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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백한고 깔끔한 맛의 개성 만둣국.
 담백한고 깔끔한 맛의 개성 만둣국.
ⓒ 나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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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시는 북한과 맞닿아 있는 '접경도시'다. 판문점과 임진각, 통일전망대 등을 떠올리면 멀게만 느껴질지 몰라도, 실상 서울에서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지척거리다. 

당연히 파주 전역에는 실향민과 그 2~3세들도 많다. 인간은 자신이 먹던 것에 대한 기억이 고집스럽기 마련. 그 자녀들 또한 부모의 입맛을 따라간다. 자연스레 파주 곳곳엔 간이 세지 않은 북한식 손맛이 숨결처럼 스며있다.

아쉬운 점은 파주 역시 현대화와 도시화의 물결을 거스르지 못 한다는 것. 기업형 슈퍼마켓이 동네 점방을 밀어내고, 손맛 담긴 음식을 내놓던 음식점 자리엔 각종 프랜차이즈 업소들이 발을 들인다. 그러려니 하면서도, 어딘가 허물어지는 느낌이다.

입 안을 톡톡 쏘기 보단, 무언가 진득한 맛이 그리워지는 추운 계절이다. 한 잔 술로 한기를 녹이러 찾은 작은 가게에서 막연히 생각하던 그런 맛을 찾았다.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개성식 만두와 얼큰 칼국수다.

'그 맛이 그 맛'인 만두와는 차별화 된 개성식 만두

 흔한 만두들과는 다른 개성만두. 심심한 듯 하지만, 뒤 맛이 개운하다.
 흔한 만두들과는 다른 개성만두. 심심한 듯 하지만, 뒤 맛이 개운하다.
ⓒ 나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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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만들어지는 음식 중 만두만큼 몰개성화 된 것이 또 있을까. 여러 식품회사가 만들어내는 맛은 희한하게도 비슷하고, 또 그것을 받아쓰는 식당들의 맛도 대개가 표준화됐다. 간혹 질 좋은 것이라 해도 고기의 비중이 다소 높을 뿐. 기본적인 맛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파주시 금촌로터리 부근, '통 큰 포차'라고 쓰여 있어 영락없이 흔한 실내포장마차인 줄 알고 들어섰는데, 차림표 가장 위를 차지한 것은 '개성 손 만둣국'이다. 공장표 만두라면 진저리를 치는 일행 중 한사람이 "정말 개성식이냐"고 묻자, "개성이 고향인 어머님께 배운 그대로"라는 답이 돌아온다.

잠시 후 등장한 만둣국. 국물은 개운하다. 흔히 느끼는 '고향의 맛(?)'이 첨가되진 않았다. 해물육수를 썼다고 한다. 만두는 김치만두. 평양식처럼 크지는 않지만, 한 입에 넣을 정도는 아니다. 반으로 가른 후 간장을 쳐서 먹으라고 일러준다.

처음 든 맛은, 뭐랄까…. 북한식으로 표현하자면 '슴슴'하다. 한 종편채널 먹거리 음식 프로그램의 '제가 평소 먹어왔던 맛은 아닌데요'라는 멘트가 생각난다. 아무튼 자연에 가까운 향이 풍겨온다. 옆에 있던 부모님이 북한 출신인 지인은 '바로 이 맛'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린다.

"내가  개성식으로 만두한다는 곳은 이곳저곳 다 다녀봤는데, 제대로 된 가게가 없더라고. 그런데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사실 일반인들이 북한 맛이 어떤지도 모르니까 대충 만들어도 그만이거든."

개성식 만두는 오로지 김치만두라고 하는 주인에게 재료를 묻자, 다 일러줄 순 없고 김치와 숙주, 물기를 짜 낸 두부는 필수로 들어가야 한다고 전한다.

깔끔, 담백, 개운의 삼박자는 개성 음식의 필수요소

 개성칼국수 역시 매콤하지만 개운하다. 곁들이는 김치도 시원하다.
 개성칼국수 역시 매콤하지만 개운하다. 곁들이는 김치도 시원하다.
ⓒ 나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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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다소 싱거웠던 것 같은 만두가 슬며시 끌린다. 두 개가 세 개가 되어가고, 안주를 청하려던 계획을 바꿔 개성칼국수를 청한다. 직접 반죽하고 밀어낸 손칼국수라고 한다. 맑은 맛도 있지만, 술자리니 얼큰함을 택해본다. 1인분 주문도 흔쾌히 받아준다. 만둣국과 칼국수의 가격은 각각 6천 원, 이 정도면 합리적이다.

칼칼하고 시원하다. 면발의 질감도 좋다. 하지만 짜지는 않다. 문득 신장이 안 좋아 위험한 고비까지 갔던 친구가 "매운 것은 괜찮지만, 짠 음식이야말로 건강을 해치는 주범"이라고 경고하던 것이 떠오른다.

아래지방으로 갈수록 다소 짭짤하고, 경기도 위쪽일수록 싱거워지는 것은 지리학이나 음식연구를 전문적으로 하지 않은 이라도 아는 사실. 염도 높은 음식을 멀리하는 게 좋은 현태풍토와도 어울린다.

만두도 칼국수도 마음에 들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빈대떡. 바삭하게 구워진 짙은 색의 전을 기대했는데, 얼핏 보기엔 덜 익힌 듯 노르스름한 빛깔이다. 의아하게 바라봤지만, 한 입 가져가자 신선함이 밀려든다. 숙주가 아삭하고 씻어낸 김치는 단내가 풍긴다. 씹는 맛이 좋아 물으니 찹쌀가루를 넣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기름범벅으로 튀겨지듯 구워 낸 빈대떡과는 완전히 다르다. 주인장은 결국 몸속으로 들어갈 음식인데, 기름을 과하게 쓸 필요가 있냐고 반문한다. 또 일부 업소는 먹음직스런 빛을 내기 위해 색소를 쓰기도 한다고.

"젊은 사람들은 모르지만, 북한 쪽 음식에 맛들인 이들은 기름지거나 젓갈이 많이 들어간 음식을 안 좋아해요. 개성식 음식이요? 깔끔하고 담백하고 개운한 게 특징이죠."

착한 음식 열풍시대, 담백한 북녘음식은 어떨까

 인상적이던 빈대떡. 기름이 많이 들지않아 매우 깔끔하고 신선하다.
 인상적이던 빈대떡. 기름이 많이 들지않아 매우 깔끔하고 신선하다.
ⓒ 나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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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서는 길. 입 안에 느끼함이 돌거나 거북한 트림이 올라오지 않는다. 주방을 들여다 본 것은 아니지만, 가게 안에 써 붙인 '재료나 음식에 색소나 조미료를 쓰지 않는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 듯하다.

한 프로그램의 영향 탓에 착한 음식, 착한 식당이 대세가 되는 시대다. 문제는 소비자들의 입맛이 착한 재료로 신선하게 만든 음식을 받아들일 준비가 덜 되어 있다는 것이다. 강하고 자극적이고 MSG로 대변되는 감칠맛에 지배받고 있는 것.

혹 매일 반복되는 자극적인 맛이 지겨워진다면, 가끔은 자연에 가깝게 만들어낸 전통의 북녘음식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지척에 있는 곳이지만, 평생을 가보지 못한 실향민들의 사무친 그리움이 혀끝으로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개성만두#개성칼국수#파주#빈대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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