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저작권법을 위반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본인이 직접 쓴 글은 일부에 불과하고 다른 사람들의 글을 상당 분량 엮은 책 표지에 '편저(編著)' 또는 '공저(共著)'로 표시하지 않고 '이동흡 著(저)'라고 표시한 것이다.
대구·경북(TK) 출신에 '강경 보수'로 평가받고 있는 이동흡 후보자는 헌재 재판관 재임시절 보수·친일 성향의 판결과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부적절한 처신으로 자질 시비에 휩싸였다. 특히 이 후보자는 헌재 재판관 재임시절 헌재 구내식당에서 출판기념회를 개최해 논란이 됐는데, 당시 책이 저작권법 위반 의혹을 받게 된 것이다.
이동흡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오는 21, 22일 이틀간 진행된다.
함께 쓴 책에 본인 이름만 표시... 헌재 구내식당서 출판기념회 개최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특위 민주통합당 간사인 최재천 의원은 11일 이 후보자가 2011년 1월 <세계로 나아가는 한국의 헌법재판>(박영사)을 출간하면서 저작권법상 성명표시권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세계로 나아가는 한국의 헌법재판>은 이동흡 후보자가 헌법재판관 시절 참석한 국제회의 참석기와 국제회의 발표논문 등을 엮은 책이다. 총 7장의 방문기 및 참관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제1장과 제7장만을 이동흡 후보자가 작성했고, 나머지 제2장~제6장은 방문 당시 수행했던 헌법연구관들이 쓴 참관기 및 방문기를 담고 있다.
이 책에서 이동흡 후보자 본인이 직접 쓴 내용은 일부에 불과하고 다른 헌법연구관들의 글을 상당 분량 엮은 것임에도 이동흡 후보자는 책 표지에 '편저(編著)' 또는 '공저(共著)'로 표시하지 않고 '이동흡 著(저)'라고만 표시했다. 이는 저작권법 제12조(성명표시권)을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최 의원의 주장이다. 다만, 이 후보자는 자신이 쓰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각주로 당시 자신을 수행했던 헌법재판소 연구관이 정리하여 쓴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 저작권법 전문 변호사는 "일단 성명표시권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성명표시권이 저자를 표시하는 방법인데, 성명표시권 전체를 100으로 본다면, 각주에만 원저자를 표시하는 것은 50에 불과한 것 아닌가"라면서 "'○○○ 저'라고 쓸 것이 아니라 '대표 편저자 ○○○'라고 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최 의원은 전했다.
특히 이동흡 후보자는 재판관 시절인 2011년 1월 헌재 청사 내에 있는 구내식당에서 저작권법 위반 의혹을 받고 있는 문제의 책 출판기념회를 열어 논란이 된 바 있다.
헌재 측에 따르면, 당시 이 후보자가 책 출판기념회를 구내식당에서 하려고 하자, 상관인 이강국 헌재소장이 '개인적인 일이니 밖에서 하라'고 만류했다. 그러나 이 후보자는 헌재 연구관에게 사회를 보게 했던 것만 취소한 채 행사를 강행했다. 특히 이 후보자는 헌재 직원들에게 출판기념회에 직접 와서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책을 받아 가라고 말해, 사실상 '출석체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재천 의원은 "헌법재판소는 최고법인 헌법에 관하여 재판기관과 해석기관의 지위를 동시에 가지는 국가기관"이라며 "이러한 헌재의 최고 수장 자리에 법을 위반한 이동흡 후보자가 오른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최강 검증팀' 꾸린 민주당, "법조인, 헌법학자, 심지어 보수단체도 반대"국회 인사청문특위는 오는 21, 22일 이틀간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특위 위원장은 3선의 강기정 민주통합당 의원이 맡았다. 새누리당은 권성동 의원이 간사를 맡았으며 김재경·안효대·김성태·김도읍·김진태·강은희 의원이 위원으로 참여했다. 민주당은 최재천 의원이 간사를 맡았으며 박범계·서영교·박홍근 의원이 위원으로 참여했다. 진보정의당은 서기호 의원이 위원으로 참여해 특위는 총 13명으로 꾸려졌다.
