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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 청와대 경호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 것에 대한 반감 때문인지 몰라도, '문민정부'를 내새웠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자신을 경호하는 경호실을 '장관급'에서 '차관급'으로 낮췄고, 민간인 출신을 경호실장으로 임명했다. 물론 이내 장관급으로 격상시켰지만.

경호실장이 실질적으로 차관급으로 임명된 것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부터다. 이명박 대통령은 아예 정부조직개편을 하면서 경호실을 대통령실 소속기관 기구로 축소시켜 '경호처'로 만들었다. 오로지 '대통령 경호전담기구'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경호실을 '장관급'으로 격상시켰다.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대통령실을 비서실로 개편함에 따라 경호실을 비서실에서 분리하고, 경호실장을 장관급으로 보하고자 한다"고 25일 밝혔다. 15년만에 차관급에서 장관급으로 격상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청와대 비서실은 비서실장, 국가안보실장 등과 더불어 3명의 장관급으로 운영된다.

왜 박근혜 인수위는 지난 21일 청와대 조직개편을 발표한지 나흘만에 경호실을 장관급으로 격상시켰을까? <한겨레>는 26일 이명박 정부에서 '경호 전담 기구'로 축소된 경호처는 그동안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위상을 높이고, 권한을 강화해줄 것을 당선인 쪽에 강하게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인수위 업무보고 때도 경호처는 이를 강조했던 것으로 전해져 이번 경호실 격상에는 부처 이기주의가 강하게 개입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같은 청와대 경호실 격상에 대해 우려가 나온다. 민주통합당 김현 대변인은 논평을 내어 "경호실장을 장관급으로 올리는 것은 청와대 비대화와 또다른 권력화를 초래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면서 "청와대 권한을 줄이겠다는 당선인 약속과도 괴리가 있고, 국민과의 소통에 대한 우려가 왜 가시지 않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라며 비판과 우려를 드러냈다.

대통령 경호는 중요하다. 국가원수 경호 강화를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대통령 경호실이 한 때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했던 트라우마가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경호실 격상은 반대를 위한 반대로만 치부할 수가 없다. 특히 박근혜 당선인이 퍼스트레이드로 활동할 당시 차지철 경호실장은 박정희 대통령 다음과는 권력자였다.

1979년 부마항쟁 당시 차지철은 "캄보디아에서는 300만 명을 희생시켰는 데 우리는 100~200만 명쯤 희생시키는 것쯤 별 문제겠습니까"라고 했었다. 주군 박정희를 위해서는 대한민국 국민 수백만명은 죽여도 아무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 차지철을 박정희는 신뢰했다. 하지만 그해 10월 26일 김재규에게 둘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통령이 자신을 경호하는 이에게 모든 것을 다 줌으로써 낳은 비극이었다.

전두환도 별 다르지 않았다. 전두환 일파에게 "의리의 사나이"로 불리는 장세동은 오로지 전두환을 위해 존재할 정도로 충성심은 충복 중 충복이었다. 장세동은 수도경비사령부 30경비단장으로 있으면서 전두환과 함께 1979년 12·12 군사 반란 주역이 된다. 전두환은 그에게 경호실장, 국가안전기획부장을 선물했다. 1988년 5공 청문회 당시 노무현 의원의 칼날 같은 질문에도 "기억이 안난다"로 모르쇠 작전을 폈다. 마지막까지 주군 전두환을 보호한 것이다.

특히 안기부장 때인 장세동은  통일민주당 창당대회가 열렸던 1987년 4월 20일부터 24일까지 20여개 지구당에 폭력배들이 난입하여 기물을 부수고 당원들을 폭행한 일명 '용팔이사건'으로 지난 1993년 감옥에 갔다.

조사를 받으면서 그는 "어른을 구속하려 들 경우에는 내가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는 한이 있더라 도 막을 것이고 그러지 못한다면 나는 어른의 뒤를 따라가겠다", "가만히 있어라 내가 링에 올라가면 모두가 불행해진다", "용팔이 사건에는 나 이상의 배후가 없다"는 유명한 어록을 남겼고, 출소 후 "각하 휴가 잘 다녀왔습니다"는 말은 아직까지 사람들 입에 회자되고 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의리의 싸나이'라고 하지만 봉건왕조이면 몰라도 민주공화국에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15년만에 경호실장이 장관급으로 격상되면서 혹시나 옛 경호실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물론 박 당선인은 2인자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청와대에 장관급이 3명이므로 권력이 분산되어 경호실장이 박정희, 전두환 때처럼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박 당선인도 아버지 때 차지철이 남긴 상처가 얼마나 컸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 안위를 맡은 기구가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된다면 언제든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 무엇보다 경호실장이 장관급이 되면 국민을 안위를 책임지는 경찰청장보다 더 지위가 높다. 대통령 한 사람 경호를 책임지는 경호실장이 5천만명 치안을 책임진 경찰총수보다 직급이 높은 것은 국민을 입에 달고 사는 박 당선인 생각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청와대#경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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