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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에서 본 하늘
 비행기 에서 본 하늘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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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여기는 호연이 뉴습니다. 저는 지금 비행기 안에 있습니다. 생전 처음 타보는 비행깁니다. 긴장돼서, 가슴이 두근두근 거립니다. 이렇게 무거운 비행기가 정말 새처럼 날 수 있을까요. 제발 무사히 하늘로 올라갔으면 좋겠습니다."

여덟 살 아들 호연이의 기도다.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달리자, 얼마나 떨렸는지 엄마 휴대폰을 마이크 삼아 이런 멘트를 날렸다. "무서워?" 하고 물으니 "아냐, 아냐" 하며 박박 우기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보니 겁을 집어 먹은 게 분명했다.

잠시 후, 굉음을 내며 무서운 속도로 달리던 비행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면서 조용해졌다. 동시에 호연이의 간절한 기도도 멈췄다. 우리 가족의 제주도 여행은 이렇게, 호연이의 기도와 함께 시작됐다.

1월 9일 오후 4시 20분경,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호연이의 기도가 통했는지 사람을 백 명 넘게 태울 수 있는 큰 비행기는 힘차게 날아올랐다가 "쿠쿵" 소리 정도만 내고 비교적 사뿐히 땅에 내려앉았다.

"한번 꼭 오세요. 제주도 정말 좋아요."
"네 기회 되면 한번 갈게요. 꼭~."

이 대화가 제주도 여행의 시발점이다. 여행을 떠나기 약 한 달 전, 제주도에서 펜션을 운영 하는 오빠를 둔 지인 정열씨의 전화를 받았다. 정열씨는 오빠가 있는 제주도와 남편이 있는 부산, 아이들이 있는 경기도 안양을 일주일이 멀다하고 오가는 맹렬여성이다. 전화를 끊고 난 후, 함께 맥주를 마시던 일행들에게 "겨울에 제주도 가보셨어요?" 하고 지나가는 듯 물었는데, 뜻밖에 반응이 뜨거웠다.

"아는 분 있으세요? 날도 찬데 제주도 가면 따뜻해서 참 좋겠다!"
"저도 가고 싶어요. 몇 년 동안 가족 여행 한 번 못해 봤는데 잘 됐네요"
"저는 제주도 까지만 같이 가면 안 될까요? 제주도에 아는 사람 있는데"

이렇게 해서 그날 나와 함께 맥주를 마시던 사람들 가족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하게 되었다. 인원은 총 16명, 그 중 4명은 제주 공항까지만 같이 갔으니 실제 일행은 세 가족 12명이다.

혹시 물에 사이다를...기포가 뽀글뽀글

호연이
 호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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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목적지는 탄산이 뽀글뽀글 올라온다는, 말로만 듣던 탄산 온천(산방산 온천, 서귀포시 안덕면) 이다. 맹렬여성 정열씨가 적극 추천한 곳이다. 공항에서 미리 예약해 둔 렌터카를 찾아 약1시간을 달려 '산방산 탄산 온천'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친절한 요금에 운전하면서 쌓인 피로가 말끔히 씻겨 나갔다. 친절한 정열씨가 30% 할인권을 구해 카운터에 맡겨 놓은 덕분이다. 지하 600m에서 끌어올리는 국내 최고의 탄산 온천이란 수식어 때문에 잔뜩 긴장하며 신용 카드를 내밀었는데, 영수증을 보니 80300원이 찍혀 있다. 어른은 7700원 어린이는 5000원, 유아 3000원. 동네 목욕탕 수준의 요금이다.

온천을 하기 전, 우선 민생고부터 해결하기 위해 온천 내부에 있는 스낵 코너(snack corner)를 찾았다. 차림표를 보니 이름만 스낵(간단한 음식)이지 사실은 꽤 규모 있는 식당수준 이다. 제육볶음, 갈치조림, 해물뚝배기 등. 해물 뚝배기 1인분에 1만2000원 이니 가격도 만만치 않다. 배가 몹시 고팠는지, 일행들은 자기 몫의 음식을 뚝딱 해치우는 동안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옷을 입지 않고 살던 원시인들도 이런 걱정을 했을까! 아는 사람과 목욕탕에서 만났을 때 은근히 생기는 부담. 몸무게가 늘어 가면서 점점 더 커진 그 부담 때문에 체중이 80kg(키 172cm)을 넘으면서는 가급적 아는 사람과 목욕탕에 가지 않았다. 아니 아예 동네 목욕탕에 발길을 끊었었다.

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상황, 내가 정한 일정이라 도망칠 곳이 없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을 상기하며 훌렁훌렁 옷을 벗어 던졌다. 정말 다행이었다. 일행 중 나보다 다섯 살 정도 나이가 적은 남자인 K씨 허리둘레가 나보다 약간 더 두꺼워 보였다. 나를 주눅 들지 않게 한 그의 겸손한 몸에 감사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 빼고 운동해야지' 하는 생각이 간절해지는 시간이었다.

탄산수에 발을 담그니 미지근한 게 좀 차가운 느낌까지 들었다. 냉큼 몸을 담글 마음이 들지 않는 어정쩡한 온도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생각에 몸을 담그니 신기하게도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물에 사이다를 탄 것도 아닌데, 기포가 뽀글뽀글 올라오는 게 마냥 신기했다. 그 기포가 피부를 간지럽혔다. 얼굴을 담그니 얼굴 피부가 기분 좋을 정도로 따끔 거린다.

어른들이 탄산온천에 몸을 담그고 감격해 하는 사이, 아이들은 제 세상을 만났다. 이날 처음 만난 8살 호연이와 7살 은환이(K씨 아들)가 어느새 단짝이 되어 사고(?)를 치고 다녔다. 텀벙거리며 수영을 하다가 성이 안찼는지 아예 한 손으로 코를 틀어막고 어설픈 다이빙까지 했다.

신기한 것은, 그래도 화를 내는 어른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나와  K씨는 아이들을 '말리다 말리다' 지쳐서 두 손을 든 상황이었다. 누군가 한 마디 하면 좀 조용해지겠지 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무도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무던한 어른들에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혹시 노루가 나를 지켜보고 있지는 않을까

팜스빌
 팜스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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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경, 드디어 말로만 듣던 '팜스빌(서귀포시 안덕면)' 에 도착했다. 정열씨 오빠가 운영하는 펜션이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 가끔 노루가 뛰어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새소리라 너무 시끄러워 도저히 늦잠을 잘 수 없다는 완전 자연 친화형 '펜션'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터였다.

방에 짐을 풀자마자 창문을 열었다. 사방이 칠흑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노루가 나를 지켜보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숨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무들 사이를 뚫고 지나가느라 쉭쉭 거리는 바람만이 저 곳이 숲이라는 것을 알려 줄 뿐이었다. 

아무리 밤이 늦었어도 여행자의 일정에 술이 빠질 수는 없는 법. 각자 방에 짐을 푼 뒤 일행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한 잔 두 잔 세 잔…. 술잔이 돌아가는 횟수가 늘어 가면서 웃음소리도 시나브로 커졌다. 이렇게 여행자들의 밤은 술잔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깊어갔다.


태그:#제주도, #팜스빌, #탄산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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