죽음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자꾸 미안해진다. 그리고 영화를 볼 때 떠올랐다.

'노동자의 죽음, 정말로 저들만의 이야기일까?'

문제는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나서서 말을 하지 못했을 뿐, 지난 12월 19일 이 땅의 1469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들의 죽음을 공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대선 이후 죽은 5명의 노동자에게 미안하다. 이렇게 벼랑 끝까지 내몰렸는데도 '나 살기 바쁘다'는 외면으로 '너희들이 무능해서 그렇게 됐다'는 무시로 선뜻 공감하지 못함에 미안할 뿐이다. 물론 죽은 이들은 살릴 수 없다. 다만 이제는 영화 <레 미제라블>처럼 동참하며 또 다른 죽음을 막고 싶다. 더 이상 시청역 2번 출구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를 지날 때마다 애써 눈길을 피하고 싶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얼마 전 놀라운 소식을 하나 더 접했다. 울산 현대차 비정규직 해고자 최병승씨를 비롯해 혹한 속에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대한민국 법원이 '회사의 이익'에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매일 30만 원씩 손해배상을 물렸다는 기사였다. 겨울 방학을 맞아 학비에 보탠다고 동네 구청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사무보조 알바를 하고 있는 동생이 이 기사를 접하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저걸 도대체 어떻게 갚어? 저려면 어쩔 도리가 없잖아. 결국 내려와야지."

이 말을 듣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미안하고 애석하지만 다시 한 번 '나와 상관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며왔다. '조용히 있자, 아무 상관없잖아. 할 수 있는 것도 없어. 미안해 하지 말자.' 그런데 곡할 노릇이다. 마음 속에서 미안함이 지워지질 않는다. 어디선가 나타날 '죽음'을 방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란 생각이 든다. 부끄러웠다.

영화 <레 미제라블> 티켓 두 장을 준비하며

지금도 진행 중인 이야기, 동참하자
 지금도 진행 중인 이야기, 동참하자
ⓒ UPI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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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아침, 덕수궁 대한문에 앞에서 다시 부산으로 향하는 '희망버스'를 탔다. 여전히 머릿속에선 '법'이라는 현실의 잡다한 생각이 가득했지만 혹한 속에 그곳까지 모인 사람들을 보니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내려가며 영화 <레 미제라블>이 마지막까지 승리의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 이유도 같은 것 아닐까 생각했다.

'아직 시간이 더 요구된다. 더 많은 시민의 관심과 동의가 필요하다.'

그래서 더욱 박근혜 당선인과 함께 영화 <레 미제라블>을 보고 싶다. 영화를 함께 본 뒤 어땠냐고 물으며 "더 잘살아 보겠다고 죽어간 이들, 지금도 사선에 서있는 사람들 그리고 이들에게 미안해하는 시민들, 이들과 상관없다 말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대한민국의 국민"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앞으로 5년간 이들을 살펴야 하는 사람은 대한민국 대통령 당선인 자신이라는 사실도 상기시키고 싶다. 그저 이 한 마디를 하고 싶어 그녀를 위해 영화 티켓 두 장을 준비해두겠다.


태그:#레미제라블,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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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팀 취재기자. 오늘도 애국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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