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9일 밤 대선 패배를 인정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새 정치,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역사적 소명을 제대로 다 하지 못해 송구스럽다"고 밝혔다.
 19일 밤 대선 패배를 인정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새 정치,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역사적 소명을 제대로 다 하지 못해 송구스럽다"고 밝혔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사례 1] 대선 공식 선거운동 개시를 하루 앞둔 2012년 11월 26일,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의 전국 유세용 버스에 큼지막하게 래핑됐던 문 후보 사진이 무참히 뜯겨져 나갔다. 버스에 후보 사진을 붙이는 것이 선거법에 저촉됨을 몰랐던 실무자의 실수로 빚어진 일이었다. 결국 전부 떼어내야 했다. 버스 2대를 래핑하는 데 든 1500만 원이 반나절만에 공중으로 흩어진 순간이다.

[사례 2]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한 첫날, 이번엔 전국을 휩쓸어야 할 유세차량이 말썽을 부렸다. 마이크가 작동하지 않거나 차량 내부 발전기가 돌아가지 않았다. 문제는 곧장 윗선에 보고됐다. 고위 관계자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있냐"며 혀를 찼다. 그러나 다음 날에도 상황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냐"는 누군가의 질문에는 이구동성, "다른 팀 담당 아니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사례 3] '문재인-안철수 단일화'가 무르익던 때, 캠프가 발칵 뒤집혔다. 안철수 대선 후보 관계자에게 문재인 캠프 내부에서 공유하는 문자·이메일이 고스란히 전달된 것이다. 문재인 캠프 소속 팀 구성원 전체가 안철수 후보 캠프로 옮겨갔는데도 민주캠프 선대위 명단에 빠지지 않아 생긴 일이었다. 이들이 옮겨간지 3주만에 발견된 사실이다. 그러나 책임자 문책은 없었다. '덮고 가자'는 분위기 속에 사건은 흐지부지 넘어갔다.

대선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전, 시작 된 당일, 시작된 후 민주통합당 선거대책위원회에서 발생한 대표적인 '황당사례'다. 이처럼 민주당 선대위는 마치 처음 대선을 치러보는 마냥 미숙했고,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겼으며, 문제가 발생해도 책임자를 문책하지 않았다.

모두들 "민주당이 질래야 질 수 없는 선거"라고 입을 모을 때, 내부 문제는 곪아 터지고 있었다. 당은 환부를 방치했고, 결과는 뼈아픈 패배로 나타났다. "이길래야 이길 수 없는 선거였다"고, "이 조직 그대로 인수위원회가 꾸려졌으면 망했을 것"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뒤늦게 터져 나오고 있다.

캠프에 참여했던 이들은 패배의 원인을 선대위, 그 자체에서 찾았다.

문재인 후보 사진이 래핑된 버스에 문 후보 사진을 당직자가 떼어내고 있다.
 문재인 후보 사진이 래핑된 버스에 문 후보 사진을 당직자가 떼어내고 있다.
ⓒ 이승훈

관련사진보기


수평적 네트워크 선대위라는 신기루... "우린 김무성에게 졌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였어야할 선대위가 초보적인 실수를 거듭한 것은 권한과 책임이 모호한 선대위 구조에서 비롯됐다. <오마이뉴스> 기자가 만나본 다수의 민주당 선대위 관계자들은 '세 가지' 즉, 책임자, 결정권자, 전략가가 없는 선대위였다고 입을 모았다. 민주캠프에서 일한 한 관계자는 "근본 없는 수평조직의 폐해"라며 "문제가 생겨도 책임 질 사람이 없고 '내가 하겠다'고 나서는 이 하나 없었다"고 꼬집었다.

출범 당시 '용광로'를 표방한 선대위는 공동선대위원장에만 10명의 인사를 기용했다. 계파를 아우른다는 명목 하에 20 명의 의원에게 각종 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겼다. 여기에 핵심 요직인 전략본부장·상황실장·비서실장·공보단장도 세웠다. 그러나 이들 중 그 누구도 주도적으로 나서 선거의 흐름을 읽고, 큰 방향의 전략을 짜고, 캠프를 조직하고, 긴급 상황을 조정하지 않았다. '선장 없는 배'는 그렇게 표류했다.

선대위의 한 핵심 관계자는 "우린 김무성에게 졌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선대위 총괄본부장을 맡은 김무성 전 의원처럼 전면에 나서 "내가 책임질게"라고 말하며 핵심 사안을 결정하고 교통정리에 나선 인사가 없었다는 것이다.

선대위의 신속 대응 능력은 떨어졌다. 후보가 모든 사안을 보고받고 정리하는 역할까지 떠맡아야 했다. 선대위에 참여했던 한 민주당 관계자는 "중량감 있는 인사가 선거를 진두지휘 했어야 했는데 선대본부장단 회의에도 일사분란함은 전혀 없었다, 한 관계자는 선대본부장단 회의를 보고 '봉숭아 학당'같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중구난방으로 떠드는 이들을 선생님(문재인 전 후보)이 나서 정리해야만 했다는 설명이다.

손학규 상임고문, 김한길 전 최고위원, 박지원 전 원내대표 등이 '김무성'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었지만, 계파 갈등에 밀려 자의·타의로 주요 역할을 담당할 수 없었다.

