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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화가 쓴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간다>의 표지.
위화가 쓴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간다>의 표지. ⓒ 문학동네
"일상생활이야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격동시키기에 충분할 만큼 풍부하고 넉넉하다. 정치와 역사, 경제, 사회, 문화, 기억, 감정, 욕망 사삿일 등이 모두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의 소리를 낸다. 일상생활은 광활한 숲과 같다. 숲이 크면 어떤 새든 다 그 속에 있는 법이다" -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서문에서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는 중국의 현실을 날카롭게 파헤쳐온 소설가 위화의 '비허구성 글' 모음집이다.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소설가 위화는 그동안 마오쩌둥 시대를 농민과 민중의 눈으로 재현해왔다. 그가 쓴 소설에는 가혹한 마오쩌둥 시대를 힘겹게 버텨낸 평범한 중국인이 많이 등장한다. 이 책이 반가운 이유는 위화가 그동안 창조한 인물과 사건들의 진원지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화의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내밀한 '작가노트'로 다가올 것이다.

현대중국에서 중국인들의 운명은 마오쩌둥의 손짓 하나,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되곤 했다. 마오 주석이 참새를 가리켜 "저 새는 해로운 새다"라고 하면 전 중국에 참새잡기 운동이 벌어져 전 중국에 기근이 들었던 사건은 유명하다. (참새는 벼를 헤치는 해충을 잡는다) 그래서 위화는 마오쩌둥 시대를 이야기하지 않으면 현대중국을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단어 10개로 중국 설명한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위화 자신이 문화대혁명기를 살기도 했다. 그가 6세가 되던 1966년부터 문화대혁명은 시작되어 그가 16세가 되던 해 끝난다. 문화혁명기, 위화의 아버지는 외과의사, 어머니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병원의 간호사였다.

ㅁ자 형태의 사합원의 1층에는 위화 가족의 집과 영안실이, 2층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일터인 병원이 있었다. 그 당시 중국 농촌의 병원은 대개 뒷마당의 연못에 환자들의 살점과 피를 버려 파리가 들끓는 비위생적인 곳이었다. 어설픈 환경이지만 위화의 가족은 화목하게 일상생활을 누렸다.

그러나 문화혁명이 위화의 집에도 들이닥친다. 위화의 아버지가 자본주의 노선을 걷는 당권파로 몰리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집안에서 자아비판투쟁이 벌어지고 초등학생인 위화와 중학생 형이 부모에게 "마오 주석님을 향해 맹세할 수 있어요?"라며 죄를 추궁한다. 비판투쟁 뒤에는 가족이 머리를 맞대고 스스로를 비판하는 대자보를 쓴다.

위화는 "두 분은 그저 쇼를 하고 당신들의 혁명정신과 정치적 각오를 드러내기 위해 대자보를 쓴 것"이라고 한다. 위화의 부모는 '억고사첨반'이라는 구사회에서 빈민들이 먹던 음식을 일부러 먹으며 이웃에 반성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쇼'도 한다. 라오바이싱(중국서민)들에게 일상생활이 중요했지 마오쩌둥의 대의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은 일상이라는 '풍성한 숲'에 등장한 전기톱이었다.

위화의 소설에는 문화혁명 와중에 억울하게 목숨을 뺏긴 인물이 꼭 등장한다. 홍위병들과 분노한 대중은 '구시대적인' 잔인한 방법으로 그들을 학대하고 죽인다. 그런데 그 끔찍한 사건들을 그리는 위화의 펜 끝에는 놀랍게도 분노가 없다. 그는 문화혁명의 광기보다도, 그 광기를 견디는 중국인의 인내심, 지혜, 끈기와 작은 기쁨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 작은 기쁨은 국수 한 그릇이나 돼지간볶음 한 접시로 응축된다. <사람의 목소리는...>의 한 장인 '차이'에서 위화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세대 사람들에게 유년 시절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뜻밖에도 우리의 기억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하나같이 과거에 어떤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것이 가장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먹을 것을 제외하면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기억이 거의 없는 셈이다"

위화의 소설에서 음식의 존재감은 주인공들 못지않다. <허삼관매혈기>의 돼지간볶음과 황주, <인생>의 국수는 존재감이 크다. <형제>는 만두즙, 삼선탕면, 송강이 이광두에게 해준 맨밥 등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가난하고 힘든 시절 한 접시의 요리 의미는 간단치 않다. 1960~70년대를 살아본 한국인 치고 짜장면 한 그릇에 얽힌 사연 없는 사람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문화대혁명기에 살았던 중국인들에게도 음식과 얽힌 사연이 많나보다.

