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노력에 대해서는 아낌없이 지원하고 오히려 선도적으로 당론 발의까지 하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민주통합당 내 전략통으로 불리는 민병두 의원은 지난 15일 장문의
대선 평가 보고서에서 '적과의 동침'을 제안했다. 역발상의 정치를 통해 정책 주도권을 민주당이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대선 패배 이후 표류하던 민주당에서 나온 단비 같은 제안은 호평을 받았고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도 맞장구를 쳤다.
민 의원은 대선평가 보고서를 발표한 지 3일 후인 18일, 비대위 전략홍보본부장 임명장을 받았다. 박근혜 당선인의 100일에 맞서 민주당의 100일 전략의 밑그림을 그리는 중책을 맡은 것이다. 비대위는 민주당 혁신의 초안도 마련해야 하고 새 지도부를 뽑을 전당대회 준비도 마쳐야 한다. 23일 '민병두의 생각'을 염탐(?)하기 위해 그의 의원회관 사무실을 찾았다.
민 의원은 이날 인터뷰에서 민주당의 시급한 혁신 과제로 경직된 이분법 탈피와 태도 혁신을 꼽았다. 그는 "보편적 복지가 선이고 선별적 복지는 악이다? 사안에 따라 보편적 복지를 할 수도, 선별적 복지를 할 수도 있다"며 "경제민주화도 재벌 전체를 악으로 규정해서는 안되고 역기능을 막기 위한 세밀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중간층은 정당에 대해 믿을 수 있느냐를 첫째로 보고 일관성과 신속성 등을 본다"며 "중간층에 소구력 있게 다가가는 태도와 문화, 의제 개발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치 전문가에서 민생 전문가로 세력 교체 이뤄야"민 의원은 새 지도부를 선출할 전당대회의 성격에 대해 앞으로 민주당의 2년을 끌고 갈 노선을 결정하는 장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전당대회에서 주류 교체나 친노 해체, 이런 걸로 싸워봤자 국민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노선을 두고 싸워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노선의 교체, 생각의 교체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후보로 나와야 계파 싸움으로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며 "만약 계파의 대변자를 자임하고 당권에 도전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나서서 '당신은 안 돼'라고 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 의원은 민주당의 노선 정립과 관련해서는 "당 내에서 중도로 가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지만 지난 대선에서 내세웠던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한반도 평화' 이슈, 그 방향이 맞다"며 "단 새로운 시대상황에 맞는, 중간층에 신뢰를 줄 수 있는 포용정책 2.0, 보편적 복지 2.0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야당의 선명성은 반대가 아니라 대안에서 나온다"며 "현재 민주당 안에는 민주화에 관한한 최고의 전문가들이 많이 있지만 앞으로는 진보적 성장과 복지 담론을 주도할 수 있는 훈련된 사람들을 양성해내야 한다"며 "민생 경제를 바꿀 수 있는 민주당의 경제학 교과서, 복지학 교과서를 만들어내야 한다. 정치 전문가에서 민생 전문가로 세력 교체를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 의원은 '안철수 중심의 정계개편'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민 의원은 "안철수 전 후보가 신당 창당을 해도 지방선거에서 안희정, 송영길, 박원순에 대응할 광역단체장 후보를 만들기 어렵다"며 "설령 신당을 만들어도 굉장한 모험이 될 수 있는데 그렇게 가지 않도록 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안 전 후보가 민주당과 연대나 통합을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넓게 그물을 쳐야한다"며 "과거처럼 구애만으로 그를 끌어들일 수는 없다. 민주당을 외면할 수 없게 당의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밝혔다.
민 의원은 끝으로 "비대위 활동 기간 동안 박 당선인의 핵심 공약 5개, 민주당 핵심 공약 5개를 패키지로 입법하자고 제안할 계획"이라며 "그래야 복지 확대라는 시대정신을 거역하려는 새누리당 내 소수의 보수를 고립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민병두 의원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대선 패배 근본 원인은 신뢰 부족"
- 비대위에서 전략홍보본부장을 맡았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처음 맡아달라고 제안해왔을 때 안 한다고 했다. 문 위원장에게 '비대위에서 뭘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문 위원장이 '정치 생명의 마지막을 걸고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겠다. 어떤 혁신안이 들어와도 전당대회에서 통과시킬 것이며 대선 평가에도 절대 개입하지 않겠다'고 장담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했다. '박근혜의 100일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100일도 중요하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에 대해 지난 대선 때 이뤘던 수준의 합의를 이끌어내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그걸 역진 불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게 필요하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 등 강경 보수가 공약 이행을 막아서면 그들을 고립시켜야 한다. 이런 성과를 거둬야 대안 정당으로서 선명성을 갖게 될 것이다.'
