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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형혁신학교로 지정된 신설학교에서 2년째 뜻을 같이하는 교사들과 꿈의 학교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는 아이들과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이 함께 서울형혁신학교를 만들어가는 이야기입니다. - 기자말

혁신학교의 학업성취도평가 결과, 바닥이라고?

지난해 말 교육과학기술부는 2012년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 발표 자료를 인용한 한 보수언론은 '혁신학교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바닥이고, 기초학습미달자가 많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기사를 보니 혁신학교를 폄하할 목적으로 보도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와 혁신학교, 그리고 우리나라 학교를 둘러싼 사정을 제대로 알면 이런 기사는 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기사에는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상위학교 명단이 실려 있었습니다.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상위학교를 보니 대부분 과학고와 외국어고같은 특목고나 자율형 사립고, 또는 우수아를 유치해서 운영하고 있는 지방의 지역중점학교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밖에 일반학교도 부유층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산다는 곳에 있는 학교였습니다. 초등학교를 살펴보니 거의 다 사립학교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더군요. 결국 이 학교들은 대부분 학교 입학 때부터 우수한 아이가 들어간 학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학교 아이들 성적이 우수한 까닭이 학교에서 공부를 잘 가르쳐서라기보다 사교육의 힘이라는 것은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이 세가지 평가지로 작년 우리나라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이 같은 시간에 일제히 평가를 받았습니다. 오지선다형과 단답형 평가문항만으로 그것도 국어와 영어와 수학교과만으로  창의성을 앞세우는 이 시대 초등학생에게 필요한 '학업'과 '성취도'를 평가한다는 자체가 모순이고 시대착오입니다.
▲ 2012학년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지 이 세가지 평가지로 작년 우리나라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이 같은 시간에 일제히 평가를 받았습니다. 오지선다형과 단답형 평가문항만으로 그것도 국어와 영어와 수학교과만으로 창의성을 앞세우는 이 시대 초등학생에게 필요한 '학업'과 '성취도'를 평가한다는 자체가 모순이고 시대착오입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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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학업성취도가 낮은 학교가 혁신학교로 지정 됩니다

혁신학교는 주변 지역 여건이 좋지 않은 학교를 중심으로 우선 지정됩니다. 특히 고교의 경우는 특목고와 자사고·특성화고에도 진학하지 못한 아이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서 가는 학교가 일반학교인데, 이 일반학교가 혁신학교로 지정이 됩니다. 그러니 혁신학교라서 학업성취도가 낮은 것이 아니라, 학업성취도가 낮은 학교가 혁신학교가 됩니다.

일반고에 근무하는 교사들 얘기를 들어보면, 일반학교에 진학할 수 밖에 없는 학생들의 학업에 대한 흥미도와 자존감이 상대적으로 많이 뒤처져 있어서 수업을 진행하는데 매우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어려움 속에 있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학습에 대한 흥미와 자존감을 높여줘서 자신의 미래에 대한 힘찬 설계를 하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학교가 바로 혁신학교인 것이지요. 그러니 학업성취도평가 결과가 낮다는 것 하나로 혁신학교를 바로 폄하할 수 없습니다.  

학업성취도평가 결과로 학교를 평가하는 것이 문제

여기서 학교를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하나로 '좋다' '나쁘다' '성공했다' '실패했다'로 나누는 것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학업성취도 평가는 여러 과목 중 단지 국·영·수 교과를 오지선다형 중심의 지필 평가로 보고 있습니다. 서답형 문제도 나오지만, 단순한 암기 중심 문제입니다. 아이들의 '학업'이 왜 '국·영·수'만일까요? 그것도 오지선다형과 단답형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아이들을 곧 '학업성취도'가 높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것도 아이들이 살아가는 환경에 따라 다른 공부 내용과 방법에 상관없이 전국의 모든 학교 아이들에게 똑같은 문제로 보는 일제고사로 '학업'과 '성취도'를 얘기한다는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져도 한참 뒤떨어진 얘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이런 방법으로 치룬 '학업성취도 평가'로 학교를 '잘 한다' '못한다'로 평가하게 되면, 학교는 평가 결과에 족쇄가 채워져서 창의적인 교육을 하기가 힘들어집니다. 평가는 학습을 돕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거꾸로 평가방법이 수업의 내용과 방법을 규정하게 돼 오지선다형과 단답형 중심의 학업성취도평가에서 점수가 잘 나오는 방법으로 수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토론과 토의 중심의 협력수업이나 활동과 과정 중심으로 학습을 하기보다는 문제풀이식과 암기식 수업으로 기능과 결과 중심으로 수업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에서는 토론과 토의 협력 중심의 창의성과 인성을 중시하는 교육을 강조하면서 평가는 이와 다른 지필평가 중심의 일제고사로 학업성취도 평가를 하는 교과부 스스로 큰 모순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오지선다형과 단답형 중심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점수를 많이 받는 방법은 다양한 수업을 열심히 해서 얻을 수 없고, 기출 문제를 중심으로 문제 풀이를 많이 하면 점수를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각 시·도 학교에서는 국가수준학업성취도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려고 초등학생들에게까지도 0교시와 야간 학습, 토요일에도 나와서 문제풀이를 시키는 일이 많았던 것입니다. 게다가 교사가 커닝을 조장하거나 점수결과까지 조작하는 일도 있어왔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렇게 점수를 얻어서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면 학교는 이름이 높아져서 좋지만, 학생들에게도 과연 좋은 일일까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지필 평가에서 점수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식의 공부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공부를 많이 하면 할수록 아이들은 점점 더 공부에서 멀어져갑니다.