<허삼관매혈기>에서 갑작스러운 기근에 식구들이 굶주리자 허삼관은 자기 피를 팔아 처자식에게 국수를 사 먹인다. <인생>에서 공산당 군대는 포로들에게 만터우를 나눠준다. <형제>에서 선하고 우직한 송강은 돈이 부족해 반찬을 마련하지 못하게 되자 머리를 굴려 소금간만으로 훌륭한 밥을 만들어낸다. 훗날 중국에서 알아주는 거부가 된 이광두는 어떤 음식도 배고팠던 옛날, 송강의 '맨밥'보다 맛있지 않다고 느낀다. 

인민의 상처를 자기 상처로 받아들인 위화

물질적으로 풍부해진 지금은 흔하디 흔한 음식이지만 저 음식에 담긴 의미는 크다. 국수에는 아버지의 '희생', 만터우에는 중국민중의 '연대의식', 맨밥에는 '형제애'가 담겨 있다. 광기의 시대를 버티게 하는 건 사람들의 희생과 연대였다. 위화 세대의 사람들이 과거를 회상하며 어떤 음식을 그리워하는 건 그 '보살핌과 연대의 맛'을 그리워하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바람은 마오쩌둥 시대에 대한 향수로 번지게 된다. 중국의 한 언론사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5%가 마오쩌둥이 살아오면 좋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이 높은 숫자가 어려운 시절, 서로 의지했던 '연대'의 기억이 시대의 아이콘 마오쩌둥에게 투영된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85%라는 숫자는 마오쩌둥 이후의 중국사회가 생각만큼 행복하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현재 중국에는 약 100만 명의 억만장자와 약 1억 명의 극빈층이 있다. 특히 해안가 도시와 내륙 농촌의 차이는 크다. 중국의 어린이날 CCTV가 방영한 방송에서, 도시의 어린이는 '진짜 보잉비행기'를, 서북지역의 어린이는 '흰 운동화'를 선물받고 싶다고 했다. 바나나를 사달라고 보채는 아이에게 바나나 사줄 돈이 없었던 부부는 부부싸움 끝에 두 사람 모두 자살한 일도 있다. 중국의 경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했지만 가난한 중국인들의 고통은 완화되지 않고 있다.

위화가 이런 '개인의 고통'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 계기는 19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위화는 남부지방에서 '발치사'(이 뽑는 사람)로 한 병원에서 일하게 된다. 당시 마오쩌둥은 강력한 공공위생 방역체계를 세웠다. 그러나 예산이 부족해 전국의 병원들은 주사기를 재활용했다. 위화가 속한 병원도 마찬가지였는데 수차례 사용한 주사바늘은 구부러져 주민들에게 주사를 놔주면 살점이 뜯겨 나오기 일쑤였다. 특히 위화는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주사를 놔준 뒤 괴로워한다. 그때부터 그는 주사바늘을 평평하게 갈기 시작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고통에 울부짖던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서야 노동자들의 고통을 의식할 수 있었다. 나는 왜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듣기 전에 노동자들의 고통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일까? 내가 노동자들과 아이들에게 예방주사를 놓기 전에 먼저 구부러진 주삿바늘을 내 팔에 찔러보았더라면, 그리고 바늘에 달려 나온 나의 피와 살점을 보았더라면 어땠을까? 아이들이 고통으로 울부짖기 전에, 노동자들이 극심한 통증을 못 이기고 신음하기 전에, 그 고통이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었을 때, 나는 진정으로 인생이 무엇인지, 글쓰기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세상에 고통만큼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쉽게 소통하도록 해주는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통이 소통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사람들의 마음 속 아주 깊은 곳에서 뻗어 나오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나는 중국의 고통을 쓰는 동시에 나 자신의 고통을 함께 썼다. 중국의 고통은 나 개인의 고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도, 고통을 마주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작가는 독자와 타인의 고통 사이에 다리를 놓기도 한다. 위화는 그런 류의 작가다. 그의 소설을 읽는 건 허삼관, 푸구이, 송강, 이광두의 고통과 소통하는 일과 같다.

사실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고통은 잊히고 기억도 희미해진다. 남는 건 그 시절에 누군가 나를 위해 마련해준 '국수 한 그릇'이다. 위화는 그 국수 한 그릇을 쓴 게 아닐까?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문학동네(2012)


#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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