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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 정도 나갔다가 지금 거의 다 들어왔어요. 수리비요? 300~400만 원쯤 들었을 거예요. 월세 놓은 다음 그 돈으로 이자 내고 있는 사람이 많아요."

아파트 관리소장 안아무개씨 말이다. 재건축을 하기 위해 이주했던 주민들이 부서진 집을 고쳐 다시 들어와 살고 있다는 것. 안양시 호계동 삼신 6차 아파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대체 이 아파트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 1월 2일 삼신아파트를 방문했다.

"서희건설이 이자 지원을 멈췄을 때, 그러니까 재작년(2011년) 11월부터 벌어진 일이지요, 전세금 한 6천 몇 백 만 원씩 받고서 나갔다가 서희가 이자 지원 중단하니까 다시 들어오기 시작한 거예요. 이주는 2010년 11월경부터 시작했어요. 나갔다가 1년 만에 다시 들어오기 시작해서 한 7개월 만에 거의 다 들어온 셈이죠."

안 소장은 그간의 사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안 소장 말에 따르면 주민들이 다시 들어와 살고 있는 이유는 이주비에 따른 이자 지급을 시공사인 '서희건설'에서 중단했기 때문이다.

재건축은 집을 조합에 신탁(관리, 처분하도록 하기 위하여 재산을 이전시키는 것)한 다음 일정 금액의 이주비를 받고 나갔다가 다 지은 다음 입주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때 지급 되는 이주비는 집 값(감정평가 금액)의 60% 정도이고, 이자는 일반적으로 시공사가 지급한다. 김 소장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주민 몇 명을 수소문해서 전화통화를 했다.

"4~5년 전에 샀어요. 재건축 소식 듣고 싼 값에 새 아파트를 분양 받을 수 있을까 해서 들어왔다가 발목 잡힌 것이죠, 지금 아무것도 못해요, 팔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재건축이 되는 것도 아니고. 재건축 하든지 아예 그만 두든지 했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재건축 됐으면 좋겠지만. 400만 원 정도 들여서 싹 수리 한 다음 월세 놓았어요. 월세 받아서 전세금(이주비) 6700만 원에 대한 이자를 내고 있고요. 월세 놓기 전에는 생돈 나갔지요. 이자요? 삼십 몇 만 원 돼요, 한 6. 4%(이자율) 정도 된다고 하네요."

30대 주부 방아무개씨 말이다.

"싱크대 다시 놓고, 장판 깔고, 도배하고, 문 다시 달고, 보일러 고치고, 페인트 칠 하는데 한 400만 원 정도 들었어요. 왜 그렇게 많이 들었냐고요? 그야 우리가 나가자마자 다 때려 부숴서 그렇지요. 나간 사람들이 맘 변해서 다시 들어와 산다고 할까봐 이주하자마자 부숴 버린대요. 어차피 경기도 안 좋으니 그냥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조합도 해산 하고요."

40대 주부 정아무개씨 말이다. 정씨 역시 30대 주부 방씨처럼 월세를 받아서 이자를 내고 있는 형편이다.

월세 받아서 이주비(전세 대출금) 이자 내고 있어

 재건축 조합 사무실
재건축 조합 사무실 ⓒ 이민선

주민들이 폐허가 되다시피 한 집을 수리해서 월세 등을 놓는 이유는 대부분 이자 때문이다. 월세를 받아 이자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 시공사가 월세 지급을 멈췄다는 것은 곧 사업에서 손을 뗐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시공사인 '서희건설'은 어째서 1년 만에 사업에서 손을 뗀 것일까?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우선 조합을 찾았다. 

"2011년 10월 18일, 서희가 손을 뗐어요. 이자도 그때부터 내지 않았고요. 주민들이 이주를 하지 않아서 그런다고 하는데 그건 사실 핑계입니다. 서희가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공사를 하지 못하게 되니까 그런 거예요. 작년 3월 달에는 소송도 제기했어요. 그동안 빌려준 돈을 돌려 달라는 소송입니다."