민주당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철저한 검증을 통해 이 후보자를 반드시 낙마시키겠다는 방침인 반면 새누리당은 철저한 검증은 필요하나 낙마를 위한 정치공세 청문회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특히 이동흡 후보자에 대한 지명 철회를 요구했던 민주당은 이 후보자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를 예고했다. 판사출신인 박범계 의원은 이 후보자에 대해 "국민의 기본권 보호 정신에 철저하지 않았고 상식적인 법 감정에도 반하는 등 결격사유가 상당히 많은 분"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박 의원은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보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극단적인 판결이 많았고, 보수라면 민족주의적이라고 해야 하는데, 친일 문제에 대해서 고전적인 법 이론을 가지고 얘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국민의 상식적인 법 감정에 반하기 때문에 그것 자체로도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BBK 특검법의 경우 아홉 명의 재판관 중에 여덟 명이 찬성했는데 그중 유일하게 위헌을 주장했고, 일제위안부들의 국가 배상청구 사건에 대해서는 국가에게 요구할 권한이 없다며 합헌을 강변하는 등 문제가 많은 분"며 "이렇게 처신한 분이 헌법재판소장으로 적합하겠느냐"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많은 헌법학자들, 실무가들, 법조인들, 심지어 헌재 내부에서조차 이 후보자의 지명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며 "오죽했으면 보수적인 단체에서도 이 후보자에 대해 안 된다고 하겠느냐"고 말했다.
실제 지난 8일 극단적 보수 성향을 보인 이동흡 후보자 지명을 두고 보수단체들까지도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애국국민운동대연합·사법정의사회구현연대 등 11개 보수 성향 시민단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민국 국민 정서에 위배된 친일 판결을 내린 이동흡 후보자의 명예로운 용퇴를 원한다"고 밝혔다.
'친일 판결'은 이 후보자가 2011년 2건의 헌법소원 사건에서 제시한 소수의견을 두고 한 말이다. 당시 헌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상청구 사건에서 '정부가 한일협정상의 분쟁해결 절차조차 밟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이 후보자는 반대의견을 통해 "국가에 그런 의무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며 각하 의견을 냈다. 같은 해 헌재는 친일재산 국가귀속 특별법에 대해 "민족정기 복원과 3·1운동 정신을 담은 헌법 이념에 비춰 헌법에 부합한다"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 때도 이 후보자는 "친일 행위와 관계없이 얻은 재산도 있을 수 있지 않으냐"며 일부 위헌 의견을 냈다.
박범계 의원은 또 "이 후보자는 헌재 재판관 재임 시절 공사가 구분되지 않는 처신을 지속적으로 해왔다"며 "출판기념회를 청사 구내식당에서 한 것은 직원들에게 책 구매에 대한 부담을 지운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국비로 프랑스 방문할 당시 가족을 동반해서 여행을 했고, 외부 강연 시 사실상 헌법재판소의 연구직원들, 연구관들을 개인적으로 활용했다는 비난을 듣기도 했기도 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이 후보자는 지나치게 보수성향으로 편중돼 있고 재판관으로서 자질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헌법 가치에 몰이해하다"면서 "헌재 내부에서조차 소장으로서의 자질 문제를 거론하며 '제발 이 분만은 막아달라'는 청원이 이어져 최강의 검증팀을 꾸려 이 후보자를 낙마시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그의 지명 소식이 알려진 뒤 헌재 내부에서는 우려섞인 목소리가 지배적이었다. 판결 내용 뿐 아니라 그의 일방적인 리더십도 문제로 거론됐기 때문이다. 이동흡 후보자는 법조계에서 '벙커 판사(좀처럼 벗어나기 힘든 선임판사)'로 잘 알려져 있다. 정성호 대변인은 "'벙커' 판사 이동흡 전 재판관을 헌재소장에 임명한 것이, 혹여 박근혜 '벙커' 정부의 신호탄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며 "국민들은 이명박 '벙커' 대통령을 제왕도 아닌, 그저 폭군 정도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이 후보자가 ▲ 대구·경북(TK) 인사로 국민대통합에 위배되며 ▲ 재판관 당시 친일적 판단 성향 ▲ 유신정권에 대한 비호 의혹 ▲ 재판관 재임 시 권력남용 등을 문제로 삼고 있다.
이 후보자는 대구가 고향이다. 경북 출신인 박근혜 당선인과 이명박 대통령과 동향인 셈이다. 1987년 개헌 이후 6번의 대법원장과 4번의 헌재소장 인사가 있었지만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동향 출신의 사법기관 수장을 임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구·경북(TK) 출신인 노태우 전 대통령도 경남의 이일규 대법원장, 충남의 김덕주 대법원장, 충남의 조규광 헌재소장을 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