문 위원장도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이 신속 처리 법안 만들어서 100일 만에 다 해치운 얘기를 하더라. 민주당도 그런 게 가능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전략홍보위원장직을 맡게 됐다."
- 지난 대선에 대한 장문의 평가보고서를 냈던데, 민주당이 왜 졌나고 보나. "세대 전략의 오류, 지역 전략의 부재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인 이유는 신뢰 부족이다.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적었다. 정권을 우리에게 줬을 때 갖게 될 불안이 변화에 대한 기대보다 컸다. 반면 새누리당에 대해서는 안정된 변화로 봤다. 박근혜 당선인은 1998년에 정치에 입문하면서 정치 역정을 통해 위기 돌파 능력을 국민에게 인정받았다. 민주당은 그런 면에서 '변화'에 대한 가시적 성과를 쌓아온 축적이 약했다."
- 당뿐 아니라 후보 역시 쌓아온 성과가 적다고 보나. "당시 시대정신에 맞는 인물이 (대선 승리)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 후보가 살아온 삶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시대정신과 맞아떨어져야 한다. 대중들은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대통령에 대해서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던, 또 23일간의 단식 등 민주화 운동을 기억한다.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서는 경제 위기 상황에서 '준비된 대통령'을 봤고, 노무현 대통령에게서는 반칙 없는 세상을 봤다. 이명박 대통령 때도 경제가 어려우니 청계천과 현대 건설 신화를 봤다.
문재인 후보는 품성, 자질 다 좋지만 그런 축적이 부족했다. 문재인 후보가 이후에 다시 도전하려면 2017년 시대정신에 걸맞은 성과를 쌓아야 한다."
- 계파 갈등 문제가 대선 패배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하는데. "반성이 의미가 있으려면 반성을 통해 대안이 도출돼야 한다. 계파 갈등은 치명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어느 집단이든 일하는 사람은 소수일 수밖에 없다. 누구든 주류, 비주류가 될 수 있다. 계파 갈등 때문에 선대위에 체계가 없었고 책임 소재가 불투명했다'고 하지만 선대위가 제대로 기능했으면 108만 표를 극복할 수 있었을까. 아니라고 본다. 전략, 프레임, 후보 등 더 중요한 문제들이 있다."
"계파 대변자 전대 나오면 '당신은 안 돼'라고 말할 것"- 대선 패배 후 당 정비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민주당이 가장 먼저 바꿔야 하는 것이 뭐라고 보나. "크게 보면 두 가지다. 우선 선과 악의 이분법을 버려야 한다. 보편적 복지가 선이고 선별적 복지는 악이다? 사안에 따라 보편적 복지를 할 수도, 선별적 복지를 할 수도 있다. 선별적 복지가 보편적 복지로 가는 과정일 수 있다. 경제민주화와 관련해서도 '스마트 핀셋'이 필요하다. 재벌 전체를 악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역할을 인정하고 파생되는 역기능을 막는 세밀한 정책이 필요하다. 햇볕정책도 김대중 대통령 버전을 계속 주장하기보다 '햇볕정책 2.0'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는 태도 혁신이다. 유권자가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쭉 있는데 그 양쪽의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이념적이지 않다. 이들은 믿을 수 있는 정당이냐를 첫째로 본다. 또 정당의 일관성, 신속성 등을 본다. 중간층에 소구력 있게 다가가는 태도, 문화, 의제 개발이 필요하다."
- 새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에서 핵심 이슈는 뭐가 될까. "당 내부에서 집단 지도체제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던데, 집단 지도체제에서도 70~80%의 결정은 당 대표가 내린다. 사실상 당 대표가 주도하는 구조다. 이런 체제 변화 문제보다는 앞으로 민주당 2년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 즉 노선을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 주류 교체, 친노 해체, 이런 걸로 싸워봤자 국민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생각의 교체를 두고, 노선을 두고 싸워야 한다."
