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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 뚫린 기분이었다. 가슴에서 무언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재즈댄스를 배우는 일주일에 세 번, 딱 세 시간만 제대로 숨을 쉬는 것 같았다.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의 직장생활에서 느껴본 적 없던 감정이었다. 이렇게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회사를 그만뒀다. "모든 게 작심 3일인 네가 얼마나 가겠냐"고 엄마가 말했다.

재즈댄스 전문가 과정을 시작했다. 고급과정을 이어갔다. 현대무용이라는 것을 처음 보고 췄다. 바다의 돌고래가 이런 기분일까. 현대무용은 정해진 답이 없었다. 구르고 뛰고, 점프하고 선이 없는 동작을 했다. 내 안의 것들을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이자 하고 싶은 얘기를 동작에 담아낼 수 있었다. 희열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본격적으로 대학원 입시준비를 시작했다. 대학원은 3분짜리 작품으로 실기시험을 봤다. 틈틈이 재즈댄스 강사를 하며 번 돈 100만 원을 들여 작품을 받고 연습을 했다. 3번을 떨어졌다. 4번째 도전에 무용과 학생이 되었다.       

숨막히는 대출 원리금과 7.8%의 이자, 그리고 행복

입에서 피맛이 났다. 무용테크닉은 단시간 안에 올려놔야 한다는 말을 듣고 학교에서 살다시피 했다. 학부 전공이 다르기에 더 열심히 해야 했다. 900원 짜리 삼각 김밥으로 끼니를 때웠지만 행복했다. 대학원 정기공연에서 '내려놓기를 위한 집'이라는 주제로 16분을 공연했다. '이게 사는 거구나' 싶었다.

자유롭다. 동시에 자유롭지 못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기에 자유롭지만 갑갑하다. 학자금 대출 때문이다. 남보다 늦은 나이에 하고 싶은 것을 한다며 간 대학원이다. '시집이나 가지 뭐하는 짓이냐'며 한숨을 내쉬는 부모님에게 도움을 받을 수는 없었다. 결국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학기당 등록금은 대략 400만 원이었다. 작품 하나 할 때마다 학교 극장 대여비를 비롯해 의상비, 공연 준비비, 소품비가 추가로 들었다.

생활비 100만 원을 더해 총 500만 원씩 4학기 동안 대출에 의지했다. 2월 졸업을 앞두고 2000만 원 가량의 빚이 생겼다. 지금 행복한데 뭐가 문제냐, 학자금은 나중에 갚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은행에서 학자금으로 빌린 돈의 이자가 각각 7.8%, 7.3%였다. 3학기 때부터 한국장학재단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이자는 5.8%, 5.7%였다. 조금이라도 이자가 낮아진 게 어디냐 싶다가도 막상 원리금을 갚기 시작하니까 숨이 턱턱 막혔다.

"매달 통장에서 학자금 빠져나가... 이자라도 적으면 살겠는데"

공연 연습중인 박씨
 공연 연습중인 박씨
ⓒ 김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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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중반, 박민희씨(가명, 36)의 이야기이다. 박씨는 2월 졸업을 앞두고 있다. 공연예술대학원에서 무용을 전공하고 싶다는 꿈을 이뤘다. 스물아홉에 용기를 내어 시작한 일이다. 그는 무용을 하는 삶이 행복하지만 학자금 대출의 부담 때문에 답답하다고 했다.

박씨는 현재 복지관, 문화센터를 비롯해 4군데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평균 100만 원 가량의 돈을 벌어 매달 40~45만 원을 학자금 대출을 갚는 데 쓴다. 그의 말이다.

"현대 무용은 무엇보다 자기 색깔을 갖는 게 중요하거든요. 국내 유명 무용수들의 워크숍도, 유럽 무용수들의 워크숍도 다 가서 트레이닝 하며 저도 제 색깔을 찾고 싶죠."

워크숍 수강료는 최소 한 시간당 3만 원. 부담스러운 가격 때문에 아직까지 워크숍에 참여한 적 없다. 공연무대에도 서고 싶지만 문화센터 강의 때문에 공연 스케줄을 따로 빼기 어려워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매달 20일, 21일 통장에서 학자금이 빠져나가야 하잖아요. 이자라도 좀 적으면 살겠는데, 이자도 만만치 않고… 강의라도 안 하면 도무지 방법이 없죠."

