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개표방송을 보다 말고 방에 들어가 홀로 멘붕을 겪었을 사람들은 이튿날 날이 밝자 하나둘씩 학교나 일터로 나가 혼미한 정신을 추스르고자 애를 썼다. 그러나 그날 하루만큼은 멍 때릴 수밖에 없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남들은 뭘 하나 궁금해져 SNS를 기웃거리거나, 포털사이트에서 헛된 클릭질을 할 때 걸려왔던 한 통의 전화.
"이따 저녁때 술 한 잔 어때?"이처럼 감격스러운 제안이 또 있을까? 멘붕의 심정을 오롯이 나눌 동지들이 있다는 걸 왜 잊고 있었는지 초췌한 얼굴에 희미한 웃음 한 가닥 띄웠을 그들. 자칭타칭 진보진영에 속해있던 이들은 대선 후 술집에서 모이는 횟수가 잦아졌다.
술과 이웃, 토론과 배움이 있는, 세상에서 가장 큰 집
이런 사람들이 모이기에 딱 좋은 장소가 있다. 바로 민중의 집. 노동자들이 퇴근 후 맥주 한잔하러 들르는 곳, 노조원들이 회의와 집회 준비를 할 수 있는 곳, 진보정당이 정치토론회를 열 수 있는 곳, 지역주민이 영화를 보거나 요가를 배우는 곳, 동네 꼬마들이 방과 후 예체능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민중의 집이다.
'술과 이웃, 토론과 배움이 있는, 세상에서 가장 큰 집'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는 이 책 <민중의 집>(레디앙, 2012)은 '마포 민중의 집'을 운영하며 진보정당에 몸을 담고 있는 저자가 민중의 집 본고장인 유럽으로 건너가 전역에 흩어져있는 민중의 집을 찾아 방문하고 관계자들을 인터뷰한 45일간의 기록이다.
알음알음의 소개, 인터넷에서 찾은 주소나 전화번호 한 줄, 그도 저도 안 되면 내비게이션에 나오는 상호를 보고 무작정 찾아가 문을 두드리는 열정으로 스페인, 이탈리아, 스웨덴의 여러 도시들을 방문하였다. 저자가 찾아간 수십 개의 민중의 집은 그 나라의 정치현실에 따라, 지역민의 참여도에 따라 흥하기도 망하기도 하는 상태였다.
유럽의 민중의 집 실무자들은 멀리 동양에서 민중의 집을 배우겠다고 찾아온 낯선 손님을 신기해하며 반갑게 맞이해 준다. 진보정치를 꿈꾸며 활동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국적과 피부색과 언어의 벽을 허물고 강한 연대감을 느끼게 해준다.
저자는 한때 찬란했던 이탈리아 공산당의 후예들이지만 지금은 보수정권의 우세와 중도정당의 우경화, 그리고 거듭된 좌파정당의 분열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이탈리아 지역정당 활동가들과 면담을 하며 우리나라 진보정당의 성적표를 뼈아프게 되새김질하고, 좌파 정당의 쇠락으로 '민중의 집=좌파의 집'의 등식이 깨진 남유럽의 현실을 목도한다. 그러나 이념적 성격은 퇴색했어도 그곳엔 "술과 음식, 놀이와 유흥이 빠지지 않는 흥겨움이 살아있고, 일상과 놀이와 정치를 하나로 합쳐 지역공동체의 삶 생활의 모든 것을 담아온 역사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스페인 민중의 집은 "사회주의 정당과 노조를 탄압했던 과거 프랑코 정권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면서 역사적 경험이 소실"되었고, 이 점은 "현대의 사회노동당과 노총의 결별과 함께 민중의 집의 현재적 복원의 큰 걸림돌"이 되고 있었다.