민주캠프·시민캠프·미래캠프로 3분화된 캠프 운영도 문제였다. 애초 의도했던 유기적 협력관계에서 나오는 시너지는 없었다.  선대위 한 관계자는 "시민캠프가 주관하는 일에 대해 평가하는 보고서를 쓰려고 했더니, 싸움난다고 하지 말라더라"라며 "'곪아 터져서 문제 생길 때까지 놔둬라'라는 게 윗선의 지시였다"고 토로했다. 캠프 간의 알력다툼도 존재했다. 민주캠프에서 만든 콘텐츠를 시민캠프 홈페이지에 올리는 일 조차 녹록하지 않았다고 한다. 캠프 내부에서 생산한 콘텐츠가 아니면 '우리 것이 아닌데 왜 올리냐'며 며칠 동안 반영하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

관계자는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캠프를 하나로 합쳐서 싸우면서 갔어야 했는데 '우린 우리끼리 간다' 기조가 팽배했다"고 말했다.

선대위 기획본부장을 맡았던 이목희 의원은 "캠프를 세 개로 나눈 거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 연관성을 높이지 못한 게 문제"라며 "세 캠프의 활동을 총괄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문제가 없었을텐데 전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선장 없는 배'로 방치된 선대위...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 참석해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으로부터 당선 축하를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 참석해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으로부터 당선 축하를 받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선대위가 방향을 잃고 표류한 것을 두고 캠프에 참여했던 인사들은 계파 갈등을 근본 원인으로 꼽았다. 선대위에 참여했던 핵심 관계자는 "문 전 후보가 권한을 준 총괄본부·비서실·기획본부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다른 곳에는 권한을 주지 않았다"며 "계파와 계보에 얽매이다 보니 리더십 발휘가 안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접어들기 전 '이해찬-박지원 연대'로 친노와 비노 사이의 갈등이 전면화 됐고, 이 같은 계파 갈등에 얽매이다 보니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평가다. 선대본부장단에 10명을 기용한 것도 계파 눈치보기의 일환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더불어 문 전 후보가 특정 인사에게 권한을 넘겨 주지 않은 데에는 당에 대한 문 전 후보의 불신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또 다른 선대위 핵심 관계자는 "문재인 후보는 민주당을 믿지 못했다"며 "2002년 노무현 후보가 선출됐을 당시,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후단협)을 통해 후보를 흔들려는 시도에 대해 당 지도부는 방관만 했다"며 "이 트라우마를 가진 문 후보가 당을 100% 믿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 전 후보가 권한을 주지 않아도 누군가가 자발적으로 총대를 멜 수는 없었던 것일까. 이 같은 소극적 행보에는 '비선에 대한 의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이미 뒤에서 결정된 사항이 있을텐데 괜히 나서지 않겠다는 심리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실제,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은 시사주간지 <시사인>과의 인터뷰에서 "당 사정을 아는 사람한테 누가 선거를 총괄하냐고 물었더니 잘 모르더라, 대선을 총괄 없이 치르는 게 말이 되느냐 물어도 없다고 했다"며 "정말로 총괄이 없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얘기고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는 건데, 납득이 안 가는 구조"라고 말한 바 있다.

민주통합당 초선의원들이 지난 해 12월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매서운 칼바람에 날이 저물어도 끝까지 대선 패배에 대한 사죄와 참회의 뜻으로 유권자들을 향해 1,000배를 올리고 있다.
 민주통합당 초선의원들이 지난 해 12월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매서운 칼바람에 날이 저물어도 끝까지 대선 패배에 대한 사죄와 참회의 뜻으로 유권자들을 향해 1,000배를 올리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민주당 조직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처럼 선거를 진두지휘 할 '머리'가 실종된 선대위는, '손과 발' 역시 움직이지 않았다. 전국 곳곳의 바닥 민심을 좌우할 지역 조직들이 움직이지 않은 것이다.

'자기 선거'처럼 대선을 뛰었어야 할 민주당 의원들의 움직임은 더디기만 했다. 한 관계자는 "총선을 먼저 치른 후 대선을 치르게 되자, 대선에 져도 의원들은 향후 4년이 보장된 상황이었다"며 "그러다 보니 지역구에서 열심히 뛰지 않고 중앙 정치만 하는 의원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비주류 의원들은 친노인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지 않으면 비주류가 숨 좀 쉬고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점도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새누리당에는 의원회관에 의원이 한 명도 없는데 민주당은 다 있었다"며 "안철수 단일화 될 때까지 아무도 안 움직였다, 감나무 밑에 드러누워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고 비판했다.

의원들의 소극적인 자세는 선거 캠프에서 일할 보좌관을 지원하는 문제에서 잘 드러났다. 다수의 의원들은 자신의 보좌관 차출을 달갑지 않게 여겼다. 한 관계자는 "비서실장이 한 의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보좌진 파견을 요청했는데 단박에 거절하더라"며 "왕이 영주들에게 사병 동원령을 내렸는데 영주들이 그것조차 안 한 꼴"이라고 말했다.

안철수 전 대선 예비 후보가 내 건 '새 정치'의 틀에 갇혀버린 것도 조직을 움직이지 못한 큰 원인으로 꼽힌다.

지역에서 민주당 당원으로 사람들을 만나 밑바닥 민심을 끌어낼 사람들에게 흔한 '특보' 명함 하나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문 후보 비서실의 한 관계자는 "임명장 뿌리는 걸 구태로 몰았는데, 임명장이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나설 명분으로 작용한다"며 "다들 자기 돈, 시간 들여 가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건데 '내가 뭐다'라고 내밀 종이 한 장 주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게 다 안철수의 '새정치' 눈이 보느라 그랬다"며 "선거의 기반은 조직 관리인데 이게 전혀 안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전투에서 승리하려면 고공전이 아닌 지상전에서 승리해야 한다"며 "지상전 승리의 관건은 조직이다, 이번 선거에서 조직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머리, 손, 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민주당 선대위는 '이길래야 이길 수 없는' 선거에서 패배라는 결과를 맞이해야만 했다.


태그:#민주당, #대선 패배, #문재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