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권력이 사적으로 이용되서는 안 된다. 이명박 정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민주적 절차의 경시와 국가권력의 행사가 공공성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이제 막바지에 다다른 이명박 정권이 대통령 사면권을 행사하려는 데 있어 부정부패로 판결을 받은 측근들, 그것도 형의 선고가 이뤄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을 사면 대상에 올리려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많다.
사면권 행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의 사법 권력을 무력화시키는 방향으로 행사되서는 안 된다는 것과 객관적이고 형평성 있게 행사돼야 한다는 것이다. 측근들에 대한 사면권의 행사는 국가권력을 사적으로 행사하는 것이며, 사법권을 무력화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또, 이는 일반 국민들과의 형평성에도 반하는 것이어서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 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대통령의 사면권은 어떠한 방향으로 행사돼야 하며 사면권의 한계는 과연 없는 것인가 살펴보기로 한다.
전제주의 시대 유물로 평가되는 사면권우리 헌법 제79조에서는 삼권분립의 예외로써 대통령에게 사면권을 부여하고 있다. 사면은 사법부가 아닌 국가기관이 선고된 형의 효력을 소멸시키거나 소추권을 소멸시키는 것으로 넓은 의미에서는 감형과 복권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사면권은 권력분립의 원칙에 반하는 극히 예외적인 것으로 사법권에 대한 제한을 가져오는 것이다. 사면권은 전제주의 시대의 유물로 평가받는 것이며 권력분립의 원칙이 일상화된 현대에 있어서 그대로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본래 사면권의 근거는 실정법 질서가 획일적 정의를 추구하는 것으로 여기에도 일정한 한계가 있기 때문에 구체적 정의실현을 위해서 사법권이 남용되는 것을 제한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라 설명되고 있다.
정부 수반을 사법권의 행사 주체로 설정하거나, 의회에 사면권을 주기도 한다. 우리나라 헌법에서는 대통령에게 사면권을 주고 있으며, 사면에 관한 법률로 사면법이 있다. 사면법에 의하면 일반사면(감형과 복권의 경우에도)의 경우 대통령령으로 해야 하며, 특별사면의 경우에는 대통령이 행하도록 돼 있다. 일반사면은 죄의 종류를 정해 그 죄를 범한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므로 사실상 법률의 개정과 유사한 효과를 갖기 때문에 국회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 특별사면은 특정의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고 국회의 동의를 요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만큼 남용의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공공성과 형평성,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가 사면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형식적인 요건과 절차에 따르기만 하면 아무런 제한없이 행사될 수 있는 것인가. 우선 탄핵 결정을 받은 사람의 경우 징계사면(사면법 제4조)은 할 수 없다고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헌법의 경우에는 명시적 규정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면권은 사법부의 재판권에 대한 예외를 두는 것이기 때문에 사법권을 무력화시키는 방향으로 행사되서는 안 된다는 내재적 한계를 갖는다.
현재 재판이 진행중인 상황에서 사면권의 행사가 논의되거나(일반사면의 경우 선고의 효력을 상실시키거나, 형을 선고받지 아니한 자에 대하여는 공소권이 상실되는 것이므로), 판결이 확정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곧바로 사면권이 행사되는 것을 극히 피해야 하는 이유다. 사면권이 남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형이 선고된 후 일정한 기간이 지나야 비로소 사면권의 대상이 되도록 하자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또한 사면권의 행사도 국가권력의 행사이기 때문에 공공성과 형평성이 지켜져야 한다. 사면권의 행사자가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방편으로 이뤄지거나, 특정인이나 특정 계층만을 대상으로 이뤄진다면 사면권 행사가 지나치게 남용되는 것이다.
사면권 행사, 최소한으로 이뤄져야 하는 이유사면권의 행사는 절차적 정당성을 가져야 한다. 일반사면의 경우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하거나, 법무부장관이 특별사면을 상신할 경우 사면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치도록 하는 규정을 두고 있긴 하다. 그러나 사면권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특별사면의 경우에도 사면대상을 객관적으로 심사하는 위원회를 구성(가능한 입법부·사법부·행정부에서 추천한 일정수의 사람들로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임)하거나 국회의 동의를 얻어서 사면권을 행사도록 하는 제한 규정을 둘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아무런 제한도 없이 사면권을 행사도록 하는 것은 사면권이 갖는 한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사면권의 행사가 법에 위반되거나 그 한계를 벗어난 경우 사법적 통제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사면권의 행사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사면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명시적 절차를 위반하거나 사면권의 명백한 한계(사면권의 행사가 공공성을 상실하거나 형평성에 반하는 경우 등)를 벗어났을 때에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봐야 한다. 이 경우 법원이나 헌법재판소의 재판을 통해서 사면권의 행사를 무효화시키는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국가권력의 행사는 법치주의 원칙이 지켜져야 하고, 민주적 정당성을 가져야 한다. 국민들이 국가기관의 권력행사를 따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가권력의 행사에 어떠한 제한규정이 없다고 해서 무소불위로 행사돼서는 안 된다.
국가권력의 행사가 사적으로 남용돼서는 결코 그 정당성을 확보될 수 없는 것이고, 국민들이 그러한 권력행사에 따라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삼권분립의 원칙과 절차적 정당성이 확립된 상황에서는 권력분립의 예외인 사면권이 꼭 필요한지도 되새겨 봐야 한다. 그리고 사면권이 행사되더라도 최소한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작성한 김정범 변호사는 법무법인 민우에 속해 있으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