- 노선을 놓고 싸워야 한다지만 전당대회에서 각 계파가 당권 경쟁을 벌이다보면 결국 계파 싸움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그래서 '생각의 교체'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전대 후보로 나와야 한다. 익숙했던 것과 작별을 이야기하는 사람, 새로운 생각과 노선을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이 등장하면 경쟁자들도 그에 맞는 포지셔닝을 하지 않겠나. 그래야 계파 싸움으로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만약 계파의 대변자를 자임하고 당권에 도전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나서서 '당신 안 돼'라고 공개적으로 말할 것이다."
- 계파 싸움을 막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보완책도 필요할 것 같은데."계파 선거를 근본적으로 없애기 위해 선거 공영제 도입을 제안할 예정이다. 전당대회에 나서려면 상당히 많은 돈이 필요하다. 자기와 함께 선거할 계보 관리비가 만만치 않다. 계보라는 건 결국, 자기 선거 함께해준 사람한테 신세 갚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거다. 어느 한 계보에 속하게 되면 계보적 관점에서 모든 걸 바라보고, 기득권이 생기게 된다. 우리 당의 지도부가 되려는 사람은 계파 없이 '새로운 생각' 만으로 지도부가 될 수 있게 제도화해야 한다."
"야당의 선명성은 반대가 아니라 대안에서 나와"
- 당이 어떤 노선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당 내에서 중도로 가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지만 지난 대선에서 내세웠던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한반도 평화' 이슈, 그 방향이 맞다. 이념으로서 중도는 중도는 실체가 없다. 하지만 선거는 중간을 잡는 싸움이다. 새로운 시대상황에 맞는, 중간층에 신뢰를 줄 수 있는 '포용정책 2.0', '보편적 복지 2.0'을 만들어야 한다. 더불어 날이 선 언어와도 결별해야 한다. 정치인들은 항상 각이 선, 가파른 언어를 사용해왔다. 그래야 언론이 받아주기 때문이다. 그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 새 지도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나. "민주당 안에는 민주화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들이 많이 있다. 정치학 교과서를 쓴다면 가장 잘 쓸 사람들이다. 앞으로는 진보적 성장과 복지 담론을 주도할 수 있는 훈련된 사람들을 양성해내야 한다. 민생 경제를 바꿀 수 있는 민주당의 경제학 교과서, 복지학 교과서를 만들어내야 한다. 정치 전문가에서 민생 전문가로 세력 교체를 이뤄내야 한다. 야당의 선명성은 반대가 아니라 대안에서 나온다.
또 지방선거 준비도 중요하다. 내년 지방선거는 참패했던 2006년, 승리했던 2010년 사이의 중간 정도 난이도일 텐데 결과는 지도부의 노력에 달렸다. 당권에 도전할 사람이면 지방선거에 대한 그림까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안철수 전 후보에 대해서도 민주당과 연대나 통합을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넓게 혁신의 그물을 쳐야 한다. 안 전 후보가 내년 지방선거를 외면하지는 않을 텐데, 과거처럼 구애만으로 그를 끌어들일 수는 없다. 민주당을 외면할 수 없게 당의 변화를 만들어 내야한다."
- 진보정당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해야 하나."진보정당들은 이번 대선 국면에서 민주당이 그들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더 많은 연대를 얘기할 가능성이 크다. 이게 안 되면 독자 행동 가능성도 높다. 그동안 무상급식부터 해서 우리가 민주노동당 교과서에 있는 내용을 가져다 쓴 게 많다. 이제 민주당 교과서로 승부해야 한다. 정치 혁신을 위한 공동행보도 중요하다. 그래야 분열이 아닌 연대로 갈 수 있다."
- 안철수 중심의 정개개편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크지 않다. 안철수 전 후보가 신당 창당을 해도 지방선거에서 안희정, 송영길, 박원순에 대응할 광역단체장 후보를 만들기 어렵다.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이 얼굴 아닌가. 설령 신당을 만들어도 굉장한 모험이 될 수 있다. 그렇게 가지 않도록 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넓고 깊은 그물을 쳐서 함께 세상을 낚는 어부가 되자'고 설득해야지."
- 비대위 활동 기간 동안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뭔가. "'민주당을 보면 이 정책이 생각난다' 할 수 있는 다섯 가지를 만들고 싶다. 100일 동안 그것만 해도 엄청나다. 또 역발상을 통해 박근혜 당선인이 진보 영역에서 내건 자기 공약을 확실하게 실현하게 해야 한다. 박 당선인의 핵심 공약 5개, 민주당 핵심 공약 5개를 패키지로 입법하자고 제안할 계획이다. 그래야 복지 확대라는 시대정신을 거역하려는 새누리당 내 소수의 보수를 고립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