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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 가는 길

 요단강 서안 무슬림 거주지역에 쳐지는 장벽
 요단강 서안 무슬림 거주지역에 쳐지는 장벽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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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파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해안도로를 따라 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륙의 도로를 따라 가는 것이다. 그런데 내륙의 산길은 굴곡이 심하고 차선이 적어 오히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우리는 해안도로를 탄다. 이 길은 2번 고속도로로, 해안을 따라 텔아비브까지 이어진다. 텔아비브를 지나면 길은 방향을 동남으로 틀어 443번 고속도로와 연결된다. 그리고 이 길은 예루살렘까지 완만한 오르막길로 되어 있다. 그것은 예루살렘이 해발 754m의 고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으로 접근하면서 우리는 색다른 풍경을 만나게 된다. 길 주변으로 철조망과 장벽이 보이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요단강 서안 무슬림 거주 지역에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유대인과 무슬림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무슬림 거주지역과 유대인 정착촌을 분리시키는 장벽을 세우는 것이었다.

 테디 축구경기장
 테디 축구경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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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현대판 만리장성이고 베를린 장벽이다. 그런데 그 만리장성과 베를린 장벽이 제 기능을 했던가? 만리장성은 수시로 뚫렸고, 베를린 장벽은 28년 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요즘 이스라엘의 욕심이 너무 과한 것 같다.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요단강 서안에 정착촌을 건설하고, 시리아와의 접경 골란고원 지역에 장벽을 치고 있으니 말이다. 골란고원의 시리아 접경지대에 73㎞, 시나이 반도의 이집트 국경지대에 240㎞, 가자지구에 51㎞. 이들은 모두 1967년 3차 중동전쟁 때 뺏은 지역이다. 이스라엘은 장벽의 나라가 되려 하는가?

우리는 여행 일정을 조금 바꿔 예수탄생지인 베들레헴(Bethlehem)을 먼저 방문하기로 한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 남쪽 10㎞ 지점에 있다. 차는 예루살렘 시내를 우회한다. 최근에 새로 지어진 고층 아파트도 눈에 띄고, 리모델링하는 축구경기장도 보인다. 이 경기장이 예루살렘을 근거지로 하는 두 축구팀 베이타르(Beitar)와 하포엘(Hapoel)이 사용하는 테디(Teddy) 축구경기장이다. 이 경기장의 수용 관중수가 현재 21,600명인데, 2013년 5월까지 33,500명으로 늘리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열광하는 운동경기는 축구와 농구다.  

예수탄생교회 들어가기

 예수탄생교회
 예수탄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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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장벽을 지나야 하고, 장벽을 지키고 있는 이스라엘군의 검문을 받아야 한다. 우리가 코리아에서 온 관광객이라 하니 그대로 통과시킨다. 베들레헴은 요단강 서안에 위치한 팔레스타인 중심도시다. 인구가 26,000명으로 대표적인 무슬림 거주지역이다. 요단강 서안 무슬림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는 예루살렘 북쪽 10㎞ 지점에 있는 행정수도 라말라(Ramallah), 예루살렘 남쪽에 있는 다윗의 도시 베들레헴, 예루살렘 남쪽 30㎞ 지점에 있는 아브라함의 도시 헤브론(Hebron)이다.

우리는 버스 주차장에서 내려 예수탄생교회까지 걸어간다. 도로가 이스라엘 지역에 비해 허술하고 지저분하다. 도로변의 건물도 낡고 우중충하다. 그것은 이들이 주로 베들레헴을 방문하는 관광객을 상대로 먹고살기 때문이다. 간판도 모두 아랍어다. 베들레헴은 해발이 예루살렘보다도 높아 775m이다. 그래서인지 주차장에서 예수탄생교회로 가는 길은 오르막이다. 고갯마루쯤에 이르니 예수탄생교회(Church of Nativity)를 알리는 간판이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길을 들어 100m쯤 가면 교회가 나온다.