꿈을 좇아 무용을 시작했는데 끝을 맺기는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자기 색이 있는 무용수가 되는 것, 무대에 공연을 올리는 것. 박씨에게는 학자금을 갚고 나서나 가능한 일이다.

30대 청춘, 그들의 보편적인 '빚 잔치'

학자금에 발목을 잡힌 30대는 박씨 뿐만이 아니다. 입사 2년 차인 이준희(가명, 31)씨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매 학기 등록금이 400만 원을 훌쩍 넘었다. 4학기동안 학자금 대출을 받자 졸업과 동시에 1700여만 원의 빚이 생겼다. 2010년까지는 이자만 상환해서 버틸 만 했지만 2011년부터 평균 6.5% 이자와 함께 원금상환이 시작됐다. 160만 원의 월급 중 평균 70~100만 원을 학자금 갚는 데 쓰고 있다.

"이자라도 좀 낮으면 몰라. 버는 족족 빚을 갚는데, 거기에 은행 배불리는 이자도 포함된다고 생각하면 열 받고 속상하죠."

이씨는 최소한의 생활비만을 빼놓고 대부분의 월급을 학자금 갚는 데 쓰고 있다. 대학원에 진학해 미술공부를 계속 하거나 유학을 가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욕심이라는 것을 안다. "또  빚을 질 용기가 없어요. 공부를 하고 싶지만 현실을 생각하면 일을 해야죠." 그는 양 어깨 위에 빚을 한 무더기씩 지며 살고 있다고 했다.

박선혜(가명, 32)씨는 다행히 지난해 12월에 학자금 대출을 갚았다. 국립대를 졸업한 박씨는 등록금이 100만 원 안팎이었던 덕에 크게 부담을 가져 본 적이 없다. 대학원을 진학하기 전까지 빚을 져본 적 없다는 박씨는 1학기가 시작되자마자 빚의 부담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국제대학원인 탓에 등록금은 다른 학과에 비해 더 높았다. 4학기 동안 5.7%, 5.8%, 7.3%, 7.8%의 이자와 함께 3000만 원이 넘는 빚이 생겼다. 대학원을 다니며 틈틈이 단기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아르바이트를 했다. 학자금을 갚는 데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지만 돈이 생기는 대로 은행을 찾았다.

지난해 3월 계약직 연구원으로 취업을 하고 나서부터는 매달 100~150만 원을 갚았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꼬박 4년이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빚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대학원에 간 것에 대해 후회해 본적은 없는데, 빚을 안고 산다는 게 참…." 박씨는 말끝을 흐렸다.

30대 직장인 학자금 대출에 대한 정책 고민도...
"등록금을 절반으로 줄이겠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2014년까지 대학 등록금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했다. 상위 20%인 소득 9·10분위 학생에게는 '든든학자금(ICL·취업후 등록금 상환제)' 대출 자격을 부여한다고도 약속했다. 든든장학금과 일반장학금의 대출 금리를 2.9%로 낮추기 위한 예산 469억 원이 투입됐다.

박 당선인이 말하는 반값 등록금은 실제 등록금 자체를 반을 줄이는 것이 아니지 않냐는 지적이 있다. 대출 금리를 낮출 것이 아니라 등록금 자체를 줄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이미 학자금 대출로 고통 받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들이 원하는 건 학자금 대출의 탕감이 아니다. 이들은 은행에서 학자금을 빌린 경우 많게는 7.8%, 한국장학재단을 통한 경우 적어도 5.7%의 이자를 내고 있다. 이 부담만이라도 줄여 달라는 것이다. 30대 청춘이 학자금이라는 빚의 굴레에서 허덕인다. 미래의 대학생, 현재의 대학생만을 위한 정책이 아닌, 30대 직장인들이 갚아나가고 있는 학자금 대출에 대한 정책도 고민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신나리 기자는 오마이뉴스 17기 인턴입니다.



태그:#학자금 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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