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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북면 마산2리 주민들
 원북면 마산2리 주민들
ⓒ 이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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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주는 이 없어 시골 노인들에게는 더욱 춥고 외로운 겨울. 하지만 이런 겨울을 일 년 내내 기다리는 마을이 있어 찾아갔다. 태안군 원북면 마산2리 이른바 효도마을(이장 전경영)이 그곳이다.

"우리 마을 이장 이름이 '경영'인디, 경영을 아주 자~알 해서 경영이여 허허."

연세 지긋한 어르신의 한마디를 들으니 이곳 주민들의 유쾌한 겨울나기가 금세 실감나기 시작한다. 이곳 마을은 40여 가구 70여 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으로 주민 대부분이 65세 이상 노인들로 이뤄졌다.

"누구한테 배워서 하남? 어릴 땐 다 이런 거 직접 만들어 쓰고 그랬지." 마을회관에 들어서자마자 낯익은 짚 냄새가 이방인의 코를 자극한다. 이곳에 옹기종기 모여 아침부터 해가 질 무렵까지 짚으로 싸리빗자루며, 메꾸리, 짚신, 도롱이, 맷판, 귀멍석 등을 만들고 있는 어르신들. 이곳에 쓰이는 짚과 수수는 가으내 농사를 짓고 한쪽에 잘 건조시킨 진짜 지푸라기와 수숫대다.

"처음엔 나이롱으로 만들기 시작하다가 별 의미가 없는 거여. 생각 끝에 우리 것도 살릴 겸해서 짚으로 만들기 시작했지."

그러길 언 10여 년. 이제는 짚풀공예체험장이라는 타이틀로 (사)대한노인회 태안지회측 정식 체험장으로 거듭났을 뿐만 아니라 인근 원이중학교와 자매결연을 체결해 학생들의 과거 학습장으로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렇게 장인들의 순수 노동으로 빚어진 작품들은 팔기보다 대체로 봉사나 체험활동 프로그램으로 쓰여 지는데 맘만 먹으면 하루 수십개도 거뜬히 만든다는 싸리빗자루와 대빗자루는 원북면사무소와 군내 각급 공공기관에 청소용구로 보내진다.

짚신도 종류가 가지각색. 일반 짚신 외에도 눈 내리는 겨울 신는다는 짚장화는 꽁꽁 언 맨발의 추위도 다 녹일 기세다. 여기에 비가 오면 어깨에 걸쳐 쓴다는 도롱이도 옛날 성인들의 멋과 지혜가 묻어난다.

멍석과 맷판 등도 태안문화원 등에 기증해 주민과 학생들을 위한 산교육장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데 이곳 주민들, 꼭 돈을 벌진 못해도 늘 풍족하고 긍정적인 사고는 뭇 후세에 남을 한가지씩의 업적을 이루고 간다는 자긍심과 자부심이다.

"우리 마을이 효도마을이잖여, 자식들이 하나같이 잘 혀"

전경영 이장(67)
 전경영 이장(67)
ⓒ 이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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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 30분이면 어김없이 문을 여는 회관. 부녀자들은 이른 아침부터 손을 놀려 해온 다양한 밑반찬을 들고 회관 문턱을 넘어선다. 서울에 있는 자식들이 보내온 사과며 귤, 술과 음료수는 마을 창고에 늘 든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우리 마을이 효도마을이잖여 그래서 그런가 자식들이 하나같이 잘 혀. 겨울에 자기 부모들 회관서 산다고 여기저기서 물건 사 보내서 우린 겨울도 걱정없어.(흐흐)"

가정노(77) 노인회장과 전흥영(76) 전 노인회장이 이장을 부추기며 창고를 보여주라고 눈짓한다. 반 자의로 의자에 일어선 전경영(67) 이장이 윷놀이가 한창인 아낙들의 방을 지나 좁은 방으로 취재진을 안내한다. 말 그대로 방안 가득 켜켜이 쌓인 쌀이며 과일, 음료가 올 겨울을 든든히 보낼 마을주민들의 부식창고 노릇을 하고 있다.