현재 조합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심아무개(여, 60대)씨의 말이다. 서희건설이 자금을 구하지 못해 공사를 하지 못하게 되자 '주민들 이주가 늦어져 공사 못 하겠다'는 핑계를 대고 발을 뺐다는 것. 그렇다면 서희건설이 당시 자금능력이 없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현금청산자(분양신청을 하지 않고 현금 보상받겠다고 한 사람)들 보상도 못 해 줬어요. 그러다 보니 조합원들이 서희를 불신(공사를 할 능력이 없다고)하게 돼서 더더욱 이주를 하지 않고 버텼던 것이고요. 현금 청산자들은 총 59명(총 세대수의 15%) 이었어요. 당시 은행들이 대출을 해 주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아마 사업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러던 중에 부동산 경기가 나빠지면서 사업 수지가 악화되자 사업을 포기한 것 같아요. 돈이 없어서 공사 못하겠다고 하면 자기들이 책임질 일이 많으니까 이주가 늦어져서 그런다고 핑계를 댄 것이고 조합 약점 잡아서 소송을 한 것이죠."

이 말을 한 사람은 삼신 아파트 재건축 최초 시공사인 '일신건영' 개발사업 이모 팀장이다. '일신건영'은 재건축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지난 2003년 3월, 시공사로 선정됐다가 자금 사정이 어려워져 공사를 하지 못하겠다고  판단, 2007년경 조합과 협의 하에 스스로 사업을 포기하고 물러난 회사다. 일신건영이 물러난 이후 '서희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됐던 것.

이 팀장이 아직도 재건축 사무실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도 아직 돌려받지 못한 투자금 때문이다. 일신건영이 재건축을 하기 위해 투자한 돈은 약 60억 원이다. 이 팀장은 "새 시공사가 들어와서 사업 정상화 되면 투자한 돈 회수 방법 논의해야 하는데, 서희건설마저 돈이 없어 자빠진 것이다. 돈을 회수하려면 재건축이 정상적으로 진행돼야 하는데 현재 그렇지 못해 답답하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법무사 사무실 최모 사무장도 같은 이유로 재건축 사무실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재산 신탁 대행 비용 약 5500만 원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 팀장과 최 사무장은 재건축이 다시 추진되길 바라며 조합을 도와주고 있다.

서희건설, 재건축 손 뗀 후 대여금 반환 소송

 삼신아파트
삼신아파트 ⓒ 이민선

조합 측 주장에 대한 반론을 듣기 위해 1월 8일 오전 서희건설 윤모 차장과 전화통화를 했다. 윤 차장은 '자금을 구하지 못해 공사를 하지 못하게 되자 '주민들 이주가 늦어져 공사 못 하겠다'는 핑계를 대고 발을 뺐다'는 조합 측 주장에 대해 "계약 당시 일반 분양 세대수(현금 청산을 원하는 세대수)가 16가구 정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주기간이 다 끝난 2011년 3월까지도 120세대 이상 나가지 않았다. 그래도 그 해 10월까지 기다렸는데,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즉, 주민들이 이주를 하지 않아서 도저히 공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는 것. 이어 "당시 우리 회사는 은행 대출을 받아 양주, 역삼동 등에서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며 시공사가 자금을 구하지 못했다는 조합 측 주장을 일축했다.

또한 현금 청산을 해 주지 않아서 조합원들 불신을 샀고, 그래서 이주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주장을 "주민들이 요구한 합의금이 너무 높아 도저히 현금 청산을 할 수 없었다"고 반박했다.

한편, 서희건설은 사업에서 손만 뗀 게 아니라 소송도 제기했다. 그동안 들인 돈을 물어내라는 '대여금 반환 청구 소송'이다. 지난해 3월 16일, '서희건설'은 조합' 임원들(15명)에게 그동안 조합원 이주비 이자 등으로 빌려준 21억5347만 원을 돌려 달라는 소송(2012가합2069)을 제기했다.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는 임원들 재산을 가압류했다.

