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심하게 받은 상처는 커다란 사진 모양으로 마음 속에 새겨집니다. 그래서 지워질 수 없어요. 다만 수사님이 그 아이와 함께 지내면서 아이에게 아기자기한 추억이 될 만한 크고 작은 재미이는 일들을 많이 만들어주세요. 그러면 그런 추억들은 여러 개의 작은 사진 모양으로 만들어져 커다란 상처 위를 덮어버립니다. 아름다운 작은 추억들로 상처가 덮어지는 것이죠. 예를들어 물건을 함께 사러 간다거나, 함께 음식을 만든다거나, 놀이나 운동을 함께 하는 등 하루 중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만드는 거예요."(45쪽)
청소년 교육에 헌신하는 살레시오회 수녀이자 작가인 김인숙의 〈너는 늦게 피는 꽃이다〉에 나오는 재민이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녀석의 나이 다섯 살 때 엄마가 집을 나간 뒤로, 아버지는 술로 나날을 보냈고, 급기야 복지시설에 들어왔으니 부모로부터 커다란 상처를 받았을 게 뻔하다는 것이죠. 그처럼 상처가 큰 아이들을 치유하는 해법은 작은 추억들로 덮어가는 교육이라고 하죠.
이 책이 좋은 것은 청소년들의 스승이요 아버지로 불리는 성 요한 보스코(St. John Bosco)의 예방교육 영성을 바탕으로 어린 아이들과 중고등 학생들을 이끌어간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맨 끝자리에 있는 아이에게까지도 바로 설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격려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교육이라는 것이죠.
사실 요즘의 학교교육은 다들 알고 있겠지만 줄 세우기식 교육이죠. 지나친 표현일지 모르지만 아이들과 학생들을 닭장 속에 가두어 놓고 사육하는 식의 교육이 주를 이루죠. 오늘도 어느 고등학교 2학년 학생과 교회에서 면담을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반 친구가 일본에 가는 비행기 표를 다 끊어놓고 가족과 함께 갈 날짜만 받아놨는데, 학교 담임선생은 그 친구의 의견을 완전 묵살한 채 야간자율학습에만 참여토록 했다고 하죠.
물론 그 담임 선생 나름대로 학교 당국 속에서 속앓이를 하고 있는 고충이 전혀 없을 리는 없겠죠. 그 학교도 성과 위주의 교육에 몰입하고 있을테니 말이죠. 학생들의 창의력이나 자기 소질 개발과는 좀체 거리가 있는 학교 당국의 실정을 무시하지 못할테니 말이죠. 그런 점들이 오늘날 우리나라 교육계의 현실이자 고민거리인 게 사실이죠.
그런데 이 책에 나온 따뜻하고 정감어린 내용들을 보면 아직도 우리의 교육계에 희망이 남아 있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일례로, 도둑질하고 돌아온 중권이를 향한 백준식 분도 수사의 가르침만 봐도 그렇죠. 그 수사는 중권이가 도둑질을 하고 올 때면 항상 방에다 음악을 틀어놓고 노트와 볼펜을 준비시켜 놓는다고 하죠. 스스로 반성하는 기회와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말이죠.
그때 아이들은 생각한다고 합니다. 정말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쇼인지 말이죠. 하지만 그 분도 수사는 한 순간의 쇼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 아이들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죠. 급기야는 그 학생이 훔친 돈을 자신이 그 아이를 대신해서 직접 지불해 주고 돌아온 적도 있다고 하죠. 그러면 열이면 열 모두, 잔잔한 사랑과 감동을 먹고, 서서히 도벽을 중단한다고 합니다.
"돈보스코의 이상은 청소년들을 이해하고, 대화를 통해 그들의 마음을 얻으려는 마음가짐으로 청소년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입니다. 또는 그는 교육자의 삶이 메시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이들은 부모나 교육자가 말한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행동하는 대로 따라합니다. 그래서 돈보스코는 교육자가 아이들의 아버지나 형과 같은 존재로서 교육의 좋은 모델이 되고 존중받기를 바랐습니다."(205쪽)사실 나도 교회에서 중고등학생들을 가르치고 이끌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종교적인 영역과 심성을 담당하는 또 다른 교사라 할 수 있죠. 그런데 예전과 분명하게 다른 것은 아이들의 의사를 그만큼 존중해줘야 아이들도 선생님들을 존중한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강요하고 억압하는 형태로는 아이들의 마음조차 얻을 수 없다는 것이죠.
더욱이 말뿐인 교육으로는 그 어떤 학생의 변화도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학생들 앞에서 손수 모범을 보여주는 삶을 살 때에만 학생들이 그 삶에 감동을 받고, 그 때에만 충분한 자기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다만 '기다림'은 모든 학생들에게 소중한 가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이 책에 나온 아이들과 학생들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문제아들이라 할 수 있죠. 그런데도 이 책에 등장하는 선생님들은 그토록 늦게 필지도 모를 꽃과 같은 학생들을 향해 충분어린 관심과 애정을 갖고 기다려준다고 하죠. 그런 교육자야말로 학생들의 머리가 아닌 가슴에 오래도록 남은 참 스승이라고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