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종로3가 낙원동에 위치한 다문화거리.
 종로3가 낙원동에 위치한 다문화거리.
ⓒ 김은희

관련사진보기


23일 오후 2시, 서울시 종로 3가에 위치한 다문화거리. 이곳은 시에서 지정한 '노점상 특화거리(아래 특화거리)'다. 양 옆으로 상가가 쭉 늘어선 이면도로에는 노점상들이 드문드문 자리 잡고 있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붐비는 종로 대로변이 멀지 않았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특화거리임을 알리는 그 흔한 표지판 하나 찾기 어려웠다.

"무슨 놈의 특화거리? 장사가 하나도 안 돼. 우린 굶어죽게 생겼어."

특화거리에서 만난 노점상 유성숙(가명·51)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2007년 종로 3가 대로변에서 떡볶이 노점을 열었다. 장사를 시작한 지 한 해가 됐을 즈음, 서울시에서 특화거리 조성을 진행했다. 유씨도 2009년에 지금의 이면도로로 노점을 옮겼다.

특화거리는 서울시와 종로구가 2008년 하반기부터 진행한 '걷기 편한 종로거리 만들기' 사업의 일환이다. 도심 환경개선, 교통 및 거리질서 확립, 불법노점 해결 등이 목적이었다. 노점상들은 '불법'의 굴레를 벗어나고 싶었기에 수십 년 동안 장사하던 자리를 떠났다. 잦은 단속만 아니라면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특화거리에 홍보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종로구의 설득도 마음을 움직였다.

도로사용료 내려 새벽부터 화장실 청소하는 노점상인

 종로3가 낙원동 다문화거리에서 호떡 장사를 하는 유성숙(가명)씨의 도로사용료 체납고지서.
 종로3가 낙원동 다문화거리에서 호떡 장사를 하는 유성숙(가명)씨의 도로사용료 체납고지서.
ⓒ 김은희

관련사진보기


"여기로 이동하면서 호떡 장사로 바꿨어. 근데 버는 돈은 대로변에 있을 때보다 3분의 1밖에 안 돼. 매출이라고 할 것도 없다니까. 내야 할 세금은 늘었는데, 수입은 줄고 있으니 미칠 지경이야. 세금을 내지 못해서 며칠 전에 독촉장도 받았어. 하도 막막해서 (노점을 열기 전) 새벽 6시부터 오후 2시까지 근처 극장 화장실 청소를 한다니까. 그렇게 번 돈으로 여기를 메우는 꼴이지."

실제로 그날 장사를 개시하고 2시간이 넘도록 유씨의 매출은 9000원이 전부였다. 노점을 이면도로로 옮긴 후 계속되는 상황이다. 수입은 눈에 띄게 줄었지만 오히려 나가는 돈은 늘었다. 그가 매달 내야 하는 비용은 총 3가지 항목으로 ▲ 도로 사용료 약 3만 원(도로 사용료는 공시지가에 따라 다르다) ▲ 노점 보관료 13만 원 ▲ 노점 이동료 13만 원이다. 한 달에만 고정적으로 약 30만 원이 나가는 셈이다.

"그것만이 아냐. 재료비, 전기세, 수도세, 가스비 등을 제외하면 진짜 남는 게 없어. 그래서 다들 그만뒀지. 원래는 노점이 83개 있었는데, 지금 30개도 안 남았어. 나는 그만둘 수도 없는 형편이야. 아이들 대학 등록금만 한 학기에 천만 원이 드는데 어쩔 도리가 없으니까. (노점상은) 들자니 무겁고, 놓자니 아까워."

주변 상가업소들과의 마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종로구 창경궁로 노점상들. 오후 2시가 넘었지만 장사도 시작하지 못한 곳이 대부분이었다.
 종로구 창경궁로 노점상들. 오후 2시가 넘었지만 장사도 시작하지 못한 곳이 대부분이었다.
ⓒ 박현진

관련사진보기


낙원동 다문화거리 노점상들의 고충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주변 상가업소들과 마찰도 벌어졌다. 노점상들은 서울시 정책에 따라 이면도로로 옮겨왔지만, 상가업소들은 노점상들에게 불만을 표했다. 2010년에는 종로 3가 일대의 400여 상가업소들이 '다문화거리조성사업 전면백지화 요구' 집회를 하기도 했다.

상가업소들 중에서는 노점상들의 상황을 정확히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노점상과 마주한 상가에서 음식점을 운영 중인 서미숙(가명·59)씨는 "나는 여기에서만 15년을 장사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특화거리를 만든다고 노점상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며 "노점상들은 세금이라곤 한 푼도 내지 않는데 건강한 납세자인 우리가 피해 보는 게 정상이냐"라고 말했다.