 예수탄생교회 지하동굴로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
 예수탄생교회 지하동굴로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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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운동장 바닥돌이 반질반질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았으면 이렇게 반질거리게 된 걸까? 이 길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그리스 정교회에서 관할하는 탄생교회 내부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는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가 탄생한 지하 동굴로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우리도 그들 뒤에 가서 줄을 선다. 줄을 서지 않으면 우리 차례가 오지 않기 때문이다. 한 30분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한번에 10-20명씩 동굴로 들여보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대열을 벗어나 잠시 교회 내부를 관찰한다. 코린트 양식의 대리석 기둥이 양쪽에 두 줄씩 네 줄로 늘어서 있고, 가운데 비교적 넓은 회랑이 존재한다. 벽에는 비잔틴 양식의 고색창연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림 속에 천사나 성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바닥에도 모자이크화가 조금 남아 있다. 로마시대의 것으로도 보이고 그 후의 것으로도 보인다. 문양은 오히려 아라베스크에 가깝다.

 예수탄생교회 내부
 예수탄생교회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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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탄생교회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한(313년) 후 그의 어머니 헬레나에 의해 327년 지어지기 시작했다. 예수가 탄생한 곳은 이곳 베들레헴의 작은 동굴이다. 그곳에 339년 바실리카 형태의 교회가 완성되었다. 그것이 6세기 사마리아인들의 폭동으로 파괴되었고, 565년 비잔틴 양식으로 다시 지어졌다. 이것이 현재 예수탄생교회의 토대다. 그 후 십자군 전쟁 때인 11-12세기 일부가 보수되거나 확장되었다. 1244년 터키의 침입으로 지붕이 일부 훼손되었으며 그것이 완전히 복원 또는 수리된 것은 1480년이다.

1834-37년 지진으로 건물의 일부가 손상을 입었으나 크게 변형되지는 않았다. 1851년 예수탄생교회는 오스만 터키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고, 제1차 세계대전까지 통제는 계속되었다. 오스만 터키가 망한 1923년부터 교회에 대한 접근이 쉬워졌고, 1930년 들어 다시 보수와 수리를 할 수 있었다. 현재 예수탄생교회는 그리스 정교, 로마 가톨릭, 아르메니아 교회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머물고 있는 지상층은 그리스 정교가, 예수가 탄생한 지하 동굴은 아르메니아 교회가, 그리고 이들 옆에 새로 지어진 교회는 로마 가톨릭이 관할하고 있다.    

예수탄생 별과 말구유 그리고 동방박사 만나기

 예수탄생 별
 예수탄생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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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이상 기다리니 우리 차례가 온다. 우리는 지하 동굴 입구에 잠시 앉아 기다린다. 그리고 앞에 들어간 팀이 밖으로 나가면서 우리가 들어간다. 어두운 동굴 안에 불이 커져 있다. 들어가자마자 오른쪽으로 예수탄생 별이 새겨진 공간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예수가 탄생한 장소다. 별 주위로는 향불이 켜져 있고, 그 밖을 커튼으로 장식했다. 많은 사람들이 별을 만지며 기도를 한다. 이곳이 바로 기독교의 뿌리가 되는 예수탄생 성지다.

"그 무렵에 로마 황제 아우구스토가 온 천하에 호구조사령을 내렸다. 요셉도 갈릴리 지방을 떠나 나사렛 동네를 떠나 유다 지방에 있는 베들레헴이라는 곳으로 갔다. 베들레헴은 다윗왕이 난 고을이며, 요셉은 다윗의 후손이었기 때문이다. 요셉은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등록하러 갔는데, 그때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가 머물러 있는 동안 마리아는 달이 차서 첫 아들을 낳았다. 여관에는 그들이 머무를 방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는 포대기에 싸서 말구유에 눕혔다. (루가복음 2장 1-7절)"