임원들이 재산을 가압류 당한 이유는 도급 계약을 하면서 연대보증을 섰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아직 판결이 나지 않았다.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에서 시비를 다투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해결 돼야 하는데 문제는 '돈'

주민들은 어떤 식으로든 재건축이 마무리되기를 바라고 있다. 빨리 진행하든, 아니면 하루라도 빨리 취소하든. 하지만 삼신아파트 재건축은 주민들 바람과는 달리 어떤 식으로든 빨리 해결되지는 않을 상황이다.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를 짓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돈 문제다. 재건축을 재개하든 포기하든 일신건영이 투자한 약 60억 원과 '서희건설'이 반환 청구한 약 21억 원, 법무사 비용 약 5500만 원 등을 해결해야 한다. 해결 방법은 두 가지, 조합이 물어주는 것과 회사가 포기하는 것인데 둘 다 쉽지 않아 보인다.  

일신건영 이 팀장과 법무사 사무실 최 사무장은 '서희건설'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시 공사를 맡아 자금을 투자해서 재건축을 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조합 임원과 소송전까지 벌이고 있는 '서희건설'이 다시 공사를 맡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이미 60억 원을 투자한 일신건영이 다시 공사를 맡아 추진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이 팀장은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재건축을 재개하려면 어림잡아도 300억 원 정도가 필요한데, 일신건영은 그만한 자금 동원 능력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른 시공사와 계약하는 방법 밖에 없는데, 이 또한 쉽지 않아 보인다. 이날 (1월2일) 조합사무실에서 만난 사람 모두 재건축이 다시 추진되려면 능력 있는 시공사가 들어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이미 복잡해질 대로 복잡해진 삼신 아파트 재건축을 떠 맡 을 시공사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용적률 높인다고 사업성 좋아지지 않아

 삼신아파트
삼신아파트 ⓒ 이민선

하지만 조합은 아직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어떻게든 사업성을 높여서 재건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사업성을 높이기 위해 안양시에 용적률을 높여 달라고 꾸준히 요청, 300%(기존 249.1%)를 확보했다.

그러나 주민들 생각은 조합 임원들과 달라 보인다. 삼신아파트에서 15년 간 살다가 월세를 놓고 이사했다는 40대 남성 김아무개씨는 "재건축 안 될 것 같고, 리모델링도 어려워 보인다. 그냥 수리해서 살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희건설 윤모 차장도 용적율을 높여서 재건축을 다시 진행시키기는 어렵다는 의견이다. 윤 차장은 "용적률 높아졌다고 사업성이 높아지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봤자 일반 분양만 많아지는데, 분양시장이 언 상태에서는 오히려 (용적률 높아진 게) 더 힘들게 할 수도 있다. 그보다는 우선 분양시장이 살아나야 하고 그 다음 조합원 의지가 높아져야 한다. 물론 분양시장이 살아나면 조합원 의지도 자연히 높아지겠지만…"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삼신아파트 재건축은 현재 길을 잃은 상황이다.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안개 속을 헤매고 있다. "어떻게든 마무리가 됐으면 좋겠다"는 주민들 푸념만 메아리가 되어 울리고 있다.

삼신아파트는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 651-1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14831.7㎡이고.  지난 84년에 지어졌다. 재건축은 지난 2003년부터 본격화 됐다. 지난 2006년 내부갈등으로 조합장 최모씨와 경리 이모씨, 조합원 노모씨가 컨테이너 안에서 다투다가 불이 나서 사망한 사건이 있었고, 2대 조합장 손모씨는 지병으로 사망했다. 현재 부조합장이 심모씨가 조합장 직무를 대행하고 있다.


#재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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