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아, 이 시 진짜 웃긴다. 엄마가 읽어 줄게."통일이 되면 북한 아이들과 친구 되어 좋다고 또 써 보았다가그러다가 통일이 되면 통일글짓기 숙제 안 해서 좋다고 쓴다- <내가 미운 날> 109쪽 <숙제> 중에서<숙제> 시를 읽어주니 첫째가 웃는다.
"엄마, 그 시 쓴 애 진짜 천재다. 어떻게 그런 내용을 시로 쓸 수 있었을까? 나도 해마다 양성평등 글짓기 쓰느라 완전 지겨웠는데."책을 넘겨 받은 첫째도 시를 읽으며 키득키득 웃는다. 웬만한 시는 시시해 하는 중학생인데도 지겨운 글짓기를 하는 아이들 심리를 정확하게 짚어낸 <숙제> 시가 재미있나 보다.
나랑 첫째가 웃는 소리를 들은 둘째가 방에서 만화책 보다 말고 문을 빼꼼 열고는 뭐가 재미있는지 읽어달란다. 평소에 책 읽기 싫어하는 둘째 녀석에게 책을 읽히려고 재미있는 부분을 읽어도 주고 책과 관련된 이야기도 해주며 노력했는데, 이 정도 관심이면 궁금해서라도 책을 읽겠구나 싶다.
"니가 찾아서 읽어봐." 방바닥에 배 깔고 엎드려 있던 녀석이 투덜거리며 기어 나와 책을 집어 간다.
동시집 <내가 미운 날>은 보리 출판사에서 나왔다. 오승강 선생님이 시를 쓰고 장경혜 선생님이 그림을 그렸다. 초등학교 교사인 오승강 선생님은 학교에서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이 시들을 썼다.
책은 <우리 반은 도움반>이라는 시로 시작한다. 오승강 선생님이 '도움반' 담임을 맡은 적이 있는데 그때 일을 시로 쓰셨단다. 그런데 도움반이 무엇일까? 시 아래에 도움반에 대한 설명글이 달려 있다. "일반 아이들과 달리 몸과 마음의 장애를 겪는 아이들을 모아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만든 반"이란다.
우리 집 둘째 학교에도 이름은 다르지만 '도움반'과 비슷한 학급이 있다. 올해 학예회에서 둘째네 반에선 노래 <거위의 꿈>을 수화로 부르는 공연을 했다. 그 공연 때 '특수반' 친구들이 관람석에서 <거위의 꿈> 수화 노래를 같이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진지한 모습에 나까지도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우리 집 아이들은 도움반 친구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관계는 어떻게 맺을지 궁금해졌다. 도움반 친구들과 잘 지내는 것, 명확한 정답이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쉬운 일도 아니고. 하지만 모든 관계는 상대의 마음을 살피고 알아가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도움반 친구들의 마음이 담겨진 시들을 몇 편 골라 읽어주었다.
내가 미운 날내가 술래일 때 아이들은 재미있게 놀다가도 저희들이 술래 되면나를 바보라고 놀리며술래 하지 않으려 합니다.그럴 때 나는 정말 바보처럼 히히 웃고 말지만참지 못하고 울고 달려들 땐 되레 저희들이 울며 집에 갑니다.내가 더 많이 맞았어도 바보 자식이 남의 아들 때렸다고 아주머니들은 우리 집에 달려와서 우리 엄마까지 울려 놓고 갑니다. 그런 날 엄마는 내 등을 어루만지며 섧게 웁니다.너는 아무 죄 없다며다 내 죄라시며 섧게 웁니다.그러나 나는 압니다. 우리 엄마 정말 죄 없습니다. 놀려도 끝까지 참지 못한 내가 죄 있습니다. 끝까지 참지 못한 내가 밉습니다. - 본문 46쪽, 47쪽아이들 들으라고 읽어주는데 마지막엔 내 눈물이 흘러내린다. "다 내 죄"라며 섧게 우는 엄마의 말에도 가슴이 아픈데 "놀려도 끝까지 참지 못한 내가 밉다"는 아이의 말에는 더욱 마음이 아팠다.
슬프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한 시들을 읽으며 아이의 마음도 내 마음도 한 뼘씩은 더 자랐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내가 미운 날> 오승강 씀, 보리 펴냄, 2012년 10월, 144쪽, 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