한편 북유럽 스웨덴 민중의 집 출발은 여느 나라와 다르지 않지만, 세계에서도 유명한 복지국가체계가 어떻게 지역사회의 민주적 공동체를 기반으로 발전했는지 보여주는 궤적과도 같다. 사민당과 노총의 성장기반이 되었던 스웨덴 민중의 집은 노동자와 도시 서민에게 문화, 유흥, 평생교육, 만남과 연대의 공간으로 그 규모와 서비스를 준관공서처럼 키워서, 현재는 소외된 이주노동자들을 품는 장소의 역할도 하고 있다. 시대는 흘러도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차별받지 않는 연대의 정신"이라는 민중의 집 핵심철학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음울 좌파에서 명랑 좌파로마지막 장에 저자의 홈그라운드인 마포 민중의 집을 소개하면서 책을 마무리한다. 2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 2008년에 세워진 마포 민중의 집은 마포 지역 내 6개의 노동조합, 6곳의 상인회, 문화연대, 진보신당 등 16개의 지역단체가 회원단체로 등록되어 있다. 서로가 가진 것을 돈을 통하여 나누지 않는 비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세탁소 아저씨가 다리미질 강좌를 열고, 호텔노조의 요리사들은 지역주민을 위한 요리교실을 연다. 돈에 의한 관계 형성이 아닌 자신이 내어줄 수 있는 '무엇'을 통해 관계를 형성하는 것. 그리하여 무한 경쟁 자본주의와는 차별을 두는 협업과 비자본주의적 교류방법과 대안적인 생활 문화를 창출해내려고 하고 있다. 그것이 전 세계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민중의 집을 만들고 가꾸었던 좌파들의 공통된 노력이었다.
여기에 오락과 흥겨움이 곁들여지면 완고하고 음울했던 좌파는 유연하고 명랑한 좌파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변에 전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대한민국 진보의 부침을 다른 이유보다도 '기초 체력의 부족'으로 꼽으며 '현장에서 진보와 대중이 서로 소통하고 힘이 되어주는 사업과 공간을 창출하는 것'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주민, 지역운동, 진보정치, 협동조합, 도시 공동체, 지역네트워크 등의 키워드에 이끌리는 사람이라면 민중의 집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겠다. <공산당 선언> 마지막 문장인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를 현대의 가치를 담아 바꾼다면 '진보적 시민이여! 네트워크하라' 쯤이 되지 않을까? 이것을 공간의 힘으로 현실화할 수 있으니 주민과 함께하는 진보정치를 원하는 이라면 민중의 집을 꿈꿔볼 만하다.
공간은 힘이 세다비록 분열되고 우경화되었다 해도 진보정당의 역사를 100년 넘게 쓰고 있는 유럽에서 민중의 집은 진보정당과 발걸음을 같이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당과 노동조합이 민중의 집 건설을 주도했고, 이곳은 추상적 공간이 아닌, 사람이 들락날락하는 구체적 장소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산업혁명시대 시골에서 막 상경한 농부들이 도시노동자로 적응하기 위해 모인 곳이 민중의 집이었으며, 이곳에서 그들은 노동자의식을 배우고 공동체정신에 입각한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파시즘의 광풍이 몰아쳤던 시대에는 혹독한 탄압을 받아 폐쇄되거나 친권력적 형태로 변질되거나 단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장소로 쇠락하기도 했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살아있어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민중의 집은 정치이념과 함께 음악회, 전시회, 영화상영, 연극공연, 다양한 배울거리, 맛있는 먹을거리를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공존했었고 이를 지역주민이 맘껏 향유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두었다. 또한 시민사회단체, 협동조합, 노동조합 등을 연결해주는 허브의 역할을 하며 지역정치의 힘을 키워주었다.
공간이 지닌 힘은 생각보다 세어서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어도 꾸역꾸역 모여드는 사람들이 있고, 이탈리아 어느 소도시에서는 어린 시절 부모 손잡고 따라와 민중의 집 앞마당에서 뛰어놀았던 추억을 간직한 이들이 노인이 되어서도 이곳을 찾아와 지킨다.
에스엔에스(SNS)와 팟캐스트 등 온라인 공간의 왁자지껄한 여론 형성만으로는 진보집권 플랜을 달성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선거에서 배웠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얼굴 보고 수다 떨며 토론하는 아날로그적인 운동방식은 산만하고 더디게 보이나, 현재 바닥을 치고 있는 진보정당에 대한 신뢰도를 차근차근 회복시켜주는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언젠가는 흔들리지 않는 두 자리 수의 지지율을 안겨주는 기적의 바탕이 될 수도 있겠다.
1층은 술집과 찻집으로 꾸미고, 2층은 정당, 노조, 지역단체 사무실이 입주하고, 3층은 강의실과 소극장을 만들고... 이런 상상만 해도 가슴 뛰고 행복해진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지구 반대편 사람들은 100년 전에 어떻게 그것을 이루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친절하게 알려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알라딘 서평에도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