'학습 부진아 제로화 정책' 문제 많습니다

'기초학습미달자'와 학습 부진아가 있으면 학교 평가에서도 낮은 점수를 받게 되니, 학교마다 '기초학습미달자'와 '학습부진아'를 '제로화'하겠다고 별도의 예산을 들여서 부진아 담당 강사를 채용, 방과 후에도  아이들을 남겨서 지도하게 합니다. 학습 부진아는 제 시간에 학습을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인데 방과 후에 다시 아이를 불러서 공부를 시킵니다. 그것도 학습 부진아 판별 대상과목인 국·영·수를 위주로 합니다. 아이들을 위한다고 하는데 정작 아이들에게는 도움이 안 됩니다. 그렇게 열심히 이이들을 붙잡고 공부를 시키면 학교에서 보고하는 '기초학습미달자' 숫자에서 빠지게 될지 모르지만, 정작 아이는 괴롭고 힘듭니다.

아이들을 남겨서 전담강사한테 공부를 또 시켜서 기초학습미달자가 없어지면 다행입니다. 그러나 기초학습미달자가 되는 원인은 공부를 안해서 머리가 나빠서라기보다 다른 데 원인이 더 많습니다. 첫 번째 원인은 국가수준 교육과정에 있습니다. 아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내용을 많이 학습하게 하고, 학년에 기준을 둬 그 학년에 배운 것을 그 학년에 못하면 '부진아'라는 낙인이 찍히게 됩니다.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서는 교과마다 '단계'별로 학습목표를 세워놓고 정해진 목표에 이르지 못하는 아이들을 '부진아'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부진아가 되는 두 번째 원인은 심리적인 원인으로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지 않은 아이들이 많습니다. 특히 부모에게 버림받고 할머니나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조손가정 아이들 같은 가족이 해체된 가정의 아들이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생존의 위협을 느끼면서 심리적으로 불안한 아이들이 공부에 마음이 갈 턱이 없으니 이런 아이들이 학습 부진아가 되기 쉽습니다. 학습 부진아가 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상황과 괴로운 마음은 헤아리지 않고 오직 '학습부진아 제로화'만 부르짖고 있는 것이 학교 현실입니다.

일등과 꼴찌로 나누지 않는 학교

학습부진아를 없애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학습부진아를 처음부터 만들지 않는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설령 국·영·수 부진아라 할 지라도 무시당하지 않고 차별받지 않고 다른 소질을 찾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교육하는 게 합당하지 않을까요. 아이들을 일등과 꼴찌로 처음부터 나누지 않는 학교, 비록 꼴찌라 할지라도 자신의 뜻을 펼치면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학교가 바로 혁신학교입니다.

서울형 혁신학교인 우리 학교는 '부진아'라는 말을 아예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공부가 느린 아이' '느리게 배우는 아이'라는 말도 생각해봤는데, 이런 말도 역시 필요가 없는 것이 대체 '부진'에서의 '진'의 기준이 무엇이며, 아이들을 왜 '부진아'와 '부진아 아닌 아이'로 구분을 해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수학 점수가 낮은 아이들은 자신을 '나쁜' 아이, '못난' 아이, 심지어 살 가치가 없는 아이로 여기기까지 하면서 자신을 비하하고 학대합니다. 그러나 수학을 못다고 '나쁜 아이', 특히 '처단할 아이'는 아닙니다. 단지 수학을 못하는 특징을 가진 것뿐입니다. 수학은 못해도 분명 그 아이가 관심 있어하는, 잘 하는 무언가가 있을 터인데 수학점수만 강조한 나머지 다른 잘 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심지어 아이 전체를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혁신학교는 학업성취도 평가 점수가 낮다고, 수학과 영어를 못한다고 혼내고 잘 하라고 하는 학교가 아니라, 학업성취도 평가 점수가 '기초학습미달자'여도 수학과 영어를 못해도 그 아이에게서 잘 할 수 있는 것을 끄집어내어서 세상의 주인으로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을 키우려는 학교입니다.

그러니 학생들에게 필요한 이 시대의 진정한 '학업'을 제대로 평가하지도 못하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점수와 학교 등수로 혁신학교를 폐지해야 한다거나 폄하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더불어서, 이 시대의 학생들에게 필요한 '학업'을 제대로 평가하지도 못하고, 전국의 모든 학교가 한 날 한 시에 똑같은 문제로 평가를 받아서 학습 내용과 방법을 획일화시키고 창의성을 말살시키면서, 평가 결과로 전국의 모든 학교를 점수로 서열을 매기는 부작용만 북돋우는 역할만 하는 시대착오적인 일제고사는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문제많은 일제고사를 없애겠다는 공약을 이미 내 세운 바 있습니다. 공약대로라면 올해부터는 학교 교육을 망치고 아이들을 행복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는 일제고사를 우리 아이들이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되겠지요? 꼭 그렇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태그:#서울형혁신학교, #학업성취도평가, #일제고사, #학습부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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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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