 동방박사가 경배하던 장소
 동방박사가 경배하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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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말구유가 있던 자리가 나온다. 직사각형의 공간에 철망을 두르고 그 안에 네 개의 향불을 피웠다. 향불 뒤로는 성가족의 모습을 그린 성화가 걸려 있다. 이곳은 신성한 장소로서의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그렇지, 겉모습은 옛날식 마굿간이나 주방처럼 보인다. 말구유의 건너편으로는 동방박사가 경배하던 장소가 있다. 이곳에도 철망이 있고, 촛불이 있고, 성화가 있다. 이곳이 동방박사 경배장소임은,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사람의 모습을 담은 커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수께서 헤롯왕 때 유다 베들레헴에서 나셨는데 그때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의 왕으로 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 분의 별을 보고 그분에게 경배하려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때 헤롯이 동방에서 온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정확히 알아보고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가서 그 아기를 잘 찾아보시오' 하고 부탁하였다. 왕의 부탁을 받고 박사들은 길을 떠났다. 그 때 동방에서 본 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마침내 그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이를 보고 그들은 대단히 기뻐하면서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마태오복음 2장 1-12절)"

로마 가톨릭이 관장하는 성 카타리나 교회

 히에로니무스 제대 위 모자이크: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히에로니무스 성인이다.
 히에로니무스 제대 위 모자이크: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히에로니무스 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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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탄생한 지하 동굴을 나오면 1층의 그리스정교회 공간이 나온다. 이곳을 지나 우리는 다시 가톨릭교회 공간으로 나간다. 이 교회의 이름은 성 카타리나 교회다. 고딕 양식을 기본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이 일부 가미된 현대적 교회다. 입구에는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347-429)의 동상이 있다. 히에로니무스는 성서를 라틴어로 옮긴 사람으로 유명하다. 이 라틴어 성서를 우리는 통상 불가타 성서라고 부른다.

히에로니무스는 그리스어와 라틴어에는 능했으나 히브리어를 잘 몰랐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갔고, 그곳에서 부유한 로마귀족 파울라(Paula)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382년부터 베들레헴에 있는 수도원에 머물며 번역을 시작한다. 당시에 이미 라틴어 베투스 번역본(Vetus Latina)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리스어 성서 셉투아긴트(Septuagint)를 저본으로 한 것이었다. 이에 히에로니무스는 히브리어 성서와 그리스어 성서를 대조하면서 일일이 번역본의 잘못을 수정해나갔다. 405년 드디어 그는 성서 번역작업을 마쳤고, 그 후에도 성서에 대한 주석 작업을 계속했다.

 로마 가톨릭교회 내부
 로마 가톨릭교회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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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역사와 이유 때문에 이곳에 히에로니무스를 기리는 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교회 1층은 여늬 교회와 다르지 않다. 신자석과 제대가 나누어지고, 제대 위에는 스테인드글라스 화창(華窓)이 있다. 여기서 다시 지하로 내려가면 히에로니무스 성인을 위한 제대가 마련되어 있다. 제대 정면에 히에로니무스 성인과 파울라 성인을 기리는 모자이크화가 있다. 그리고 그 옆에 라틴어로 히에로니무스 성인의 말이 새겨져 있다. "이곳이 나의 영원한 안식처입니다. 내가 원해서 이곳에 살았습니다."

이들을 보고 다시 밖으로 나오니 세상이 너무 밝다. 교회 정원에는 오렌지 나무에 노란 오렌지가 주렁주렁 열렸다. 올리브 나무도 더 싱싱하게 보인다. 더욱이 교회 앞 히에로니무스의 동상이 새롭게 보인다. 떠나기가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우리는 다시 예수탄생교회 광장으로 나온다. 광장 건너편으로 유명한 우마르(Umar) 모스크가 보인다. 이것은 베들레헴을 대표하는 모스크로, 베들레헴을 방문한 칼리프 우마르를 기리기 위해 1860년 세워졌다. 현재 베들레헴 인구의 60% 정도가 무슬림이다.


#베들레헴 #예수탄생교회#동방박사#히에로니무스#우마르 모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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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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