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아들이 어른이 됐을 때라도 (세상이) 공평해졌으면 좋겠어요. 복기성씨 같은 비정규직들이 정규직이 되고, 사람이 존중받길 바랄 뿐입니다."11살짜리 아들의 양어깨를 꼭 잡은 채 장석표(45·충청북도 청주·회사원)씨가 말했다. 그는 26일 아들과 함께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공장 근처 철탑농성장을 찾았다. '쌍용차 범국민대책위원회'와 '쌍용차 경기비상시국회의'가 마련한 2차 희망버스가 서울과 인천 등에서 '2차 희망버스'가 출발한 날이었다.
장씨는 이날 다른 교통편을 이용해 왔지만, 희망버스에 오른 사람들과 마음은 비슷했다. 그는 "사람이 다 존중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함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현장이 이곳"이라며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숨을 고를 때마다 폐부에 스며드는 찬 공기 탓에 힘들 정도로 추운 날이었다. 차가운 아스팔트에 엉덩이를 붙인 사람들은 목도리와 마스크, 장갑 등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수시로 핫팩을 얼굴에 대고, 입김을 불어 손을 녹이는 이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약 500명(주최 측 추산) 넘는 사람이 평택역 앞을, 쌍용차 평택공장 옆 농성장을 채웠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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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어른 됐을 땐 비정규직이,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이길"
"힘을 드리고 싶어서 왔어요."신성호(19)씨가 수줍게 말했다. 그는 이날 생애 처음으로 집회에 참여했다. 올해 3월, 한신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할 예정인 신씨는 선배·동기들과 함께 '새내기 진보캠프'에 참여하며 쌍용차 문제를 알게 됐다. 그는 "쌍용차 직원들의 잘못이 아닌데 정리해고 당했고, 국가도 (노동자들을) 돕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또 쌍용차 사례를 접한 후 "제 잘못이 아니어도 회사가 경영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구조조정을 강행하면 나도 해고자가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쌍용차 상황이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신씨는 평택역 앞 집회 내내 '여러분은 새 희망을 쓰고 계십니다'란 푯말을 들고 있었다.
통일운동가 백기완씨는 이날 마이크를 잡고 "노동자가 1700만 명이라는데 뭘 하느라 정권을 빼앗기고, 이 할아버지를 또 여기 불러 왔냐"며 사람들을 꾸짖었다. 그러나 곧이어 "무슨 말이 필요하냐"며 "이제부터 행진이다, 내가 죽어도 따라가겠다"며 강한 연대 의지를 드러냈다.
68일째 철탑농성 중인 한상균 전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집회 참가자들과 한 전화 통화에서 "(무급휴직자만 복귀하게 됐을 뿐)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 무엇이 끝났단 말이냐"며 "쌍용차 사태 국정조사는 (문제 해결을 위한) 첫걸음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시민사회계는 그동안 쌍용차 사태 국정조사를 실시해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당초 부정적인 모습이던 새누리당도 지난해 12월, 대선 직후 국정조사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난 10일 쌍용차 사측과 기업노조가 '3월 1일부터 무급휴직자 복귀'에 합의하자 새누리당은 공공연하게 '국정조사 반대' 뜻을 나타내고 있다.
민주통합당 김기준·김현미·은수미·인재근·장하나·한명숙 의원, 진보정의당 김제남·심상정·정진후 의원은 이날 집회에서 한 번 더 국정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은수미 의원은 "쌍용차 회계조작 의혹, 부당해고, 어느 것 하나 밝혀지지 않았다"며 "(국정조사) 약속은 지켜져야 하고,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심상정 의원 역시 "쌍용차 국정조사는 (고공농성 중인) 울산의 현대차 비정규직과 충남 아산 유성기업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에게 꿈을 거세당한, 이 땅의 모든 고통들을 바로잡기 위한 출발"이라고 얘기했다.
"쌍용차 국정조사는 이 땅의 모든 고통 바로잡기 위한 출발"
오후 4시 15분 평택역 앞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곧바로 행진을 시작, 두 시간 가까이 걷고 또 걸은 끝에 쌍용차 철탑농성장에 도착했다. 쌍용차 가족대책위원회가 준비한 따뜻한 국과 밥으로 허기를 달랜 사람들은 곧이어 '그리움이 또 다른 그리움에게'란 주제로 문화제를 열었다.
멀리 철탑에서 손을 흔드는 한상균 전 쌍용차지부장, 문기주 쌍용차지부 정비지회장, 복기성 쌍용차지부 비정규지회 수석부지회장을 바라보며 무대에 오른 정희성 시인은 같은 제목인 자신의 시를 낭독하며 '희망'을 말했다.
"어느 날 당신과 내가날과 씨로 만나서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우리들의 꿈이 만나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어느 겨울인들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어느 날 당신과 내가 만나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