이렇게 새끼를 꼬며 한나절을 보내기가 어쩌면 지겨울 듯하지만 어르신들이 모인 방에는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밥때가 지났는데 점심을 먹지 못한 이가 있으면 언제든 부엌에서 거나한 한상을 대접하는 가인숙(61) 부녀회장. 방금 먹고 치울 시간에 밥상을 내오기 버거울 법하지만 어찌 사람도리에 귀찮을 수 있겠냐며 방그레 웃어 보인다.

마산2리는 모든 주민이 농사를 짓는 탓에 세 계절은 서로의 안부를 일일이 묻기 어려울 만큼 바쁘지만 가을 추수가 끝난 이후부터 모내기가 시작되기 전인 2월까지 이렇게 전 마을주민들이 모여 겨울나기를 한다.

남정네들의 짚공예를 배우러 종종 고사리 손에 사탕을 사들고 찾아오는 아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군내 유일 담배 안 피고 고스톱 안 치는 마을로도 명성이 자자하다는 마산2리.

"우리 동네 술은 두어 사람 먹는데, 담배피고 화투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슈." 김낙용(70)지도자가 묵묵히 새끼를 꼬다말고 한마디 거든다. "이래봬도 다 전문가지 암만 다 전문가야." 한상일(69) 사무국장도 입을 열었다.

한 사무국장 말대로 이곳은 다 직종이 나눠져 있었는데 한쪽에서 김 지도자가 새끼를 꼬면, 그 옆에선 싸리비를 만든다. 가 노인회장은 짚신전문, 전 전 노인회장은 메꾸리와 토끼인형 전문. 이렇게 7명이 주축이 돼 어느새 벽 한 모퉁이를 채우고 또 채운다.

"여기에 있는 건 일년치여. 우리가 다 만들고 나면 문화원허고, 노인회, 학교에 기증하거든. 싸리비 하나 만들어줄뗑게 가서 살림할 때 써."

"이런 거 어디 신어나 봤겄어? 한 번씩 들렀으면 좋겄어"

가인숙 부녀회장(61)
 가인숙 부녀회장(61)
ⓒ 이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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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인심 한번 훈훈하다. 언제고 배고프면 들르라며 귤 하나 집어주는 따스함이 있는 곳. 이것이 고향의 넉넉한 정 아닌가싶다.

"여기 안 나오면 심심해서 집에 있지도 못 혀. 그리고 말이 나왔응게 허는 말인디, 우리 마을에 게이트볼 선수가 다섯이나 있어. 도민체전, 전국체전 나가면 우리 원북면이 최고지."

전 전 노인회장은 아직도 자랑할 게 많이 남았다면서 마을 이모저모를 설명했다. 가 노인회장은 전날 취재진의 방문소식을 듣고 종이 한가득 빽빽이 마을소개를 써주기도 했다.

"이런 거 어디 신어나 봤겄어? 요즘 애들이 시간내 여기 한 번씩 들렀으면 좋겄어. 이렇게 우리 만드는 짚신 신어보고 만져보는 것도 큰 교육이지."

가 노인회장이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저이들도(주방에서 일하는 아낙들) 읍내 식당가서 일하면 한 달에 200만 원은 벌거여. 만날 우리 밥해준다고 찬물에 손 담그고 하는 거봐. 여기 덜 먹었어도 다들 환갑이라고. 나이 먹어 살림하기 어렵잖여?"

한편에서는 취재진에게 보여준다며 전 이장이 도롱이를 직접 입어 보인다. "허허허" "흐흐흐" 그 모습이 어리숙하고 친근해 보였는지 짚을 만지작거리는 손길도 잠시 잊은 채 한바탕 웃음바다가 펼쳐진다.

"우리가 이거 왜 하냐고?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라고 해두지. 늙은이들이 당당해지려면 뭔가를 할 줄 알아야 하거든. 우리한테 이 짚공예가 그래. 언제든 와. 당당한 노인네들 늙어가는 게 궁금하면."

심심풀이로 시작해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보물을 꼬고 있는 마산2리 주민들. 태안문화제로 거듭난 그들의 새끼꼬기가 있어 오늘의 태안은 밝고 맑다.


태그:#태안군, #원북면, #마산2리, #마을회관, #짚공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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