종로지역상인연합회 수석부회장 이상철(67)씨는 "특화거리를 조성하며 이동식점포를 280만 원이나 주고 새로 구입했다. 또 도로 사용료도 적게는 연 43만 원, 많게는 연 110만 원까지 낸다"며 "우리는 서울시에 신뢰를 가지고 많은 돈 써가며 특화거리에 참여했다. 그러나 주변 상가업소들과의 마찰도 있고, 턱없는 매출 때문에 점포 유지가 힘들어 그만둔 사람이 넘친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는데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은 낙원동 특화거리 노점상들만이 아니었다. 특화거리 조성은 종로 2가부터 6가까지 걸쳐 시행된 사업으로, 조성현황을 살펴보면 ▲ 종로2가 관철동 '젊음의 거리' ▲ 공평동 '화신 먹거리촌' ▲ 종로3가 관수동 '빛의 거리' ▲ 종로3가 낙원동 '다문화 거리' ▲ 종로4가 창경궁로 ▲ 종로6가 양사길 '화훼 묘목 거리' ▲ 대학천남길 등 총 7개소다. 그러나 7개소 특화거리 대부분은 상황이 열악하다. 창경궁로 특화거리도 마찬가지다.

"88살 먹은 내가 자살하고 싶은 심정이다"

 손님이 없어 하루장사를 접은 상인들이 술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손님이 없어 하루장사를 접은 상인들이 술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 김은희

관련사진보기

24일 오후 3시, 창경궁로도 지나가는 사람을 보기가 힘들었다. 장사를 시작하지 않은 노점이 태반이었다. 이곳은 특화거리 조성 당시 155개 노점이 있었지만, 장사가 되질 않아 54개만이 남았다. 남은 노점도 장사를 접는 날이 더 많은 상황이다.

창경궁로상인연합회 회장 임택선씨는 "특화거리 조성 당시 했던 홍보 약속들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서울시장이 제발 대책 좀 세워줬으면 좋겠다"며 "장사가 안 되니 모여서 술만 마시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창경궁로의 한 포장마차에서는 점포 주인들이 모여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들은 노점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서울시를 향해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장사가 안 되는 곳에 밀어넣고 모른 척한다는 것이었다. 강성갑(88)씨는 "나는 건강식품을 파는데 만날 공만 치니까 소주나 마시고 있다. 88살 먹은 내가 다 늙어서 먹고살 길이 막막해서 자살하고 싶은 심정이다"라고 말했다.

창경궁로상인연합회 대외협력국장 이재술씨는 "돈이 더 들더라도 장사가 되는 곳으로 옮겨줬으면 좋겠다"며 "깨끗하게 재정비해서 우리가 있던 원점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대책 없다는 서울시와 종로구... "노점상들과 소통에 나서라"

서울시는 기자와 한 통화에서 "(특화거리 조성사업) 담당자가 없다"며 타 부서로 몇 차례 전화를 돌리고 나서야 종로구에 문의하라는 답변을 내놨다. 종로구 도시정비과 관계자는 "서울시도 종로구도 특별한 대책이 없다"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도로 사용료 인하뿐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서울시의회는 도로 사용료 인하가 담긴 조례를 통과시킨 바 있다. 조례 시행에 따라 올 1월 1일부터 도로 사용료는 68%의 감면분으로 적용되고 있다.

한국도시연구소 김준희 연구원은 "사실상 특화거리 조성사업으로 노점상들이 내몰렸다"며 "그들이 원하는 대로 자리를 옮겨줄 수 없다면 관광객이 찾도록 시 차원에서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관계당국이 노점상들과 소통에 나서 제반문제를 해결해나가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시와 종로구는 '걷기 편한 종로거리 만들기' 사업을 진행하며 노점상과 주변 상가업소의 상권 활성화를 강조했다. 사업이 마무리된 지 3년이 지난 지금, 200명이 넘는 노점상인은 장사를 놓아버렸다. 남겨진 것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노점상들과 불만스러운 상황의 상가업소들뿐이다.

 오가는 행인도 없이 텅 빈 창경궁로. 장사를 개시한 노점상을 찾아보기 어렵다.
 오가는 행인도 없이 텅 빈 창경궁로. 장사를 개시한 노점상을 찾아보기 어렵다.
ⓒ 김은희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김은희, 박현진 기자는 <오마이뉴스> 17기 인턴기자입니다.



#특화 거리 #종로구#노점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